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줄곧 사이판에서 살고 있는 친구가 최근 한 2년 정도 연락이 없어 과연 이 친구와도 회자정리가 되는 건가 또 그러면 그러라지 마음을 비우고 살았다. 그러다 작년 가을인가 겨울 무렵에 갑자기 연락이 돼 반가웠다. 사람의 마음이 또 그렇지 않아 연락이 없어 아쉬워했던 것도 사실이었으니.
마지막 통화를 했을 때가 생각난다. 사이판에 큰 물난리가 나서 죽을 동 살 동하며 산다고 했다. 그곳은 한국과 달라서 수해 복구가 늦고 더구나 교민 사회는 아예 기대를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듣고 보내줘 봤자 빛도 안 날 알량한 돈을 복구하는데 쓰라고 보내주기도 했다. 아니 차라리 그 돈으로 맛있는 것 사 먹는데 쓰고 기운 내 열심히 복구하라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연락이 없었는데 다시 연락이 되고 보니 지금도 그 후유증 속에서 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세상에, 그럼 벌써 몇 년을 그러고 살았단 말인가. 난 감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연락이 닿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 후 우린 한 번씩 돌아가면서 연락을 하기로 했다. 한 번은 내가, 또 한 번은 그 친구가.
그전부터 이 친구와 연락을 하고 지내면 어떤 대가가 따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책을 보내줘야 한다. 그곳은 마땅히 책 사 볼만한 데가 없어 한국에서 보내주지 않으면 읽을 수 있다고 했다. 난 그런 곳이 있다는 게 놀랍기도 했지만 차마 모른 척할 수 없어 그동안 꽤 여러 번 적지 않은 분량의 책을 보내주기도 했다. 물론 내가 다시 읽지 않을 책들이다. 버리든, 팔든, 기증을 하든 책을 정리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것도 꽤 큰 일이다. 책을 보내줘야 하니 이 일은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물론 그렇게라도 내 책이 필요한 사람, 필요한 곳에 간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러기 위해 정리한다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으니 또 그런 부탁을 받지 않을까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며칠 전 전화를 해 책을 보내 달란다. 이 친구와 연락하지 않고 있는 동안은 그런 부탁도 받지 않으니 한쪽으론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대신 다시 안 볼 책들은 주민센터에 기증을 하거나 중고샵에 팔기도 했지만 그래 봐야 표도 나지 않았다. 그러면 이 친구가 생각나기도 했다. 내 책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걸까. 그러다 또 그런 부탁을 받으니 반가운 게 반, 부담이 반이다.
친구는 뭔가 미안한지 이번엔 조금만 보내달란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번 수해 때 그나마 있던 조그만 도서관도 부서지고 내가 보낸 책 역시 물에 떠내려가 흔적조차 없거나 있어도 파손돼 더 이상 볼 수가 없다고 했다. 이미 오래전에 내 손을 떠난 것이니 미안해할 건 없는데 난 그곳의 수해가 그렇게까지 심각했던가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얘긴즉슨 많이 보내줘 봤자 도서관이 없으니 어디 둘 곳도 없고, 그냥 몇 권 보내주면 집에 두고 자기만 볼 거란다. 나는 그런 친구에게 많이 보내거나 적게 보내거나 똑같이 힘들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친구는 그동안 내가 보내 준 책들은 몇 번씩 되풀이해서 읽었다고 했다. 이 친구가 그런 말을 하는 건 나에 대한 미안함과 위로는 아니었을까 싶었다. 하지만 나는 새삼 이 친구에 대한 존경스러운 마음이 꿈틀거렸다. 원래 처녀 적부터 책을 좋아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거듭해서 읽을 줄은 몰랐다. 나는 그렇게 책을 거듭해 읽는 사람은 작가의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게 작가적 자질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 가능성은 한 번 읽고 마는 사람보다 더 높지 않을까. 그래서 이 친구가 혹시 작가의 꿈이 있는 건 아닌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가 보내 준 무슨 책, 무슨 책은 한때 TV 브라운관을 풍미하고 지금도 여전히 유명한 누구라면 알만한 유명 강사도 언급했다며 넌 정말 좋은 책만 보내줬다며 고마운 마음을 그렇게 돌려치기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는 그 좋은 책을 그 수해에 다 날려 먹었다는 거지.
어쨌든 알겠다고 하곤 지금은 언제 보내주겠다는 약속은 못하겠고 보내게 되면 연락하겠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작년 가을 20년 전 이사 오면서 차마 풀지 못한 책 박스들과 그 위에 차곡차곡 천정까지 닿을 듯한 책들 거진 대부분 처분한 상태라 마땅히 보내 줄 책이 지금은 없다고 했다. 그러니 나는 기억하되 너는 그런 부탁을 한 적이 없는 것처럼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책을 보내겠다고 하면 그때 어디로 보내면 되는지 알려주면 된다고 했다. 물론 거기엔 약간의 거짓말도 섞여있긴 하다. 없긴 왜 없겠는가. 이럭저럭 모르면 못해도 작은 박스 하나는 금방 채운다. 그저 이 친구를 기다리게 만들면 내가 부담스러울 테니 거리를 두겠다는 거다.
전화를 끊고 생각하니 이 친구가 그렇게 책을 거듭해서 읽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겠구나 싶었다. 그건 작가가 되고 싶은 것보다 당장 책을 쉽게 구할 수 없으니 그런 것이다. 새삼 그걸 헤아리지 못했던 내가 오히려 미안하기도 했고 한편 왠지 모르게 이 친구가 부럽기도 했다. 우리는 책 읽는 속도가 책 모으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책만 쌓아 놓을 때가 많지 않은가. 천장 높이 가득히 쌓아 놓고도 부족해 또 책을 사려고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기웃거리지 않는가. 게다가 일 년이면 미처 다 피워보지 못한 책들이 몇 트럭분이나 파쇄되어 버린다는 걸 생각할 때 이 친구는 그동안 내가 보내 준 그 알량한 책을 얼마나 애지중지하며 읽었을지 알 수가 없다. 수해에 떠내려가는 책들을 보면서 발을 동동 굴렀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파쇄된다는 걸 알면 저 책 좀 나 사는 곳으로 보내주지 한숨을 쉬었을지 알 수 없다. 그런 걸 생각할 때 나는 너무 편하게 세상을 살고 있구나 싶다. 정말 파쇄만 하지 말고 어느 독지가나 출판사나 서점에서 좀 나서서 그 친구가 사는 곳에 잘 일어나진 않겠지만 그래도 일어날지도 모르는 기적 좀 일으켜줬으면 좋겠다.
좀 귀찮아서 그렇지 그 친구에게 책을 보내주는 건 나로서도 좋은 일이긴 하다. 그렇게 책을 판답시고 중고샵에 힘들게 들고나가면 몇 권 되지도 않은 책을 다 팔지도 못하고 돌아오는 때가 있기도 하다. 매입을 불허당했기 때문이다. 그런 순간이 오면 별의별 오만가지 잡동사니 생각들이 다 떠오른다. 물론 결코 유쾌한 생각들이 아니라는 건 비슷한 일을 당해 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그렇게 중고샵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책들이 내 친구가 사는 사이판에선 어서 옵쇼다. 새 책을 보내주지 못해 내가 오히려 미안해해야 한다. 물론 그럴 땐 돈은 생기지 않으니 그것으로 퉁친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이제 또 책을 보내주면 그 친구는 자기만 읽겠다고 했으니 곶감이나 꿀단지 감춰두듯 그렇게 읽을 것이다. 그래, 보내준다. 보내 줘! 쫌만 기다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