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물은 '자정 작용'을 가지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더러운 땟국물을 흘려보내고 깨끗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마음도 그러하다. 우리의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 삶의 아픔을 정화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삶을 정신없이 살아가다 보면 생기는 찌꺼기들을 흘려보내 마음을 깨끗한 상태로 유지한다.
하지만 항상 이 자정작용이 잘 발휘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취직 이후 첫 자취방을 구했을 때, 난 모든 것이 미숙했다. 그 어리숙함은 원룸 화장실에도 나타났다. 두 사람 들어가면 가득 찰 좁은 화장실에 어느 날부턴가 샤워를 할 때마다 발의 반쯤이 잠길 정도의 물이 차올랐다. 처음엔 발바닥에 머물다가 사라질 물들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발목을 위협했다. 구정물은 고약한 냄새를 만들었고 빠져나간 뒤엔 화장실 바닥에 더러운 땟자국들을 남겼다. 삶을 힘겹게 살아가느라 어느 순간 아무도 모르게 구정물이 날 위협했었다. 구정물의 위협은 다행히도 집에 놀러 온 친구가 지적해 준 덕에 인지하게 되었다. 사태의 원인은 수채구멍을 머리카락이 틀어막은 것이었다..
더러운 구정물을 내려보내기 위해선 당연히 머리카락을 없애버려야 했다. 하지만 이 머리카락을 치운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머리카락을 치우기 위해선 본능적 역겨움을 잠시 꾹 참고 손으로 잡아채야 했다. 더럽고 추잡한 구정물을 바라보고... 땟국물을 휘휘 저어 더러운 분비물과 머리카락이 한데 엉켜있는 불쾌한 그것을 집고, 뽑아내야 한다. 일련의 과정을 지나치며 수채구멍은 뻥 뚫리고 물은 빠르게 내려가며 화장실은 자정작용을 되찾는다. 저번 같았으면 화장실을 범람하게 할 작은 찌꺼기들도 이젠 막힘 없이 흘러내려간다.
글쓰기는 내 마음의 자정능력을 높이는 근본적 치유과정
내 화장실 구멍이 막혔듯이 우리 마음도 잘 관리하지 않으면, 마음의 수채 구멍도 점점 막힌다. 그러면 좌절, 외로움 등이 내 마음을 이리저리 유영한다. 정리하지 못하는 땟국물이 감정의 밑바닥에 쌓이기 시작한다. 뜨거운 물로 이것들을 씻겨내려고 하지만 무언가 꽉 막힌 수챗구멍 덕에 깨끗해 보이는 것도 한순간이고 다시 부정한 정서가 내 마음 위에서 헤엄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당연히 내 마음의 수채 구멍을 뻥 뚫어야 한다. 그리고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것은 바로 '글쓰기'이다.
마음속 발목까진 고인 물과 바닥은 깨끗하지 않다. 밝고 활기차고 다른 사람들과 행복했던 감정과 기억들은 우리는 언제든지 주변사람에게 토로할 수 있지만, 그렇게 배출하지 못한 찌꺼기들이 우리 마음 바닥과 물속에 유영하고 있다. 머리카락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 더러운 '내 마음속'을 용기 있게 바라봐야 하고 땟국물에 손을 휘휘 저어 머리카락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나의 자정을 막고 있는 고통스럽던 트라우마를 뽑아내야 한다. 꽉 막힌 마음을 뚫기 위해선 흰 종이 위에 바닥 깊은 곳에서 뽑아낸 '검은 머리카락'을 올려두어야 한다.
그래서 머리카락을 뽑는 것처럼 글쓰기도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런 고통을 견뎌내고 마음의 자정작용이 되살아나면 감정의 찌꺼기가 켜켜이 쌓이지도 않는다. 이젠 부정적 감정이 바닥에 쌓여있지 않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마음속에 들어올 수 있다. 마음속은 지우개라는 화장실 솔로 바닥을 씻어냈고, 머리카락도 흰 종이 위에 옮겨두었기 때문에 훨씬 더 깔끔하고 멋진 나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