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부정을 희석시키는 초긍정인이 되리라
최근에 브런치에 남긴 글이 죄다 부정적인 내용 같아서 이 글도 올릴지 말지 잠시 고민했지만... 애초 브런치를 시작했던 목적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였으므로, 죄책감은 덜어낸 채 오늘의 브런치를 남겨본다.
지난해에 이어 최근까지, 미국에 와서 참 많은 일들을 겪었다. 좋은 일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인간의 본성이 늘 그렇듯 몇 번 되지 않는 부정적인 경험은 수없이 많은 긍정적인 경험들을 뒤엎을 때가 많다. 평생 한국에서 살면서 보도 듣지도 못한, 무례하고 개념 없는 사람들을 여기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마주쳤는데, 처음에는 평생 남한테 폐 안 끼치고 선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내게, 그저 조용히 공부하다가 학위 따고 돌아가려는 내게, 이런 사람들이 와서 시비를 걸고 괴롭히는가 왜 이리 나는 운이 없나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하면 할수록 어차피 답이 없었다. 더 불행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너무 못된 사람들을 연이어 만나고 나니 그런 사람들만 꼬이는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숨만 쉬어도 와서 시비를 걸고 뺨을 때리고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성선설은 틀린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세상사 모든 일에는 장단이 있다. 일련의 그 악한 사람들과의 인연도 아주 나쁜 일이기만은 한 것은 아니었다. 덕분에 각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참고, 용인하고, 남에게 폐를 끼칠지언정 내가 손해를 입고 최대한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라 믿으며 평생을 살아왔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만난 소수의 무개념 한국인들을 보면서, 그런 내 평생의 믿음은 나와 마찬가지로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에게는 통할 지 모르나, 내 희생과 배려를 고마워할 줄도, 미안해할 줄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그들이 날 얕잡아 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 나아가 호구로 이용당할 가능성만 높여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화가 날 때는 이 관계가 깨지는 한이 있더라도 화를 내야만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화를 내지 않으니 상대는 이 정도로 긁어도 이 사람은 찍 소리도 못하는구나 생각하고 더 나를 함부로 대했다. 나는 늘 관계가 우선인 사람인지라, 특히나 이 좁은 한국인 커뮤니티에서 조금이라도 안 좋은 소리가 퍼지는 것이 염려가 되어 누군가 내게 해를 끼치거나 상처를 주어도 그냥 나 혼자 꾹 참고 둥글게 넘어갔는데, 결국 그것이 상대에게 '이 사람은 이 정도까지 건드려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나 스스로 허락해주는 셈이 되었고 궁극적으로는 내가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나 자신을 소홀히 한 처사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이제야 이런 사람들도 이 세상에 있구나 깨닫게 된 것은, 달리 말하면 지금껏 내가 정말 좋은 사람들만 만나 왔다는 뜻이므로, 어쩌면 비극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한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지금 여기 미국에서도, 내 주변에는 아주 극소수의 악인들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다. 하나를 양보하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둘, 셋을 양보하려 하는 친구들에 둘러 싸여 있다. 나의 배려와 양보를 고마워하고 그 가치를 알아봐 주는 이들만이 결국 내 주변에서 오래 남는 것 같기는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 중에 한국인은 정말 드물다.
미국에 와서 놀란 것들 중 하나가 있다면, 미국은 원체 별 같지도 않은 의견도 다 존중하고 들어주는 사회라 그런지, 한국에서였다면 바로 욕을 먹었을 언행도 거리낌 없이 하고, 나아가 그것을 '솔직함' 내지는 '쿨함'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꽤 된다는 것이다. 내가 보았을 때에는 그냥 무례하고 비상식적인 행동일 뿐인데, 미국에 나오는 순간 갑자기 그 선이 달라지는 것인지, '여긴 미국이니까'라고 말하며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한국인들을 보았다.
인생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10% 정도이고, 나머지 90%는 그 10%에 대한 우리의 해석과 반응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세상에 어쩜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이기적이고 무례하고 비상식적인 극소수의 한국인들과 맞닥뜨린 것은 이곳에 와서 겪은 부정적인 경험 중 단연 최고봉이었다. 그러나 내 삶을 그들을 향한 분노나 그로 인한 자괴감으로 채운다면 나만 손해일 거다. 지금도 곱씹을수록 화나고 괘씸하지만, 인간성이 글러 먹은 그 몇몇 사람들 때문에 내 삶이 흔들리게끔 내버려 둘 수 없다. 난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생각하며, 한편으로는 저 나이가 되기까지 저렇게 살아온, 이제는 그 누구의 훈계나 조언도 들어먹히지 않을 나이에 들어선 그들의 삶을 불쌍히 여기며, 타산지석으로 삼아야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제 밥 먹으면서 잠깐 나눈 내 연구에 대해 '어젯밤 샤워하다가 생각해봤는데 이걸 추가하면 좋을 거 같아!'라고 문자를 보내주는 친구, '너 내일 발표하니까 끝나면 우리 근사한 곳에서 저녁 먹자'며 구글 맵을 열심히 검색하는 친구, 내 마음을 헤아리고 좋은 일에 함께 웃고 슬픈 일에 함께 울어주는 친구들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