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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년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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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수집가 Jul 13. 2019

연장자로 사는 건 너무 힘들어

#자가용

당시 아버지는 자동차 정비업을 하셨는데 그런 아버지한테 차가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솔직히 난 그때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셨는지 확실히 알지 못했고, 늘 걸어서 대문을 나서는 아버지만 봐왔기 때문에 그 이후의 이동수단이 뭔지도 알지 못했다. 설혹 자가용이 있다고 해도 그 좁은 골목까지 들어 올 수도 없었다. 집에 차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래서 아버지는 차가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명절 때면 항상 아버지는 아침 일찍 먼저 나가 어디선가 자동차를 끌고 왔다. 그러면 큰길 앞에 차를 세워두고 식구들을 다 태우고 할머니 댁으로 가는 것이다. 차례를 지내기 위해서.


그것을 노골적으로 좋아했던 건 오빠였다. 나는 차를 타면 늘 멀미를 했었기 때문에 차를 좋아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한 번은 차가 있으면 부자냐고 오빠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오빠는 “그럼, 그것도 모르냐 병신아.” 하는 것이었다. 그제야 우리 집이 그래도 못 사는 집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오빠가 저렇게 좋아하는 건 어떤 의민지 알 수가 없었다. 자동차를 탈 수 있어서 좋다는 건지 아니면 아버지가 자동차를 가지고 계신 게 자랑스러운 건지. 둘 다였겠지?    


#터널

할머니 댁은 녹번동에 있었다. 그곳을 가려면 무슨 터널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게 또 할머니 댁에 가는 하이라이트였다. 그 터널을 지날 때 우린 굴속을 지나간다고 들떠 있었다. 그 묘하고도 짜릿한 느낌은 명절보다 더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우린 예의 바른 어린이였기 때문에 소리를 지르거나 하진 않았다.   

  

#임무       

명절날 나와 동생의 임무는 오랜만에 만난 사촌 동생들 한껏 웃겨주는 것이었다. 그게 왜 그렇게 중요했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연장자로서 어린 동생들이 오면 심심해할까 봐 그게 신경 쓰였나 보다. 나와 동생이 열심히 웃겨주면 정말 웃겨서 웃은 건지 아니면 그 노력에 감복해서 웃은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사촌들은 열심히 웃어줬다. 난 사람을 웃긴다는 게 이렇게 보람 있는 일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그래도 한편 사촌 동생들을 웃겨야 한다는 건 너무 힘이드는 일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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