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유학 에피소드 #1

좌충우돌 보스턴 어학연수 : 우리 집이 어디에요?

by 지푸라기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시험도 준비했던 많이 늦은 나이에


갑작스러운 계기로


취업전선을 등지고


나는 보스턴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보스턴이라는 곳에 도착한 때는 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그 도시에 누구 하나도 모르는 상태였고,


친구를 사귀고 싶어도 언어도 모르고,


외로움까지 셀프인 이 낯선 곳에서


영어를 쓰는 어느 히스패닉 계열 가족이 살고 있는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나의 타국 생활은 시작되었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모든 게 낯설었고


집 앞 마트 가는 것도 무서웠지만


마트에 가서 감자칩도 사고


마트의 마일리지 카드도 장만한 후로는


뭔가 자신감이 조금 생겼던 것 같다.


그때 처음 먹었던 레이즈라는 노란색 포장지의 감자칩은

(그 당시 한국에 안 들어왔던 과자인데 지금은 들어와 있더라)


내가 살면서 먹었던 과자 중 가장 짠맛이었고


이 짠 걸 먹는 미국인들은 참으로 미개한 삶을 사는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홈스테이 주인집 식구인 초등학생 남매들이


다운타운에 나가면 재밌는 게 많다고 나에게 말을 해줬고


나는 용기를 내어 일단 나가서 뭐라도 해보고 돌아오자라고 생각하고는


집 앞을 나섰는데 길거리나 집들이 너무 이국적으로 생겼었다. (이국이니까 멍충아)


신기해서 핸드폰으로 남의 집들의 사진들을 찍으면서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지하철 역까지 걸어갔다.


보스턴 번화가의 중심인


다운타운 크로싱역으로 무작정 가서


보스턴의 중심에 있는 공원인 '보스턴커먼파크'를 걸어 다녔다.

(나중에 알았는데 이 장소는 영화 굿윌헌팅에서 멧데이먼과 로빈윌리엄스가 산책하던 보스턴 커먼, 퍼블릭 가든이 붙어있었던 바로 그 장소였다.)





거기서 산책을 하던 중 잘 구운 양파와 소시지 냄새가 코를 자극하길래


따라가 봤더니


핫도그 가게가 있었고


'역시 미국은 핫도그지!'라고 생각하고는


핫도그를 사 먹으려는데 뭐라고 말할지 영어가 감도 안 온다.


'역시 이게 바로 나지!'라고 생각하고 포기하려는데


핫도그 만드는 아저씨가 나를 보고 뭐라고 쏼라쏼라 하는 거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말했다


원 핫~덕!(왠지 '핫도그'라고 정확하게 발음하는 게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그 아저씨가 정체 모를 말을 또 쏼라쏼라 했다. 물론 영어였는데 나는 그때 외계어로 들렸다.

('빵상~뽕삐리뽕 인간들아~' 요런 느낌)


그래서 띄엄띄엄 스타카토로 다시 말했다


원 - 핫 - 독!


그 아저씨가 나에게 뭘 또 물어봤는데


나는 세 번째 대답으로도 더욱더 또렷하게


원 핫 독!이라고 대답했다.


그 아저씨가 고게를 갸웃하더니


핫도그를 하나 만들었고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런데 그 핫도그는


빵에 소시지만 껴져 있었고 양파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다.


아마도 그 아저씨의 쏼라쏼라에는


'양파도 넣어드릴까요? 소스는요?' 뭐 이런 얘기였을 터인데


내가 다 무시하고 '핫독'만 세 번 외쳤더니


아저씨에겐 이 동양인 청년은


온니 빵과 소시지만을 원하는 매니악한 입맛의 덕후라고 인식되었나 보다.


그렇게 나는


"에이~ 아저씨 케첩이라도 좀 발라주셔야죠. 퍽퍽해서 어떻게 먹어요 이걸"을 영어로 못하는 관계로


세상 퍽퍽한 인생 첫 미국 핫도그를 먹게 되었다.





