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나른해질 필요가 있다

드뷔시 -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by 심민경

눈이 부신 형광등, 뼛속까지 시린 에어컨 바람, 어지러운 방향제 냄새, 시끄럽게 울려대는 알람 소리, 습관처럼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현대인에게 너무 익숙한, 만성화된 감각의 경험이다. 보고, 느끼고, 맡고, 듣고, 맛보는 행위들이 천편일률적일 때 우리는 쉽게 권태로움을 느낀다.


따스한 햇살, 적당히 살랑이는 바람, 코 끝을 간지럽히는 늦봄/초여름의 나무 냄새, 부지런히 지저귀는 새소리, 노곤하게 몸을 데우는 차 한 잔. 그리고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을 들으면, 낮잠을 청해야 할 타이밍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


인위적인 환경에서 자연으로 회귀할 때, 한 없이 안정적인 기분을 느낀다. 나아가 좀처럼 마주한 적이 없는 창작 욕구를 느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나른한 상태로 편히 쉬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무뎌진 감각을 새로이 깨우는 방법은 결국 힘을 들이는 게 아니라 힘을 빼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은 사람들이 응당 느껴야 하는 감각을 일깨워주는, 한없이 나른한 곡이다. ‘더 빨리, 더 많이’에 익숙한 일상의 템포에서 잠시 벗어나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게 만든다. 아니, 느끼기도 전에 단잠에 빠질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나른함이란 개념은 권태 혹은 게으름의 표본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한 번 나른해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그 속에서 꿈을 꾸고, 희망을 갖고, 내일을 살아갈 힘도 얻을 테니 말이다. 우리는 좀 더 나른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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