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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생담 Mar 04. 2022

우렁이에게

마음에 부치는 편지

우렁아, 잘 있니?

이렇게 이름을 불러 보니 마음이 찡하구나. 당장이라도 네가 달려와 꼬리를 흔들고 앞발을 들어 올리며 깡총깡총 뛸 것만 같다. 그러면 난 눈높이를 낮추기 위해 자리에 앉아 두 손으로 네 귀와 볼을 잡고 마구마구 비벼주겠지.

"잘 잤어? 꿈도 꿨어? 그렇게 좋아?"

내가 웃으며 쓰다듬으면 넌 배를 보이며 바닥에 눕겠지. 그 따뜻한 피부 감촉과 부드러운 털의 느낌과 쿰쿰한 냄새가 그립구나.

넌 어쩌자고 그렇게 사람을 좋아하니? 일 분을 헤어져 있든, 한 시간을 헤어져 있든, 반나절 한나절을 헤어져 있든 변함없이, 한결같이, 처음처럼 어쩌면 그렇게 기뻐하며 우리를 맞이해 주니? 마치 헤어졌다가 10년 만에 다시 만난 가족처럼 애틋하게. 물론 결국에는 "간식 줄까?" 하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도록 는 게 너의 능력이지만 꼭 그것만을 위해 그런 건 아니라고 믿겠다.

우렁아, 난 꿈에도 몰랐다. 내가 이 나이에,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너를 잊지 못하고 지낼 줄은. 제법 나이가 든 내겐 먼저 저세상으로 보낸 가족 친지가 적지 않단다. 그런데도 너만큼 자주, 깊은 마음으로 그리워하는 대상은 없다고 고백할게. 내가 죽으면 하늘 어딘가에 있는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종종 생각할 정도란다. 어쩌면 나이가 들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지. 유난을 떤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물론 이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그냥 속마음이야. 절대 드러낸 적은 없단다. 오히려 난 너에게 "아저씨가 해 줄게." "아저씨랑 같이 가자." 하고 거리감이 느껴질 만한 호칭을 썼었지. 강아지에게 자기를 "아빠"나 "엄마"고 호칭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유난스럽다고 느낀 사람이 오히려 나다.

 

처음 신한은행 우리 동네 지점 앞에서 오만 원을 주고 널 데려올 때부터 난 유난 떨지 않고 기르겠다고 생각했다. 그 할머니는 너의 부모견이 모두 시추라고 우겼지만 아무리 봐도 넌 시추가 아니었어. 하지만 내가 수수하게 기르겠다고 마음 먹은 건 네가 소위 비싼 순종견이 아니어서가 아니란. 나도 그렇지만 다행히도 우리 가족은 모두 순종견보다는 잡종견을 더 좋아했다. 미안. 잡종견이라 하기보다는 혼혈견이라 해야겠구나. 사실 순종견이란 100년쯤 전부터 사람이 인위적인 선택 교배를 통해 만들어낸, 어찌 보면 기형견이라 할 수 있고 잡종견이란 부정적인 뉘앙스를 품고 있는 용어라 할 수 있으니까. 어쨌든 우리 가족은 다들 세상에 둘도 없는 고유한 외모와 성격을 가진 혼혈견을 더 좋아했단다. 

맨처음 조막만 한 네가 낯선 우리 집에 와서는 어찌할 줄 모르고 오도카니 앉아 있던 모습이 떠오른다. 겨울이었지. 외투 품에서 너를 꺼내 보여주자 딸아이가 기뻐서 손바닥팔락거리며 소리쳤다. 꿈을 꾸는 것 같다고 했지. 넌 온몸이 갈색 털로 덮여 있고 입 주변만 조금 검은색인 누렁이였다. 그런데 턱 밑에 선이 한 줄 그려져 있어서 난 '턱선이'라 불렀다. 또 딸아이는 한때 '사랑이'라 부르기도 했지.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가족 모두 아이 엄마가 지어준 '우렁이'라는 이름으로 통일해서 부르게 되었다. 옛이야기에 나오는 '우렁 각시'에서 따온 이름이란다.


우리는 널 데리고 동네도 한 바퀴 돌고 뒷산에도 올라가 맘껏 뛰라고 풀어 주었지. 넌 신나게 앞으로 달려가다가 뒤돌아 서서 우리가 오는지 확인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난 너와 딸 아들과 함께 약수터까지 갔다가 비를 만나게 되었지. 정자 아래 서서 비를 피하다가 아무래도 비가 그칠 것 같지 않아 토란잎을 하나씩 따서 쓰고 빗속을 걸어왔다. 오는 중에 비가 거세져서 결국 토란잎을 던져 버리고 비를 맞기로 했지. 그날 기억나니? 택지 공사장을 지나올 때 시뻘건 흙물이 흘러가는 도랑에서 우리는 즐겁게 물장난을 쳤다. 비를 피하려는 생각을 포기하니 마음이 편해지더구나. 우리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 진흙탕에서 맨발로 즐겁게 뛰어 놀았다. 일부러 물이 튀라고 첨벙거렸고 발 밑에서 무너지는 모래알의 느낌이 이상하다 말하깔깔대고 웃었지. 너도 대걸레처럼 흠뻑 젖은 몸으로 신나게 흙탕물을 튀기며 뛰어다녔지. 그때만 해도 넌 생기와 활력이 온몸에서 눈부시게 뿜어져 나오는 어린 생명이었다.

그러나 잔인한 건 알게 모르게 조금씩 우리를 산화시키는 세월이다. 어느덧 새 집의 문 손잡이 코팅이 벗겨지고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창틀의 얼룩이 차츰 늘어 갔지. 그 사이에 아이들은 자랐고 난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아내와 이혼을 했다. 누구나 그렇듯 이혼 사유는 알 수가 없단다. 그걸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지.

그렇게 세월이 흐르자 산책하는 모습도 달라졌다. 뒷산을 오를 때마다 앞서 뛰어가던 넌 어느새 내 발걸음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힘겹게 뒤따라왔지. 앞서 가다가 돌아보며 기다리는 쪽은 이제 나였다.


배를 만지다가 멍울을 발견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처음엔 단순 멍울일 거라 생각했는데 차츰 자라더니 어린애 주먹만 해졌다. 그 멍울은 좀비 같아서 수술하고 돌아오면 또 생기고 수술하고 돌아오면 또 생겼다. 세 번의 수술을 하는 동안 근심과 걱정은 물론 너에 대한 미안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난 지금도 그 과정에서 머뭇거리거나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한 내 실수를 따갑게 후회한다.

결국 네 번째 수술을 이기지 못하고 너는 하늘 나라로 떠났지. 의사가 회생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조심스럽게 안락사를 권유했을 때 난 눈앞에 장막이 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구나.

수의사가 네 앞다리에 주사를 놓은 지 3초도 안 돼서 넌 눈을 감았지. 마지막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네가 눈을 감는 순간 내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난 울고 울고 또 울었다. 미안하다는 말만이 내 머리와 입에서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다른 말은 생각나지 않더구나.


우렁아, 잘 있니? 너도 나처럼 , 너도 우리처럼 가끔은 나와 우리를 보고싶니?

널 생각하면 아직도 미안하다는 말밖에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토록 우리를 좋아해 주었는데 우리는 너만큼 잘해 주지를 못했구나. 어쩌면 미안하다는 말은 자신의 불성실을 감추려는 매우 불손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널 생각하면 말하는 동물인 우리가 얼마나 많은 걸 말로 때우려 하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넌 평생 말 한 마디 하지 않고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몸짓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때문에 평생 말 한 마디 나누지 못한 네가 가장 그립고 애틋한지도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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