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너 탓 아니야, 정말 그 말은
도연은 요즘 말을 줄이고 있었다.
그의 또다른 이름은 걸어 다니는 잡학사전이다. 타고난 이야기꾼답게 늘 사람들 앞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열던 그였지만, 어느 날부터인지 말들이 사람에게 닿기보다 허공으로 흩어져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걸 느꼈다.
예전에 팔연이 묻던 말이 오래 머물렀다.
“형, 그 말 누굴 위한 거야?”
그 질문 앞에서 도연은 대답하지 못했다.
위로였다고, 격려였다고, 그렇게 말할 수도 있었지만 속으로는 알았다.
그 말들 중 많은 부분이 상대의 상처를 덜어주려는 게 아니라, 자신의 불편함을 피하려는 회피였다는 걸.
며칠 전, 마을 청년 둘이 찾아왔을 때도 그랬다.
농촌살이에 적응이 안 된다며
“자꾸 내가 모자란 사람처럼 느껴져요. 뭔가 계속 내 잘못 같아요.”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던 그들에게 도연은 반사적으로 말했다.
“그건 네 탓 아니야.
시스템이 잘못된 거지.”
말이 입 밖으로 빠져나가자,
도연은 이상하게도 안도했다.
마치 재빨리 약을 발라 상처를 가린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청년 중 한 명이 조용히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근데요, 그렇게 말하면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 되는 것 같아요. 변화도, 책임도 다 밖에 있는 것 같아서… 좀 공허했어요.”
그 말은 도연의 귓가에 오래 머물렀다. 마치 정원 모퉁이에 잡초 씨앗이 떨어져 천천히 뿌리를 내리는 것처럼.
‘너 탓 아니야.’
그 말은 언제부턴가 위로의 공식이 되었다.
상처받은 사람에게는 죄책감을 덜어주는 좋은 말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삶의 핸들을 빼앗는 말이 되기도 했다.
“너 잘못 없어.”
그 말이 반복될수록 사람은 자신이 주인이 아닌 듯 느낀다.
세상이 운전을 하고, 자기는 그저 뒷자리에 앉아 있는 승객처럼 느껴진다.
정원에서 풀을 뽑다, 도연은 재심에게 물었다.
“위로가 위선이 될 때는 언제일까?”
재심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묵묵히 뿌리를 흔들어 흙을 털고, 손가락으로 그 결을 살피다가 천천히 말했다.
“상대가 물을 때가 아니라,
내가 먼저 말하고 싶을 때.”
그 한 마디에 도연은 웃음이 났다.
“그럼 난 평생 위선이었나 봐.”
재심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죠. 위선도 결국 사람의 모습이니까요. 중요한 건, 말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지요.”
“방향?”
“상대의 바깥이 아니라, 그 사람의 안으로. 그리고… 필요할 때만요.”
그날 저녁, 도연은 청년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날 네가 했던 말, 오래 생각했어. 처음엔 널 위로한다고 믿었는데 사실은 내가 덜 불편하고 싶었던 것 같아. 살면서 그런 말, 너무 많이 했던 것 같다.
고맙다. 나한테 거울 하나 놓아줘서.”
답장은 짧았다.
“저도 덕분에 덜 외로웠어요.”
‘너 탓 아니야.’
그 말은 쉬운 말이 아니다.
어떤 날에는 죄의식을 풀어주는 생명줄이 되고, 다른 날에는
사람의 손에서 자율을 빼앗는 사슬이 된다.
차이는 단 하나.
그 말이 어디서 왔는지다.
사랑에서 왔는지, 아니면 내 불편함에서 왔는지.
이제 도연은 조금 덜 말하려 한다. 대신, 조금 더 듣는다.
그리고 묻는다.
“내가 지금 하려는 이 말,
누구를 위한 말인가?”
정원의 잡초도 한 번에 뽑히지 않는다.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오래 바라보고, 바람이 말려주는 시간을 지나야 비로소 뿌리가 드러난다.
말도 그렇다.
입술에서 서둘러 꺼내기보다,
마음에서 먼저 길러내야 한다.
그때 비로소, 그 말은 누군가의 삶에 잡초가 아니라 꽃으로 자랄 수 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