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유년 시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억수집가 Jul 03. 2019

우리 이모는, 미스 유

결혼은 어떻게 하는가

# 우리 이모는, 미스 유

그 시절은 미제라면 사족을 못 쓰던 시절이기도 했다. 마침 외가의 친척 할머니가 미국 사람을 상대로 이태원에서 클럽을 운영했고, 큰 이모가 거기서 카운터 일을 보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집에 미제 커피는 물론이고 고체형 커피 크림에 티백 홍차와 코코아, 후추, 분말주스 등 여러 가지 물건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그 모든 것들은 이모와 그 친척 할머니가 보내 준 물건일 것이다.  


가끔 엄마는 우리들을 시켜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이모를 전화로 호출하는 때가 있었다. 그러면 엄마는 저쪽에서 누가 전화를 받던 “안녕하세요? 카운터의 미스 유 좀 바꿔 주세요.”라고 또박또박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카운터가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도 몰랐지만 호기심에 너나 할 것 없이 내가 전화하겠다고 싸우곤 했다. 아직 변성기도 지나지 않는 앳된 목소리가 그런 말을 하면 얼마나 우스울까. 그래도 우린 우리의 목소리가 앳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끔 이모는 밤늦게 우리 집에 와 하룻밤 자고 가기도 했는데 아마도 그 다음날 쉬는 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때면 이모는 우리들 틈에 끼어서 자곤 했는데 어떤 땐 너무 늦게 오는 바람에 언제 왔는지도 모르고 그 다음날 알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우린 이모가 왔다고 좋아라 했지만 함부로 알은 체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시간에 이모는 자고 있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얼굴을 보고 인사할 수 있는 때는 우리가 학교를 다녀온 후에나 가능했다.


어떤 때는 이모가 언제까지 자나 지켜보기도 했는데 거의 12시까지 자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물론 이해는 했다. 밤늦게까지 일하다 왔는데 그렇게 자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런데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은근 뭔가 있어 보였다. 게다가 난 이모가 미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미인들은 그렇게 자는가 보다 했다. 하지만 나중에 성인이 되고 한참 후에 안 건데 이모는 그냥 잠이 많은 체질이었을 뿐이다. 그래도 한때 미인은 잠꾸러기란 말이 공공연히 나돌기도 했는데 그것은 부인 하진 못할 것 같다.   


#결혼

결혼은 피가 섞이지 않는 두 남녀가 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던 난, 언니는 오빠와 결혼을 하고 나는 내 동생과 해야 되는 줄 알았다. 그건 엄마가 우리 4남매를 낳되 딸, 아들, 딸 아들 순으로 낳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집도 우리와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내가 동생과 결혼할 아무런 의무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속이 후련하던지. 하지만 그렇다면 난 누구와 결혼을 해야 하는 걸까 의문스럽기도 했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건 너무 먼 미래에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지금 답을 달 수 없는 질문은 그냥 묻어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저씨, 그거 아동 성희롱이에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