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이 지금 우리들에게 보내는 편지

베토벤-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by 심민경

집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게 일상인 요즘. 아침에 일어나 잠들 때까지 성냥갑처럼 작은 공간에서 먹고, 자고, 또 일을 하며 지낸다. 잔잔한 호수같이 일렁이는 마음이면 좋으려만, 어느 날엔 거센 파도와 같이 감정이 휘몰아치고, 또 어느 날엔 뙤약볕을 바로 받아 시든 풀처럼 숨죽이게 된다.

누군가를 만나려면, 누군가와 만나기 위해 펜촉에 잉크를 묻혀 편지를 써야 하고 인편으로 몇 주, 아니 몇 달이 걸려 연락해야 하는 시대의 사람들을 문득 떠올려본다. 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는 외로움, 고독함,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그 시절 그 사람들은 어떻게 달랬을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지금이야 물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어도 그 누구와도 연락이 가능하고, 나의 감정을 불특정 다수에게 바로 공유할 수 있지만- 옛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추측건대 날것으로 올라오는 감정들을 처음에는 있는 그대로 홀로 표현하다가, 이내 가라앉으면 정제된 상태로 편지를 쓰거나 글을 쓰며 달랬겠지. 마치 시간이라는 고운 채에 울퉁불퉁한 감정들을 쏟아부어, 모래알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같은 맥락으로 베토벤의 “비창”은 억누르는 슬픔을 전시하기보다는 이를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스스로를 무기력하다고, 불쌍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마치 지난 일을 편지 쓰듯 담담히 선율에 담아낸다.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우리에게 예언하듯 편지에 담아 위로하는 느낌이랄까.

베토벤이 담아낸 편지처럼, 가급적이면 내 감정을 조금 더 멀리서 보기로 했다. 지금은 비록 요동치더라도 어쨋거나 언젠가는 끌날 것이라 굳게 믿으며, 훗날 이때를 회상할 나를 위해 조금은 정제된 상태에 편지를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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