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병영 부조리. 그 원인은?

feat. 넷플릭스 <DP> #스포 주의

by 창업하는 선생님
육백만의 유태인 학살을 진두지휘한 아이히만


우리들은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광기 넘치는 사건들이 모두가 반사회성 인격장애, 광신도들에 의해 자행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크라이나 대기근, 유태인 대학살, 문화 대혁명 등등. 그러나,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자신의 저서 <악의 평범성>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평범하게 오히려 진부하다고도 느껴지는 일상적 행위들이 끔찍한 결과를 만들어냈고 악은 사악한 인물이 아닌 오히려 친절하고 선량한 개인에 의해 자행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러한 악의 평범성은 군대 내에서 발휘되기 너무나도 쉽다.




발단, 현역 부적합자들까지 모이는 군대


현역 처분율 83.1%

현역 처분율 83%, 여기서 말하는 현역 처분은 신체등급 신체 등급 1급~3급인 인원을 말한다. 이 인원의 대부분은 사회 복무 요원을 포함하지 않고 순수하게 부대에 입영해 영내에서 씻고, 먹고 자는 사람을 말한다. (단, 상근 예비역 같은 경우는 출퇴근함)


83%가 얼마나 큰 숫자냐? 우리나라 남성 20~29세 사이의 장애인 비율은 3.7%이다.


IQ 71~84 사이인 사람들을 '경계성 지능장애'로 정의하는데 이 사람들은 지적장애인과 비 지적장애인 사이의 경계선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전체 인구에서 12~14%의 비율로 존재한다.

경계선 지능인의 일례 - 출처 : <연세춘추>

단순히 장애인과 경계성 지능인만 합쳐도 16~18%의 현역 부적합자가 나온다. 그런데 현역 부적합자들 중에는 장애등급은 받지 못하지만 정상적인 군생활이 불가능한 그 외에 사례들도 존재한다. 신체 손상이 있는 사람(중증 디스크, 피부질환...)도 존재하고, 정신 건강에 문제가 존재하는 사람, 사회성, 소심한 성격, 반사회적 성격, 충동성 등의 이유로 병영 생활을 못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즉, 말도 안 되는 83.1%라는 현역 처분율의 의미는 병영 내에 신체적 - 정신적 - 성격적 - 지능적으로든 부대 적응 및 군생활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상상 이상으로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만이 오게 되면 속만 타고 괴로울 일은 없을 텐데 폭언, 욕설을 일삼고 폭력적인 행위를 일삼는 인성이 삼류인 사람들도 모일 수 있다는 것이다.


군생활에서 가장 험난한 것은 유격훈련도 예초작업도 아닌 바로 이런 인간들 때문이다.








전개, 편적 윤리 기준과 분리된 군 문화



https://brunch.co.kr/@steiner7188/35


앞선 글을 확인해보면 집단에 해악을 미치거나 미칠 것이라고 느껴져 동료로서 인정받지 못한 존재는 사회적 불명예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존재에 대한 불쾌감은 마치 더러운 것과 상한 음식의 냄새를 맡기만 해도 눈살이 자동적으로 찌푸려지는 것처럼 본능적인 영역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물욕이 있다고 모두가 절도를 하는 게 아니고, 성욕이 있다고 모두가 성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은 것처럼. 특정 인물에 대한 혐오감과 불쾌감이 집단 따돌림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사회에서의 윤리적 기준도 이를 허용치 않는다.


하지만, 이곳은 사회와 다른 군대라는 격리된 공간이다. 이 공간은 병사 개개인이 스스로가 누군지 잊게 만든다. 밖에서는 어느 대학의 대학생, 누군가의 남자친구, 누군가의 아들이지만 이곳에선 모두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비슷한 까까머리들을 하고 있기에 누가 누구인지 구별할 수 없다.


타인과 구별될 수 없는 나, 사회와의 격리로 점점 흐려지는 보편적 신념과 기준. 내가 누구인지 조차 나 자신도 잊고 - 신념도 잊힌 가운데 그 빈자리를 '집단적 정체감', '군 문화'가 채워 넣는다.


음주운전이 없다면 음주운전 캠페인을 할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하면, 이렇게 <병영 생활 행동 강령>을 부르짖는다는 것은 과거 군 문화와 군의 집단 정체성에 '병 상호 간 지시', '구타 및 가혹 행위', '언어폭력', '성 관련 법규 위반 행위'가 만연했었다는 것을 말한다.


거기에 20대 초 성숙하지 못한 존재들은 옳고 그름 판단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개인적 정체성과 신념까지 잃은 존재들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껴지지만 집단적 분위기 때문에 비판할 수 없다.


결국, 병사들 내에 자정작용이 마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위기, 컬래버레이션


위에서 말한 여러 요인들이 하나하나 섞여 들어간 플라스크는 폭발적인 반응을 만들어낸다.

