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끝자락,
재심이 뿌린 씨앗 사이로 작은 싹이 고개를 내민다.
잡초를 다 뽑아낸 자리에, 그녀는 새로운 생명을 심는다.
“무슨 꽃인가?”
팔연이 호기심 섞인 목소리로 묻는다.
재심은 잠시 흙을 만지며 망설였다.
“탓꽃.”
팔연이 웃는다.
“그건 또 뭐야.
새로 생긴 유전자 변형 잡초야?”
도연은 진지하게 되묻는다.
“진짜 그런 꽃이 있어?”
현희는 말없이 흙을 덮으며 말했다.
“이건… 우리가 만들어 붙이는 꽃말이예요.”
그날, 네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이 보였다.
탓은 늘 문제의 중심에 있었지만, 그 아래 자라는 감정은 너무 작고 여려서 쉽게 들여다볼 수 없었다.
팔연이 입을 열었다.
“그럼 그 꽃말은 뭐죠?
탓의 꽃말.”
도연이 대답했다.
“글쎄… 견뎠던 시간?”
현희는 덧붙였다.
“피어나지 못했던 감정.”
재심은 조용히 말했다.
“돌아보게 만드는 말.”
그날, 그들은 잡초가 가장 많았던 곳에 작은 표지판을 꽂았다.
[탓꽃]
– 아직도 내 안에 머물러 있는 말
하지만 이제는 꽃으로도 기억할 수 있는 말.
정원은 달라졌다.
사람들은 잡초만 뽑지 않았다.
어떤 것은 그대로 두었고,
어떤 것 옆에는 꽃을 심었다.
후회꽃 – 망설임과 성장을 담은 꽃
서운꽃 – 오래 기다린 사람에게 주는 꽃
비난꽃 – 말이 너무 빨랐던 사람에게 건네는 꽃
용서꽃 – 말보다 오래 피는 꽃
그리고 무엇보다,
탓꽃은 정원 한가운데서
가장 먼저 피었다.
그날 이후, 네 사람은 자주 정원 끝자락에 모였다.
탓꽃이 피어 있는 자리에서,
서로의 손을 보고, 흙을 보고, 마음을 읽는다.
도연이 표지판 하나를 조용히 쓰다듬었다.
“탓이란 말에 꽃말을 붙여보는 사람은, 이미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사람이다.”
재심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 정원은, 우리가 지은 이름들로 자라나는 세계가 되었네요.”
현희는 웃으며 덧붙였다.
“그 이름 안에, 우리가 살아온 시간이 고스란히 담겼지요.”
팔연은 아무 말 없이 손바닥으로 흙을 눌렀다.
그는 그 자리에 작은 씨앗 하나를 묻으며 속삭였다.
“그래, 탓도…
이제는 피어도 되겠다.”
해질녘, 정원의 빛은 부드럽게 사그라들었다.
탓꽃은 여전히 작고 여리지만,
그 꽃 위로 네 사람의 숨결과 시간, 그리고 서로의 이해가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날 이후, 정원에는 더 이상 혼자 자라는 잡초가 없었다.
탓도, 후회도, 서운함도,
모두 꽃과 함께 자라났다.
그 꽃들은 이제, 말이 아닌, 살아낸 시간의 증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