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탓으로 피는 꽃

희심원의 꿈

by Surelee 이정곤

5편. 탓으로 피는 꽃

재심은 주말마다 팔연의 터밭을 한 바퀴 돌거나, 같은 시간에 '희심원'이라 불리는 현희네집 정원을 둘러본다.
잡초가 자라는 자리를 기억하고,
구석진 곳에 피어난 작은 꽃도 기억한다.
한 주 사이 무엇이 자랐고, 어디가 무너졌는지 그녀는 말없이 살핀다.
정원은 재심에게 작은 세계다.
작고, 고요하고, 뿌리의 진실을 감추지 않는 세계.
그 세계 속에서 그녀는 자기 마음의 풍경을 따라 배운다.
한때, 재심은 무슨 일이든 자기 탓으로 돌리는 사람이었다.
누군가 다치면, 그 자리에 자신이 있었던 이유를 먼저 떠올렸고
누군가 울면, ‘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 여겼다.
남들은 그것을 ‘책임감’이라 불렀지만
사실 그것은 내면 깊숙이 스며 있던 자기 불신이었다.
‘나는 어쩌면 늘 뭔가 잘못하고 있는지도 몰라.’
그 생각이 자라면서, 그녀의 입은 닫히고
대신 손이 움직였다.
일을 할수록 덜 미안했고,
땀을 흘릴수록 마음이 조금은 덜 무거워졌다.
어느 봄날, 현희가 묻는다.
“넌 왜 그렇게 잡초를 잘 뽑아?
그렇게 예민하게 자라는 걸 어떻게 알아보는 거야?”
재심은 웃지 않았다.
대신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건… 내가 잘 아는 종류라서 그래.”
잠시 뜸을 들이다가, 덧붙였다.
“어릴 때 집 뒤에 작은 밭이 있었는데,
거기서 자라던 잡초들이
지금 여기에 있는 거랑 똑같더라고.”
그 말은 반쯤 사실이었다.
진짜 이유는, 그 잡초들이 마음속에도 자라왔다는 것.
너무 오래 방치해두었기에,
어디에 싹트고 어떻게 퍼지는지
이젠 자연스럽게 알아버린 것이다.
재심은 어느 날부터 탓을 완전히 뽑아낼 수 없다는 걸 인정했다.
뿌리 깊은 탓, 지나간 실수,
돌이킬 수 없는 말들,
바꿀 수 없었던 선택들.
그것들은 다 자기 자신이 살아온 시간이었다.
그래서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옆에 무언가를 심을 수는 있다.
탓이 자란 자리에
작은 꽃을 하나 심어본다.
그 꽃은 용서였고,
성장이었고,
그리고 삶이었다.
“잡초가 많다.” 도연이 말했다.
“그냥 놔두고 꽃만 심으면 안 될까?”
재심은 고개를 저었다.
“꽃만 심으면, 결국 잡초가 다 덮어버려.”
팔연이 곁에서 물었다.
“그럼, 잡초를 다 뽑고 꽃을 심어야 하나?”
재심은 잠시 정원을 둘러보다가 대답했다.
“아니. 잡초를 뽑고, 꽃도 심고…
그리고 또 자라는 걸 다시 보는 거야.
이게 삶이니까.”
현희가 그 말을 듣고 조용히 웃었다.
“덮으려 하지 말고, 밀어내려 하지 말고…
그냥 옆에다 심는 거구나.”
탓을 지우려 하지 말자.
그건 지워지지 않는다.
대신 그 옆에 삶을 심자.
그 탓으로 인해 자란 나를 인정하자.
그 탓 때문에 내가 더 단단해졌고,
그 탓 때문에 다시는 쉽게 판단하지 않게 되었고,
그 탓 덕분에
이제는 누군가의 마음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니.
정원 한가운데, 작은 해바라기 하나가 피어 있었다.
그 자리는 한때 무성한 ‘내탓’이라는 잡초가 뒤덮었던 자리였다.
뿌리를 도려낸 자국이 아직 남아 있었지만,
이제 그 위엔 노란 꽃이 웃고 있었다.
재심은 그 꽃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조용히 물을 주었다.
“탓,
넌 아직도 내 안에 있지.
하지만 괜찮아.
이젠 너를,
꽃이 피는 자리로 데려가줄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