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이유
저는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밖은 감시와 억압의 공간이지만
한 뼘 남짓한 종이는 자유의 공간입니다.
생명력 넘치는 사람들은 저마다 목소리를 내느라 나를 들어주지 않지만,
생명 하나 없는 종이는 묵묵하게 저의 말을 경청해 줍니다.
세상의 목소리는 자신들의 옳고 그름을 나에게 들이대요. 여자와 남자, 노인과 젊은이, 파란색과 빨간색 서로를 편가르고 상대방을 공격하라고 강요해요. 돈 없으면 거렁뱅이라고 조롱하고 좋은 직장과 좋은 학벌이 아니면 말도 못 합니다.
바깥은 서로 간의 존중과 존경이 있는 안전한 공간이 아니에요. 오히려 저희를 '침탈'하지요. 제 마음속은 사유지라기보다는 공유지에 가깝고, 상대방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분쟁 지역입니다. 혹시 내가 용기 내어 말을 해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최소한의 배려도 안 할까 우린 불안합니다. 더 나아가 혹시나 이 말을 하면 창피당하진 않을까? 절 경멸하거나 무시할까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바깥에선 항상 다른 사람의 눈치 보느라 저의 말을 검열하고 숨겨야 합니다.
그에 반해 글은 안전한 공간입니다. 이 작고 소중한 공간은 학교, 직장, 미디어 등등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해방시켜 줍니다. 감시와 억압이 없는 안전한 요새이고 아늑한 안식처이고 저의 감정을 이해지 못할까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공간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편안하게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나의 감정을 공감해 주는 유일한 사람 '나' 앞에서 저는 이해받고 응원받을 수 있습니다. 하얀 백지는 따뜻한 옷감이고 하얀 진정제이고, 평온한 휴식처이자 세상의 폭격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피난처입니다.
이런 면에서 <1984> 속 감시사회의 주인공이 빅브라더의 시선을 피해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 반항의 첫걸음인 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안전한 공간에서 글을 쓰고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절 이해하는데도 도움을 줍니다. 글은 스스로를 발견하는 일을 도와줍니다. 세상의 탁한 공기가 빠진 머릿속은 기묘한 진공 공간을 만들고 타인에 관한 생각이 아니라 나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을 채우게 끔 도와줍니다. 외부 세계의 시선 따윈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 따윈 보지 않고 평소라면 감히 드러낼 수 없는 내 안의 숨겨진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나의 여러 자아들을 시험해 보고 제 안에 잠재되어 있는 숨겨진 가능성들을 현실에 불러들일 수 있습니다. 원고 안에서는 모든 것이 용납됩니다. 사람들이 싫어할까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비밀도 없고 금기도 없습니다. 틀리더라도 도전해 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의 제약들로부터 해방되고 그것들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반항은 짜릿하고 그 여정 속에서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탐험 중, 바깥세상의 시선으로 보기엔 모순되고 이상한 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행이 끝나고 현실 세계로 돌아온 우린 이전보다 더 안정적이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글쓰기다.
<버지니아 울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