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숙한 사랑에서 성숙한 사랑으로

알랭 드 보통의 처녀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리뷰

by 창업하는 선생님

사랑에 빠지게 되고 사랑하는 과정에서 우린 이해 하지 못하는 감정을 겪게 되고 평소라면 전혀 하지 않았을 행동들을 하는 경험들이 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과분한 행복에 겨웠던 연애의 시작에 빠져 간 쓸개 모든 것을 주며 사랑하고 호구 같은 사랑을 하고, 그러다 내 자신이 작아지고 하찮게 느껴지는 관계, 점점 내가 내가 아니것 같아지는 연애를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떠나지를 못하다가 끝끝내 주변 사람이든 상대방에게든 타의로 끝이나버린 연애 그리워하기도 한다. 흔히 금사빠라고 해서 만나기 전에는 불타오르듯이 좋아하다 실제로 사귀게 되면 그 사랑이 차갑게 식는 경험들을 하기도 한다.


이런 이해하지 못할 사랑의 행동을 우리는 알랭 드 보통이 스토리 속에 녹여둔 날카로운 철학적 통찰을 통해 낱낱이 파헤쳐 분석해내고 '성숙한 사랑'으로 향하는 길의 이정표를 찾을 수 있다.




미성숙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탄생


자기혐오의 감정

초라한 나, 찬란하게 빛나는 너.


자의식의 존재는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결함(비겁함,심약함,게으름,부정직,타협성,끔찍한 어리석음 같은 것)을 끓임 없이 자각시킨다. 모두 자각하지는 못하지만 이런 '자기혐오'를 가지고 있다. 반대 급부로 부모와의 관계, 안정된 가정, 또래 집단에서의 관계에서 얻은 관심과 지원은 자기 스스로를 근거없이 인정하고 긍정하는 '자기사랑'의 근거가 되고 모두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자기 사랑' 내면에 존재한다.

자기혐오와 자기사랑의 균형 속에서 자기혐오의 감정이 우세한 사람은 안정된 심리 상태를 위해 내 자신에게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함을 외부에서 찾을 필요를 느끼게된다. 왜냐면 아름답거나 고귀한 존재와 사랑의 동맹을 맺음으로써 우리 자신과 우리의 약점에서 벗어나고자 하기 때문이다.


결핍을 기반으로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동등한 지위에서 서롤 사랑하는 연애와는 전개가 다르다. 왜냐면 '자기 혐오'가 우세한 사람이 원했던 것은 단순한 사랑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과거 부족했던 가정에서의 관심과 지원을 채워줄 수 있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상화(Idealization)

우린 실체를 파악할 수는 없다. 우리가 사물과 사람, 세계를 인식할 때에는 주관적, 환상적 요소가 존재한다. 어떤 눈도 '나'와 '너'를 완전히 담을 수는 없다. 결국 판단의 근거는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가 보고있는 사랑하는 사람은 객관적 실재와 관련이 없는 주관적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한다.

사람을 주관적으로 바라보는 인간의 인식론적 한계와 나의 결점에서 날 구해줄 구세주를 바라는 간절한 요구는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환각을 낳는다. 오로지 자신이 원하는 것에만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낸다. 따가운 빛 만큼이나 어두운 면은 강해지고 흠결은 보이지 않게 된다. 긍정적인 점들에 집중하고 결점은 숨길 뿐만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미지의 영역에는 자신의 상상과 바램으로 살을 붙여나간다. 우리는 현실의 존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판타지와 환상에 사랑에 빠진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상대를 현실 그대로 보지 않고 이상에 비추어서 보고 생각하는 일을 '이상화'(Idealization)라고 하고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크든 작든 모두 이 이상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미성숙한 사랑을 하는 사람일수록 결핍 해소에 대한 갈망과 메아리 처럼 떠오르는 자기 혐오가 더 강렬하다. 그런 상황 속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분에 넘치는 행복을 경험했기에 '미성숙한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에게 더 맹목적이고 종교적 열망과 광기를 드러낸다.

운명의 종속

나의 추악한 일면을 감사주는 존재가 등장하고 너무나도 완벽한(우리가 완벽하게 '만든') 자가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은 미칠듯한 행복을 제공한다. 하지만 자신은 사랑 받을 존재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갑작스럽게 찾아온 행복은 개인적 성취의 결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신의 기적적 개입에 의하여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귀중한 사람이 내려왔기 때문에 생긴 결과였고 희박한 확률로 내게 떨어진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런 행복과 날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는 자족적인 지속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끓임없는 불안함을 준다. 그들의 사랑이 갑자기 시작되었듯이 갑자기 끝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제든지 상대의 마음이 변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행복한 순간이 운명적인 힘과 타의에 종속되어 있다고 느껴지는 사실은 미성숙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 꽤나 극단적인 행동 양상을 드러내게 한다.



