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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수집가 Sep 27. 2021

개가 살지 않는 집(1)

프롤로그-그 무척 우울한 오후

 다롱이가 세상을 떠났다. 

 다롱이는 2003년에 태어나 18년을 살다 간 요크셔테리어 종 수컷 개다. 그 보다 4년 전쯤 제니(몰티즈 암컷)가 밤에 잠을 자다가 아무도 모르게 세상을 떠난 적이 있다. 녀석도 혹시 그러지 않을까 내심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도 녀석은 광복절 날 낮에 식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떠났다. 

 하지만 과연 다롱이가 확실히 우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을까를 생각하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날 오후 나는 점심을 먹기 위해 주방으로 가려고 했는데 거실의 엄마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거실엔 소파 대신 침대가 있고 엄마와 다롱이가 함께 쓰고 있었다. 

 "야, 이리 와 봐."

 "왜?"

 "다롱이가 숨을 안 쉬는 것 같아."

 나는 급히 다가갔더니 다롱이는 또 자신의 오물을 뒤집어쓴 채 조용히 숨을 놓고 있었다. 다롱이는 몇 달 전부터 기저귀를 차고 있었는데 그게 익숙지 않아 몸에 제 오물이 묻을 때가 많았다. 이제 겨우 익숙할만했는데 요 며칠 다른 차원의 오물을 게워내고 있었다. 엄마가 굳이 나를 불렀던 건 다롱이가 마지막 숨을 몰아 쉴 거라고 생각했는데 과연 그때가 오는 건지 안 오는 건지 몰라서였다. 나는 순간 눈물을 터트리며 말했다.

 "다롱이 죽어."

 다롱이가 죽었어가 아니었다.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다롱이가 숨을 안 쉰다면 그 순간 죽은 것이 맞지 않을까. 그런데 엄마는 왜 숨을 몰아쉬는 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나는 죽은 게 아니라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엄마와 난 그런 식으로 다롱이의 죽음을 조금이라도 지연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아무튼 난 다롱이의 생명이 이제 1분도 채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내내 다롱이와 함께 기다려온 순간인데 역시 죽음은 당황스럽고 슬픈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오물을 뒤집어썼으니 씻겨주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왠지 당장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면 그나마 붙어 있던 숨이 더 빨리 끊어져버리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고, 그렇지 않더라고 뭔가 숨이 완전히 멎을 때까지 기다려줘야 할 것만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성미 급한 엄마는 마지막 가는 길 깨끗하게 해서 보내줘야 하지 않겠냐며 씻기를 강행했다. 그러니까 다롱이는 씻기는 중에 숨이 멎은 것 같다. 의사가 있으면 정확한 사망 시간을 알 수 있었을까? 다롱이가 정확히 언제 사망했는지는 우리로선 가늠하기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어쨌든 이제 다롱이가 죽은 건 확실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녀석은 네 발이 뻗힌 상태로 꼬여 있었는데 완전히 펴진 채 늘어져 있었다. 몸은 오래전부터 비쩍 말라 뼈를 드러낸 채 꼭 종이를 구겨놓은 것 같았다. 사람이고 짐승이고 죽을 때가 되면 곡기를 끊는다던데 녀석은 벌써 일주일째였다. 조그만 녀석이 어떻게 일주일이나 아무것도 안 먹을 수 있을까, 다른 개는 그렇게까지 오래가는 것 같지 않은데 저러다 다시 살게 되지 않을까 오히려 터무니없는 희망을 품게 될 지경이었다. 왜 개들은 병이 나면 며칠 먹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역시 그런 기적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다롱이는 숨은 이미 끊어졌는데 눈은 뜨고 있었다. 동생이 눈을 지그시 눌러줬지만 녀석은 눈을 감을 생각이 없는지 계속 뜨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 낯설고도 슬펐다. 결국 타월을 머리끝까지 덮어 줬는데 이번엔 왠지 타월이 여리게 들썩거리는 것이 자꾸 숨을 쉬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건 내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바로 이런 착각 때문에 다롱이가 정확히 언제 죽었는지를 가늠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저 울먹이며 다롱이에게 말했다. 

 "다롱아 수고했어. 사느라고 수고했어."

 그러면서 이제 막 무지개다리를 건넌 녀석을 위로해 줬다. 엄마 역시 울며 사죄를 구했다. 

 "아이고, 미안해 다롱아. 내가 잘못했어."

 그러면서 뭐라고 뭐라고 계속 중얼거렸다. 그게 엄마가 젊었을 때부터 우는 방식이었다. 어렸을 땐 그런 엄마의 울음소리가 마치 소낙비가 내리는 것 같고 참 서글프게도 느껴졌는데 지금은 8 순 노인이고 보면 그냥 노인답다란 생각이 든다.