배를 채우고 나서 다운타운의 여기저기 다니면서 윈도쇼핑도 하고,


내가 욕실에서 쓸 슬리퍼도 샀다.(무려 나이키로다가 충동구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보스턴 공공 도서관에 가서


호그와트에서 나올 법한 멋진 열람실도 구경하고


그렇게 길거리를 혼자서 싸돌아 다니다가


해가 지고 나서야 집 근처 지하철 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오늘 하루는 나에게 큰 성과였다.'라고... (핫도그 빼고)


그렇게 만족할만한 하루를 보내고


'집까지는 편하게 버스를 타볼까?'라고 생각하고는


버스를 탔는데


타고 가는 도중에


내가 오늘 하루동안 잃어버렸던 뭔가를 비로소 깨달았다.


아주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것은 바로 우리 집의 주소랑 위치였다. ㅜㅜ





주소도 몰랐고 위치도 가늠도 안되었다.


최초에 보스턴에 도착했을 당시는


공항에서 홈스테이로 가는 것은 픽업서비스를 사전에 신청해서 그냥 주소도 모르고 갔었고


사실상 그 이후로 집 밖에 제대로 나와본 적이 한 번도 없었었다.


일단 놀라서 버스에서 아무 정류장에서 내렸는데 정말 감도 안 왔다.


우리 집이 어딘지...


게다가 날은 점점 어두워졌고, 쌀쌀했다.


다운타운에서 샀던


나이키 욕실용 쓰레빠를 손에 들고서 나는


성인미아(이런 말이 있나?)가 되어버렸다.


누구한테 뭘 물어볼 수도 없었다.


"죄송한데 우리 집이 어딘지 아세요? (태초마을이 어디예요 ㅠㅠ)


진짜 눈앞이 깜깜했고 숨이 턱턱 막혀왔다.


그때 진짜 길거리에 서서 별 생각이 다 들었었다.




예를 들면...


이러다가 범죄자들의 눈에 띄고


갱의 소굴로 끌려 들어가서


갱단 조직원으로 강제로 가입돼서


나한테 조직의 타투를 강요하면


우리 엄마가 싫어해서 안된다고 해야 하나?



집을 끝내 못 찾고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노숙을 하고 있는 나에게


KKK단이 나한테 와서 길을 잃어버렸나고 물어보고는


자기네 아지트로 끌고 가서


저기 묶여있는 흑인친구 지미랑 친하냐고


왜 지미가 좋아하는 나이키 슬리퍼를 손에 들고 있었냐고 물으면


아돈스피크잉글리시 하면 풀려 날 수 있을까?




그런 빙구 같던 생각을 하던 중에 갑자기 뭐 하나가 번쩍 떠올랐다.


내가 집에서 나오면서 주변을 계속 사진을 찍으면서 나왔다는 사실을...


나는 갱단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에(?)


그 사진을 거꾸로 한 장씩 다시 보면서


사진을 찍었던 장소들을 대조하면서 집 근처까지...


그렇게 더듬더듬 홈스테이 집 근처 어두운 골목까지 도달했는데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집들이 다 똑같이 생겨서 우리 집이 어딘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똥 멍충이가 집 주소를 안 적어왔어 ㅠㅠ)


망연자실했고


그 골목 또한 많이 어두워서, 이내 다시 무서운 마음까지 들어서


대학생 이후로 교회도 안 다니던 내가 기도까지 하기 시작했는데...


그런데


구석에 있는 집 창문 사이로


낯익은 초등학생 두 명이 손을 흔들고 있는 게 보였다.


우리 홈스테이집 사는 초등학생 남매들이었다. ㅠㅠ


안도감이 밀려왔고


그렇게 나를 어여삐 여긴(?) 신의 보살핌으로


극적으로 무사히 귀가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그날 '미아' 탈출에 성공했다.








# 핫도그는 '위드 어니언' 하세요~

# 갱단에서 마약 파는 삶을 살뻔했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혼남 그게 뭐라고(번외#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