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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년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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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수집가 Jul 16. 2019

감기에 특효약은 없다

태어나서 한 가장 최악의 선택

#감기

엄마는 겨울에 우리가 감기에 걸리면 갱엿에 콩나물을 넣어 뜨거운 아랫목에 뒀다가 먹도록 했다. 그것도 밤에 자기 전에. 


난 처음에 이것을 먹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마다 겨울에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지나갔느냐면 그렇지도 않았다. 해마다 걸렸다. 그런데도 엄마는 나와 동생은 약국에서 조제한 약을 먹게 했고, 언니나 오빠만 그것을 먹게 했다. 아마도 엄마는 동생과 나는 어리니까 빨리 낫게 할 요량으로 그렇게 했던 것 같다. 그 때문에 불만이었다. 왜 언니와 오빠는 달콤한 약을 먹고, 나와 동생은 쓴 약을 먹어야 하는가. 엿을 녹인 것이니 달콤하지 않겠는가.  


과연 맛이 어떨까 궁금하긴 했지만 쉽게 먹을 수 없었다. 그때는 엄마의 말을 하늘 같이 알고 지냈던 때라 못 먹게 하니 뺏어 먹을 수도 없었다. 악동인 오빠는 당연히 못 먹게 방해가 심할 것이고 만만한 언니한테라도 한 숟갈 동냥을 청했는데 거절당하고 말았다. 어느 때 오빠가 감기에 걸려 그것을 먹을라치면 내 눈 앞에서 얼마나 맛있게 먹던지. 그러면 더 먹고 싶어 지는 법이다. 엄마가 그것을 먹지 못하게 한 건 괜히 나눠 먹다 감기에 옮을 수도 있어서였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난 또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이번에도 엄마는 나에게 약을 지어 먹이겠지 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내가 그렇게도 고대하던 엿 녹인 감기약을 먹게 해 주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잘 모르겠다. 나도 언니나 오빠처럼 그것을 먹어도 되리만큼 컸기 때문인 것인지 아니면 가벼운 감기였기 때문에 그런 건지.


아무튼 드디어 기다리던 밤이 되었고 시럽처럼 된 갱엿을 콩나물을 한쪽으로 걷어내고 한 술 떠서 입에 넣었다. 순간 그 맛이란 뭐라 형언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오래 기다려서 먹었던 맛이 고작 이런 맛이라니. 뱉을 수도 없고, 콩나물 비린내는 왜 그렇게 나는 것인지. 게다가 오빠는 옆에서 맛있지, 맛있지 하는데 뭐 때문인지 맛없다고 할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엄마는 앞으로 내가 감기에 걸리면 이렇게 해 줄 건가 의문스럽기도 했다. 그 맛을 어떻게 표현할까 다시는 감기에 걸리고 싶지 않은 맛이라고나 할까?


그때 이후로 여전히 감기는 매년 나를 찾아왔지만 그 시럽은 그때 이후로 다시 먹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최악의 선택

엄마는 한 술 더 떴다. 그 시절 콜라는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음료는 아니었다. 어느 핸지 같은 학교에 다니던 오빠와 언니가 소풍을 간다고 엄마가 콜라를 싸 줬다. 덕분에 나와 동생도 그날만큼은 콜라를 마실 수 있었다. 그런데 하필 그날따라 나와 동생이 한꺼번에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나는 그 와중에도 이 콜라를 마실 수 있을까 신경이 쓰였다. 감기에 걸렸으니 찬 음료는 엄마가 허락해야 마실 수 있었다.

 

그런데 엄마는 웬일로 콜라를 마실 수 있게 해 주었다. 단 차게는 마실 수 없었고 따뜻한 아랫목에 찬기를 가시게 하고서야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 사는데 별 요령이 없었던 나와 동생은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콜라를 먹고 싶은 마음에 엄마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다음은 어땠을는지 굳이 말하지 않겠다.                 


날이면 날마다 있는 기회도 아닌데 감기가 다 나은 다음에 먹겠다는 말을 왜 못 했는지. 그건 정말 태어나서 한 가장 최악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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