미성숙한 사랑의 행동

알랭 드 보통<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는 미성숙한 사랑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부정적으로 인식한다는 전제를 하는 것 같다. 자신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더라도 타인에 대한 인식에 따라 미성숙한 사랑의 행동은 달라진다.


상대를 끓임없이 의심고 억압한다.

처음 타인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때에는 '집착'과 '통제'가 시작된다. 그들은 애정을 받으면 무슨 일을 했는지도 모르면서 훈장을 받는 느낌이 든다. 왜냐면 나는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니까! 그러니 의심한다. 상대 행동의 진의를. 의심은 집착을 불러오고 끓임 없이 내면에서 솓구치는 불안은 상대를 억압하고 감시한다. 상대방은 갑갑함과 무고한 범죄의 용의선상에 오른듯한 억울함을 느낀다.


기대와 실망 사이의 괴리는 테스트를 불러온다

우리는 불충분한 자료에 기초하여 사랑에 빠지며, 우리의 무지를 욕망으로 보충한다. 하지만 아는 것이 늘어날 경우 그것은 유인이 아니라 장애가 될 수도 있다. 내가 그린 기대와 다른 실제 모습을 보면 실망하게 된다.

알랭 드 보통<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7장 틀린 음정>


이상화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우상에게 일말의 기대를 하게 된다. 하지만 환상과 현실은 엄연히 달랐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하면 할수록 우상과 현실 속의 존재 사이에는 괴리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 순간 기대는 실망으로 바뀐다. 그러면서 실망 속에서 의문이 하나 샘솟아 오른다. 조금씩 상대방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녀가 정말로 그렇게 멋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이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할 만하다고 인정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취향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인데, 그런 문제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내가 바라던 대로 멋진 사람일 수 있을까? 혹시 그녀가 나와 사랑하는 과정에서 <나라고 하는 심한 전염병>에 감염되었기 때문이 아닐까?이런 생각을 하며 그 또는 그녀를 평가절하 한다. 완벽성을 의심한다.



의심은 공격적인 언행으로 사랑의 진의, 상대의 완벽성을 끓임없이 테스트 한다. 다른 사람이라면 받아주지 않을 이런 나의 결함 있는 모습도 사랑해야 자신을 진정 사랑한다고 믿으니까. 완벽한 존재라면 이런 자그마한 시련조차 견딜테니까!



낭만적 테러리즘

위에서 보였던 양태들. 집착과 의심, 테스트들은 미성숙한 사랑을 하는 살마들이 자신만의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해 했던 행동들이다. '오, 나의 구원자시여 당신이라면 날 이렇게 사랑하겠지요?', '내 사랑, 날 사랑한다면 이정도 말과 행동은 견뎌낼 수 있지?'


이런 사랑과 관심,구원을 바라고 행했던 여러 행동들은 역설적이게도 관심을 잃게 만든다. 과분한 이상화는 상대에게 부담감을 주고, 상대를 평가절하 하고 진심을 의심해 하는 공격적인 말들은 상대에게 관계의 피로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첫눈에 태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에 상응하는 빠른 속도로 죽지는 않는다. 관계의 피로감은 서서히 누적되고 이상화된 살점은 빠르게 떨어지지 않는다. 성급한 결정을 입 밖에 내어 이야기하는 것은 더 나을 것도 없는 삶을 택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느린 헤어짐의 과정이 나타난다.


알랭 드 보통의 말 마따나 그렇게 느린 헤어짐의 과정이 나타나며 한쪽이 관심을 잃기 시작하면, 다른 한쪽에서 그 과정을 막기 위하여 하는 최후의 행동이 나타난다. 낭만적 테러리즘이 그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에 대한 응답을 강요하려고 여러 가지 꾀(삐지기, 질투, 죄책감 자극)를 부리기도 하고, 그 앞에서 폭발하는 모습(울음, 분노...)을 보이기도 한다. 자국 독립을 바라면서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사람들 처럼 자신의 행동(삐지기,울음..)이 바라는 목표(사랑과 관심)를 달성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그 행동들을 한다.



자기예언적 행동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 처럼 끔찍한 예언의 신탁을 받은 존재가 그 예언을 피하기 위해서 행한 행동이 오히려 예언을 실현시킨다. '자기 사랑'이 부족하고 이상화에 매혹되어 있는 사람의 사랑은 오이디푸스 비극과 비슷하게 움직인다.


