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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민경 Nov 05. 2021

하루키의 인생관을 담은 책- 삶은 마라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하루키의 작품을 단 한 번이라도 읽었다면 그가 마라톤 광임을 모르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하루키의 소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도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마라톤에 임하는 자세와 비슷하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좋아하는 그의 또 다른 수필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자연스레 떠올렸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 쓰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관통하는 이야기 중 가장 핵심이 있다. 소설가가 가져야 할 자질은 장기전을 대하는 자세를 기르는 것이며, 이에 기초가 되는 것은 체력, 정신력, 꾸준함이란 것이다.


비단 소설가를 한정 지어 얘기한 것 아닌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레 학부 졸업논문을 썼던 때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논문은 엉덩이로 쓰는 거라 했던 지겨운 나날의 연속을 나는 달리기로 풀었던 적이 있다. 멘탈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리고 체력을 기르기 위해, 장기전을 견디기 위해 집 근처 공원을 일주일에 두세 번 5km씩 뛰었기에 하루키의 에세이에 크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하루키의 작품을 좋아한다.


“(...) 그것을 충실하고 성실하게 언어화하기 위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과묵한 집중력이며 좌절하는 일 없는 지속력이며 어떤 포인트까지는 견고한 제도화된 의식입니다. 아울러 그러한 자질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신체력입니다. 실로 재미라고 없는, 말 그대로 산문적인 결론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소설가로서의 나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

P.195


한국과 삿포로를 오고 가는 비행기에서 이 책을 읽는 데 2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정말 빠르게 잘 읽히지만, 책의 귀퉁이를 접은 곳이 열 군데가 넘으니 인상 깊은 구절들이 참 많았다. 하루키가 어느 도시 카페 구석에서, 휴양지에서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끈질기게 썼던 작품들을 생각하니 그거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하루키에게는 분명 <노르웨이 숲>과 같은 Runner’s high가 존재했기에 한없이 개인적이고 피지컬한 업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짜릿함, 희열, 성취감 때문에 마라토너들이 그 험난한 뜀뛰기를 견디지 않나.


인생이란 , 비틀즈의 노래 제목처럼 “The long and winding road”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길고 험난한 길목을 하루키처럼 꾸준히 뛰다 보면 언젠가는 잠깐이지만 Runner’s high 마주하지 않을까?


인생, 짧다 하지만 그래도 하루키처럼 멀리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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