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두어야 새로운 것이 시작된다
7년 동안 기획과 마케팅을 포함한 사업 영역에서 일을 했고, 이번 달 그만두었다. 어느 한 집단에 이만큼 오래 소속되어 본 적이 없다. 7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 입사했을 당시 예닐곱 되던 직원은 몇백 명이 넘어갔고 나의 20대도 끝이 났다.
퇴사를 상상할 때면, 미련이 남아 아쉽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마지막 퇴근길은 한 번도 뒤돌아 보지 않을 만큼 미련과 후회가 남지 않았다. 나는 7년간 한 번도 열심히 하지 않은 적이 없고, 진심이 아닌 적이 없었다. 정말 충분했다. 인생이 책이라면 한 챕터를 잘 끝낸 기분이다.
스타트업 초기 멤버로서 그 서비스와 서비스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사랑했다. 이 서비스가 잘되면 세상이 좀 더 공평해질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었고,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붙잡고 알려주고 싶었다. 나는 일이 재미있었다. 일을 할 때 살아있는 것 같다고 일기에 쓸 정도로 좋아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귀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인생도 내가 진심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한편, 빠른 성장이 필요한 회사는 대학을 갓 졸업한 나에게 가혹하기도 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해야 하는 일이 있었고, 주말에도 일을 했고 야근도 참 많이 했다. 당시 10kg가 빠질 정도로, 자존감은 바닥이었고 사는 게 지옥같이 느껴진 적도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도망쳐버리면 평생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될 것 같았다. 살면서 비슷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패배 의식과 실패감에 사로잡힐 것 같았다. 그래서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스스로 끝을 결정할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기로 했다. 이 과정들을 오롯이 겪어 내면서 나 자신을 더 신뢰하고 의연해질 수 있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그렇지 않은 게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야 만족감을 느끼고 행복한지, 어떤 요건들이 나를 괴롭고 불행하게 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돈, 직급, 상급자의 인정 등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순 없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올해 초 문득 가만히 생각하다 느낀 게 하나 있었다. 10년 후에 내가 어떤 모습일지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10년 후에 내 모습이 기대되지 않았고,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다시 한번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실 여전히 고민 중이다.
나는 회사에서 배운 레슨으로, 업에 대한 나만의 기준 몇 가지를 정했다.
1. 내가 이전 회사를 선택한 가장 큰 기준은 회사가 가진 가치와 사명이었다. 좋은 영향을 미치는 기업. 그런데 기업이 영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 의미와 가치는 희미해졌다. 이건 비단 내가 다닌 회사가 나빠서라기보다는, 모든 사기업이라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와 사명은 나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너무나도 쉽게 바뀐다. 회사를 통해 나의 가치와 사명을 성취하려 했으니, 시간이 지나면서 오는 괴리감이 점점 커졌다. 그래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집단'에 들어가기보다는, 내가 하는 일이 직접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2. 나는 똑같은데 어떤 때에는 칭찬을 받고, 어떤 때에는 비난받았다. 회사의 방향과 대표자의 방향은 항상 변한다. 이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였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이 여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일수록, 성취감과 만족감 역시 내가 열심히 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보다는, 내가 어떻게 일을 해내는지가 중요한 독립성과 개별성을 가진 업무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3.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나는 오직 나에게만 미친 듯이 집중해서 살았다. 내가 제일 중요했고 모든 의사결정과 시간 배분의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그런데 40대, 50대가 된 나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변도 살펴보고,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중년에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이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런 지식과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사회생활과 일은 점점 익숙해졌다. 시간이 더 지나면 쥐고 있는 것이 더 아쉬워질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고, 더 많은 기회비용에 고민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