그들은 결함 있는 부모에게서 배운 아주 어린 시절의 감정적 애착 경험을 통해서 사랑이 보답받지 못하는 것이며 잔인한 것이라고 배웠기 때문에, 일부러 자신을 괴로운 상황에 가져다놓고 과거의 경험을 되풀이한다. 태어나서 몇 달, 또는 몇 년 동안 나의 무의식 깊은 곳에서 하나의 패턴이 형성되었기에 똑같은 시나리오를 재창조한다.


나를 떠나도록 그녀를 사랑한다. 열려히 사랑하다가도 실망하고 집착하고 구걸한다. 사랑 받기 위해 하는 행동들이 사랑을 잃게 만든다. 다른 사람에게 나를 실망시킬 기회를 주기 전에 스스로 실망해버리고 사랑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관계를 일찌감치 끝내버린다


영속적인 저주처럼 이렇게 패턴이 되풀이되는 사랑 이야기를 그리며 이 악순환을 강박적으로 반복한다. 사랑에 대한 불신은 다시 사랑 받지 못하는 행동을 유발시키고 사랑에 대한 미약한 희망조차 다시 짓밟는다. 그러면서 불신은 강해지고 그렇게 악순환의 고리는 점점 커진다.



그러면 이런 항거할 수 없어 보이는 운명적 상황처럼 보이는 상황 속에서 비관적인 사람이 되어 사랑으로부터 완전히 떠나버리기로 결심해야 할까?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말기를 다짐하고 금욕주의적으로 살아가야 할까? 교 사성제의 가르침처럼 감각적 쾌락을 멀리해야 할까? 키르케고르의 말처럼 감각에 몰두하는 심미적 생활양식을 멀리하고 또다른 생활양식으로 나아가야 하는 걸까?


하지만 이 책의 말미에서 결국 주인공은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고뇌하고 고통에 몸부림치지만 새로운 사랑에 빠지며 이야기는 끝이난다. 사랑은 비합리적인 만큼이나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내면의 상처를 딛고 성숙한 사랑으로


알랭 드 보통이 보여준 것 만큼 사랑은 불가피한 것 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알랭 드 보통이 말한 미성숙한 사랑과 성숙한 사랑은 이런 특징들을 보며 '성숙한 사랑'의 힌트를 찾아보는 것이 어떠할까?


미성숙한 사랑은 이상화와 실망 사이의 혼란스러운 비틀거림이며, 환희나 행복의 감정이 익사나 섬뜩한 구토의 인상과 결합되어 있는 불안정한 상태이며 ...성숙한 사랑은 절제로 가득하며, 이상화에 저항하며, 질투, 마조히즘, 강박에서 자유로우며, 성적 차원을 갖춘 우정의 한 형태이며, 유쾌하고, 평화롭고, 상호적이다.



이상화에 저항하기

우리의 인식에는 주관적, 환상적 요소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내가 상대방에 대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내가 상대의 모습의 빈 공간에 나의 바람과 이상을 집어넣었음을 인식해야 한다. 사회성이 높으면서 연앨 할 때 날 불안하게 하는 여자가 없는 그런 완벽한 혹은 괴물 같은 사람은 없다. 상대를 제대로 보지 못하면 대상을 적절히 애호하고 혐오할 수는 없다. 조던 피터슨을 말마따나 이상형을 버려야 현실 속에 존재를 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

이상화와 실망을 거듭 반복하며 상대를 지치게하고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받길 원하면서 나는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사랑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자기혐오 극복하기&운명적 반복 강박에서 벗어나기

자기 사랑이 우위를 차지하면, 사랑이 보답받게 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수준이 낮다는 증거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되었다는 증거가 된다. 그렇게 되면 혐오스러운 나를 구원할 자는 운명처럼 다가올 인연이 아니라 나 아닐까?부모와의 관계, 안정된 가정, 또래 집단에서의 관계에서 충분한 관심과 지원을 못 얻어 '자기 사랑'이 부족하다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유년기의 결핍은 성인기에 대부분 해결된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하고 성인기에 충분히 지지해주는 인간관계를 경험하고 과거 경험을 재서술하는 경험을 통해 고착화된 '자기 혐오'의 패턴을 극복하고 '자기 사랑'을 키울 수 있다.

'자기애','자존감','자기사랑'이 높아 일을 잘하고, 대인관계가 잘풀리고, 행복감을 느끼기보다는 자신이 해온 행동에서 '자기사랑'이 비롯되는 것이다. 지금 주어진 삶에 전념해 잘살아가는 자신의 행동을 보며 자신을 신뢰하고 자신에 대해 꽤 괜찮은 평가를 내리는 것이다.
<내 감정을 읽는 시간>


'자기 사랑'이 부족하다고 낙담할 필요가 없다. 현재에 집중하고 충실한 행동을 해나가 서 '자기 사랑'이 싹 틔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