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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nnie Jul 31. 2024

허무함과 싸우는 법

인생의 또 하나의 중요한 챕터가 마무리되어가는 것을 느끼며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에 들어왔다. 방학 때마다 한국에 들어왔던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건만, 올여름은 정말이지 생애 가장 어려웠던 시기들 중 하나로 기억될 정도로 고난도의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있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어쩌면 거의 처음으로 뼈저리게 깨달았던 시기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생전 처음 겪는 수많은 감정들이 밀물처럼 밀려 들어왔다가 몇 날 며칠을 머릿속에 머물렀다.


시작은 큰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비롯되었다. 몇 년 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으셨음에도 차일피일 검사를 미루고 남편과 자식들에게도 알리지 않으시더니, 알고 보니 암 말기셨던 것이다. 증상이 숨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셔야 병원에 실려가셨지만 손을 쓰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큰어머니는 결국 몇 달을 넘기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게 내가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결국 마지막 가시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장례식에 참석했는데 큰어머니와 대단히 친밀한 관계였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 다시 뵐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유학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는 사실 일 년 중 끽해야 여름방학에나 두세 달 남짓 한국에 머물기 때문에 (그나마도 학기 중에 미뤄뒀던 일들을 하다 보면 순식간에 지나간다) 유학 초반 1-2년 차일 때나 지인들에게 연락해 만났지, 이후에는 나도 바쁘고, 지인들도 모두 결혼해 육아로 바쁘거나 직장일에 치이다 보니 소식이 뜸해졌다.


친척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장례식 때문에 친가 식구들을 한꺼번에 만나고 나서야 내가 유학 간 이후에 친가 식구들을 이렇게  모두 다 한 자리에서 만난 건 거의 처음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 몇 년 사이에 대부분의 친척분들이 눈에 띄게 연로하신 것을 보면서 현타가 온 것은 그다음이었다. 인간이 나이를 먹고 노화가 온다는 걸 몰랐던 건 아니지만 내 눈으로 직접 목도하는 것은 충격이 남달랐다. 부모님도 같이 살 땐 몰랐는데 유학을 가서 일 년에 한두 번 뵙게 되니 늙어가시는 게 눈으로 확 보인다. 해외생활을 하는 이들은 아마 다 공감하겠지만 그럴 때마다 타국에서 지금 내가 뭐하고 있는 건가 가슴이 무너진다.


이번에 한국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졸업 후 해외에서 지내며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었는데(필요하다면 아예 눌러앉아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이번에 친가 식구들을 만나고, 또 부모님과 함께 지내면서 아무래도 한국에 들어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 나이를 생각하면 아무리 요즘 세상이 백세 시대라 해도 이제 부모님과 함께 살 시간도 마냥 긴 것이 아니다. 게다가 나이 들수록 여러 가지로 자녀들의 보살핌이 필요하실 것이라 생각하면 타지에서 나 혼자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대수인가 싶기도 하다.




며칠 전에는 마침 여름을 맞아 한국에 들어와 있는 하와이 한인 친구들과 연락이 닿아 오랜만에 같이 저녁을 먹고 대화를 나누었는데, 대화를 나누다가 우리 모두가 이제 하와이를 떠나 다른 장소에서 그다음 인생 챕터를 준비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곧 졸업을 해서 (아직 어디로 갈지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하와이를 떠날 테고, 나머지 다른 친구들도 졸업해서 아예 한국으로 들어왔거나 편입, 취직 등으로 인해 곧 하와이를 떠나 본토로 이주할 예정이었다. 타국에서 학업으로 인해 만난 인연들인 만큼 그 학업이 끝날 무렵에는 이렇게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다 같이 또 일부러 약속을 잡아서 한국에서 모이지 않는 이상(그나마도 계속 해외에서 남는 이들이 가끔 한국 들어올 때에나 가능하겠지), 이렇게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이기는 쉽지 않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쉽다는 내 말을 들은 한 명이 말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거죠."


처음 듣는 말도 아닌데 그 말이 유난히 귓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가슴속에 박혔던 것은, 어제 그 자리에서 유난히 그 말을 뼛속 깊숙이 실감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결혼을 해서 부부가 되지 않는 이상 세상사 모든 인연은 만남이 있으면 언젠가는 헤어짐이 따라온다(물론 요새 이혼율을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지만). 심지어 가족이라 해도 언젠가는 헤어진다. 모든 인간관계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그걸 몰랐던 것이 아닌데도, 막상 그것을 경험하는 지금 이 순간에는 씁쓸하기도, 마음 한 켠이 애틋하기도, 슬프기도 하다. 정든 환경과 사람들을 떠나는 것은 성인이 된 지 한참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힘들다.




유학생활 초반만 해도 드물었는데 후반인 지금은 주위에서 부모님 상을 당하거나 중병에 걸려 고생하시거나, 혹은 본인이 아파서 힘들어하는 이들의 소식을 종종 어렵지 않게 듣는다. 건강이 정말 제일 중요하구나 싶으면서, 인생이 참 허무하다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 그러면서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논문도 무슨 소용인가 하는 극단적인 생각이 들어 괴로울 때도 있다. 이 언어 현상이 인생에서 무슨 의미가 있지? 막말로 인류의 생명 연장에 도움이 되거나 기후변화를 개선한다는 식의 대단한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이리 이걸 붙들고 있는 걸까.... 이걸 하자고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살며, (어쩌면 이 나이 또래 해외 나와 살고 있는 싱글들이라면 다들 한 번쯤은 고민할 법한) 혼기를 지나가면서까지 타지에서 홀로 고생하고 있는 것이 정말 맞는 일일까? 회의감이 밀려온다.


생각보다 인생은 스펙터클하기보다는 무료하고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나날들의 연속인데, 그 길고 지난한 인생을 묵묵히 걸어 나가는 동안, 특히나 이렇게 인생의 중반부에 다다르는 시점에는 허무감이나 무기력함과 조우하게 되는 일이 많은 것 같다. 인생의 큰 굵직한 사건들을 잘 이겨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별 다른 사건사고가 없지만 이제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간들보다는 내리막길로 가는 것이 더 가까워 보이는 시기가 다가올수록 그 속에서 의미를 찾고, 혹은 의미를 찾지 못하더라도 행복하게 무탈하게 지낼 수 있는 법을 터득하는 것? 그것이 중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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