3편 남탓은 쉬웠고, 내탓은 깊었다

남탓은 쉬웠고, 내탓은 깊었다

by Surelee 이정곤

3편 남탓은 쉬웠고, 내탓은 깊었다

어느 날, 현희는 오래된 의자를 정원 끝자락으로 옮겼다.
양지바른 자리에 놓인 의자는,
사람보다 먼저 햇빛이 앉았다.
햇빛은 낡은 나무 팔걸이를 따스하게 덮고,
그 위에 앉은 현희의 손등에 천천히 스며들었다.
그녀는 한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팔연도, 도연도, 재심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조용한 오후.
풀벌레가 여린 소리를 내고,
흙냄새와 풀냄새가 번갈아가면서 옷자락에 스며드는 시간이었다.
현희는 오늘 정원일을 하러 온 게 아니었다.
어쩌면, 정원일을 핑계로
잠시 삶을 멈추러 온 것인지도 몰랐다.
“당신이 날 이렇게 만들었잖아.”
예전의 현희는 그렇게 말했다.
남편에게, 부모에게, 심지어 친구에게도.
부족한 사랑도, 무너진 신뢰도,
점점 말라가는 마음도,
모두가 남의 탓 같았다.
그런 말을 할 땐 오히려 편했다.
슬픔보다는 분노가,
아픔보다는 억울함이
그녀를 덜 상처받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남탓은 마치 햇볕을 가려주는 얇은 그늘 같았다.
한때는 그늘이 보호였고,
그 그늘 속에서 눈을 감고 숨을 고를 수도 있었다.
그것이 남탓의 달콤한 보호막이었다.
“엄마는 왜 그때 아무 말도 안 했어?”
아들이 어느 날 물었을 때,
현희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땐 어쩔 수 없었어.’
그 말을 삼키고서야 알았다.
그 대답이 얼마나 초라한지,
그 아이의 눈앞에서는 얼마나 무력하게 들릴지를.
그날 밤, 현희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물었다.
“정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까?”
정원의 잡초는 항상 제때 제거되지 않는다.
뽑았다고 생각해도 어느새 다시 돋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질긴 것이 ‘탓’이다.
남탓은 뿌리가 얕지만 넓게 퍼져 금세 자란다.
내탓은 뿌리가 깊어, 도려내기가 어렵다.
내탓은 쉽게 꺼내 쓸 수 있는 무기가 아니라,
천천히 들여다봐야 하는 거울이다.
그 거울을 오래 들여다볼수록
낯선 얼굴이 아니라,
내가 버티어온 날들의 무늬가 비친다.
“내가 조금 더 단단했더라면,
아이가 덜 다치지 않았을까.”
“내가 침묵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우리는 덜 멀어져 있지 않았을까.”
그 질문들은 나를 공격하려고 오는 게 아니다.
나를 다시 나로 되돌리기 위해 오는 것이다.

재심이 희심원에 도착했을 때,
현희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오늘은 잡초 안 뽑아?”
재심이 물었다.
“오늘은 그냥… 보고만 있으려고.”
현희는 미소를 지었다.
“그게 더 어렵지 않아?”
“응. 그래서 해보는 거야.”
두 사람은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었다.
바람이 지나가며 풀잎을 흔들고,
먼 하늘에서 새 한 마리가 곡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현희가 나직이 말했다.
“남탓은… 참 쉬웠어.
나를 안 들여다봐도 되니까.”
“그래.” 재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내탓은… 깊더라.
그 안엔 미움도 있고, 눈물도 있고,
나 자신에 대한 실망도 있어서.”
재심은 잠시 현희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래도, 그걸 본 사람만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어.”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남탓은 비겁하고, 내탓은 성숙하다고.
하지만 현희는 이제 안다.
그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남탓은 살아남기 위한 방식이었고,
내탓은 살아내기 위한 길이었다.
둘 다 필요한 시간이었고,
지나고 나서야 걸을 수 있는 자기의 길이었다.
그날 저녁, 현희는 아들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그땐 미안했어.
엄마가 너무 작아서 아무 말도 못했어.
이제라도 말할게.
그땐 너도 무서웠지.”
메시지 끝에는 답장이 없었다.
하지만 현희는 이제 ‘탓’이라는 이름의 감정을 조금은 다르게 말할 수 있는 자신이 되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정원의 잡초는 여전히 쑥쑥 자란다.
그러나 그걸 뽑는 손은 예전보다 덜 급하고, 조금 더 단단하다. 탓이 자라나는 만큼, 그 탓을 품는 사람도 자라고 있으니까.<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