     

 우린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자 반려동물 장례업체에 전화를 했다. 이곳은 두어 달 전에 인터넷을 뒤져 알아냈다. 그리고 다롱이가 죽기 3일 전에 장례 절차가 어떻게 되고 요금은 얼만지 알아보기 위해 전화를 했다. 처음엔 전화를 받지 않아 혹시 이상한 곳은 아닌가 의혹이 들었다. 그러나 얼마 만에 저쪽에서 알고 전화가 왔다. 엄마가 받았는데 엄마는 늘 전화를 하거나 받을 때면 청력 안 좋아 스피커를 켜고 하는지라 나도 들을 수가 있었다. 목소리는 착한 청년의 목소리로 침착하면서도 신뢰를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역력했다. 무엇보다 그는 국가가 지정한 업체로 믿을만한 곳이란 걸 강조했다. 뭐든 강하게 어필하면 오히려 거짓말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텐데 예로부터 우리나라가 개 가지고 장난을 많이 치고 살아왔으니 그쪽으로선 그렇게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우리대로 그쪽을 믿지 않으면 달리 방법이 없었다. 여기 말고도 다른 곳의 전화번호를 더 알아두긴 했지만 이곳이 이렇게 나올 정도면 그곳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날 이후 두 번째로 전화를 하니 마음은 편했다. 전화는 엄마가 했는데, "방금 다롱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어요." 하자 예의 그 청년은 그다음부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처럼 차분하고 친절하게 우리 집 주소를 물어봤고, 여긴 안양인데 지금 준비를 해서 출발을 하면 4, 50분 정도가 걸릴 거라고 했다.   

 우린 그동안 간단한 점심을 먹었다. 개는 사람과 같지 않아서일까 배가 고프니 방금 숨 넘어간 다롱이를 옆에 두고 점심이 먹어진다. 그래 봐야 찐 고구마와 옥수수를 조금 먹을 뿐이다. 그런 후 엄마는 성격대로 그동안 다롱이를 돌보느라 늘어놨던 여러 잡동사니 물건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작년 가을에 산 미끄럼 방지며, 설마 다롱이에게 기저귀를 채우게 될까 하며 이것 역시 작년에 처음 사 두기만 했는데 벌써 몇 봉지를 새로 샀는지 모른다. 또한 강아지 변 매트며 밥그릇과 물그릇에 수건과 휴지까지 말끔하게 치우기 시작했다. 뭐가 그리도 급할까, 그 모습이 마치 다롱이가 얼른 죽기를 바라기라도 한 것 같아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지만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집 앞에서 전화로 코로나 때문에 집에 들어갈 수 없으니 다롱이를 데리고 나오란다. 우린 다소 당황했지만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엄마에게 천천히 나오라며 먼저 나가 그들을 맞았다. 맞았다기 보단 그들과 실무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위함이 더 맞는 얘기일 것이다. 

 도착한 한쌍의 남녀는 회사 로고가 찍힌 검은 티셔츠와 역시 맞춤한 까만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최대한 공손하게 우리를 대했다. 사실 다롱이와 가족같이 지내왔으니 같이 가줘야 하는 것이 맞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애초부터 그런 마음을 먹은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나 조차도. 다롱이가 화장되는 걸 지켜볼 자신도 없었고, 거기서 모든 걸 다 마치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내 모습이 참담해서 감히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린 그저 모든 것을 그들에 맡기는 수 밖엔 없었다. 

 그들은 화장하는 과정에 대해서 비교적 자세하게 알려줬다. 화장은 오래 걸리면 하루를 넘기는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화장도 화장이지만 그 후 다롱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 궁금했는데 나 같은 궁금증을 가진 사람이 많았는지 여자는 사진을 보여주며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다. 사진을 넘기는 과정에서 수의를 입은 죽은 강아지가 보이기도 했는데 의외로 예뻤다. 사후처리는 깔끔하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요금에 관해서는 가장 기본적인 것만을 하는대도 처음 제시한 가격보다 두 배에 달했다. 역시 사람이나 반려동물이나 장례는 장례고 돈은 돈인가 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사람은 조의금을 받을 수 있지만 반려동물은 그런 것이 없다는 것.

 모든 궁금증이 풀리고 요금도 정산이 됐으니 지난 18년 동안 키운 다롱이를 내어 줄 차례가 되었다. 차엔 다롱이를 넣은 관 말고도 관 하나가 더 있었는데 예비로 있는 건지 아니면 또 다른 의뢰받은 곳이 있어 그곳으로 갈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로써 우리는 18년 만에 다시 개가 살지 않는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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