말도 안 되는 현역처분율에 의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까지 입영하는 현실

그들에 대한 저 아래쪽에서부터 올라오는 불쾌감

실질적인 피해

그에 따라 행해지는 과거에서부터 눈으로든 몸으로든 배워온 부조리 행위

비판은커녕 오히려 집단적인 동조


집단적 부조리의 당사자는 <폭언>, <인격모독>, <구타>, <집단 따돌림>, <성추행> 등등 밖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행위의 피해자가 돼버린다.

넷플릭스<DP> 속 묘사되는 가혹 행위 - 로얄젤리(선임의 침과 가래를 후임이 먹게 하는 행위)와 단체 기합






절정, 터져버린 분노


뒤틀려버린 윤리 기준, 그것을 방조해야 하는 집단주의는 군대의 부조리가 '개 같은 사람이 군대'에 들어가서 생겨난다기보다는 '군대에 들어가면 개 같은 사람'이 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부조리의 가해자가 되거나, 피해자가 되거나 둘 다가 되어버리거나.... 피해자는 쌓이고 쌓인 억울함과 분노, 자신이 생각한 이상과 다른 현실 속에 결국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괴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넷플릭스 <DP>, 조석봉 일병은 선임들에게 막장 수준의 구타, 괴롭힘, 가혹행위를 받아온다. 극 중 초반 간디라고 할 정도의 착하고 유순한 석봉은 점점 정신이 망가지고 결국 탈영까지 해 자신을 괴롭혀왔던 '황장수'에게 칼을 휘두른다.

칼을 휘두르고 도망치며 말하는 석봉 '(웃음)저 새끼 나 무서워한다.'


<DP> 속 또 다른 부조리의 피해자는 자신의 분노를 군대에서만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표한다.

임병장 사건을 모티브로 한 <DP>의 마지막 쿠키영상

이런 네거티브 에너지의 행동으로의 표출은 미디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은 미디어보다 더했다. 아니 사실 현실이 미디어를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실제로 15 군번인 나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나가다 뒤통수 맞는 것은 이상할 게 없었고, 단체 집합 그리고 기합은 간부가 아닌 병사들 간에 빈번하게 이러났다고 한다. 그것 외에도 더 심각한 문제는 더 많았지만... 15 군번은 그래고 선진 병영이라는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와중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하는 것을 보면 임 병장 사건과 윤일병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얼마나 더 심각했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결말, 진병영 제도의 도입


수십만 명의 눈물과 고통이 쌓이고 쌓인 뒤, 무고한 인물이 스틱스 강을 넘어서야 국방부는 부랴부랴 변화하기 시작했다.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윤일병 사건), 제22보병사단 총기 난사 사건(임 병장 사건), 후임병을 구타해 두개골 함몰, 안와뼈 골절을 일으킨 사건 등등... 두 사건 이후 봇물 터지듯이 사건들, 아니 사실 이미 수면 밑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드디어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어지기 시작한다.


그 결과 국방부는 생활관 내 '병사 수신용 공용 휴대폰'설치, 침상형 생활관에서 벗어나 침대형 생활관으로 변경, 관심 병사 제도 개선, 군대 내 사건사고를 묻어버리는 잘못된 관행에 대한 철퇴를 내리기 시작하는 등... 군 인권적인 면에서 개선을 시작한다.

군 수신용 휴대전화는 이후에 병사 스마트폰 사용 허용의 디딤돌이 된다.- 출처 : <연합뉴스>


차후 병사의 군 내 스마트폰 사용 허용으로 군대 내 병사들의 자살률과 탈영률이 극적으로 줄어든다.




글을 마치며...


아이히만이 유태인 학살을 자행할 때, 그 밑에 누군가는 유태인을 나르는 열차를 운행했고 - 누군가는 그들의 사유재산을 수거해갔고 - 누군가는 그들의 인적정보를 정리했고 - 누군가는 강제 노동을 시키는 간수를 했다. 그들 대다수는 아이히만 똑같이 법정에 선다면 똑같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지시나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주변 모두가 그러했다. 난 그것이 잘못된 행위인 줄 몰랐다.'라고 스스로를 자위할 것이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결과를 생각해보지 않았던 자신의 생각 없음을 탓하지 않을 것이다.



병영 부조리의 가해자도 비슷한 항변을 아마 할 것이다. '선임이 내리 갈굼을 지시했다.', '나는 이렇게 맞으면서 배워왔다. 뭐가 잘 못된 것이냐?' 등등. 어린 나이 군대에 들어와 비판 능력을 잃고 보편적 윤리 기준을 잊어버린 그들에겐 그것이 진부하도록 일상적인 행위였을 것이다. 불쌍하게 청춘을 군대에서 소모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왜인지 <악의 평범성>이 느껴지는 것은 무엇일까?


그런 <악의 평범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 용사들은 항상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사회에 나가서도 이것은 올바른 행동과 말일까?
난 누군가에게 황 병장이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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