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
가끔 동네가 싸움판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어디서 싸움이 났다 하면 삽시간에 사람들이 떼로 몰려가 동그랗게 둘러싸고 구경하느라 바글댔다. 세상에서 제일 볼만한 것이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라지 않는가. 정말 볼만해서라기보다 왜 불이 났는지, 왜 싸움이 난 건지 그 원인을 알고 싶어서는 아닐까. 그리고 그건 나와 전혀 관련 없을 거란 모종의 믿음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우리 엄마가 싸움의 중심축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느 날 피아노를 갔다 오니 우리 집 앞에 한 떼의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웅성웅성 떠들고 있었다. 놀라 냉큼 달려가 보니 엄마가 한쪽 눈 밑이 파여서 빨간 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싸움의 상대는 며칠 전 우리 집에 한 포대의 밤고구마를 팔았던 아줌마였다. 그땐 밤고구마를 먹는 건 큰 행운처럼 여겨졌던 때라 그 아줌마 덕에 그걸 먹게 된 건 기쁜 일이긴 하지만 너무 밤이라 잘못하면 목이 미어 먹다가 죽을 판이었다. 엄마도 이러다 내 아이들 잡겠단 생각이 들었나 보다. 그래서 반품을 요구했다 그 아줌마는 안 된다고 옥신각신 싸우다 기습적으로 돌멩이 하나를 들어 엄마한테 던져 그렇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그렇게 맞기도 다행이지 싶었다. 잘못하면 실명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아도 그 아줌마는 시장판에서 싸움꾼으로 소문이 나있기도 했다. 그럴 것 같으면 아예 처음부터 상대를 말 것이지 우리한테 제대로 된 밤고구마 사 먹이겠다고 하다 이런 사단을 벌인단 말인가. 그렇더라도 좀 심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한바탕 했음에도 성이 안 풀렸는지 엄마와 그 아줌마는 내가 보는 앞에서 2차전 했다. 다행인지 그땐 부천에 사시는 외할머니가 와 계셔서 싸움에 큰 보탬(?)이 되었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역시 악동인 오빠가 빠지지 않았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오빠는 아줌마의 뒤에 머리끄덩이를 잡더니 한 뭉텅이의 머리카락을 뜯어내는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얼마나 의기양양하고 장난기가 역력했다. 오빠의 그런 행동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말아야 분간이 가질 않았다. 결국 할머니가 악에 받혀 “이것들아, 이 XX야.”하면서 쓰러졌는데 순간 신발이 벗어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 역시 할머니가 좀 웃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웃을 수는 없고 아무튼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그 맘도 나도 많이 자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조금만 어렸더라도 잔뜩 겁을 먹고 엉엉 울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할머니가 그렇게 쓰러져서일까? 싸움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요즘 같으면 누군가의 빠른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고 시 작도하기 전에 끝났을 것이다. 엄마와 할머니는 혼이 나간 듯 마루 끝에 걸터앉아 한동안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 후 언젠가 여름에 수영장을 다녀오다가 차멀미가 나서 시구문 시장에서 택시를 내리자마자 어느 맨홀 뚜껑에 한바탕 토를 했다. 정말이지 내 일생 그렇게 많은 토를 해 본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때 엄마는 급한 대로 물 한 양동이를 얻으려고 단골 야채 가게를 찾았는데, 가는 날이 장난이었을까 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예의 그 고구마 파는 아줌마가 여전히 누군가의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는 게 보이더라는 것이다. 글쎄, 지금 같으면 분노조절 장애라고 이해도 할 텐데 그런 이해가 없던 시절엔 어떤 식으로 이해해야 할지 그냥 혀만 끌끌 찼다.
엄마는 세월이 흐르고 그때를 생각하면 창피하다고 종종 말하곤 했다. 안 그러겠는가. 나름 점잖은 마나님인데.
#엘리제를 위하여
그렇다고 내가 피아노를 단 1도 안 좋아했냐면 그렇지는 않다. 1 정도는 좋아했다. 그건 하논, 바이엘 이런 걸 치다가 피아노 명곡집인가 하는 악보집을 칠 때다. 특히 거기엔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란 곡이 있었는데 난 그것을 빨리 배우고 싶어서 조바심을 냈다. 난 그때까지 피아노 소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선생님은 물론이고, 당시 선생님께 같이 배웠던 나 보다 나이 많은 언니가 둘 있었는데(그들은 친자매지간이었다) 그들은 피아노를 유창하게 쳤을 뿐 아름답게 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안 그랬다면 나도 열심히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유독 <엘리제를 위하여>는 뭔가 낭만적이며 동시에 고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내가 조바심을 냈던 것도 당연했다. 물론 선생님은 악보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가르치셨던 건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아무 데나 내키는 대로 하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훑었는데 몇 곡은 뛰어넘기도 했다. 왜 그런지는 알 수는 없었다. 그런 곡은 재미없다고 생각하신 건지 아니면 가르쳐 받자 내가 따라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신 건지.
아무튼 그 곡으로 인해 처음으로 피아노에 의욕을 보였으니 선생님도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배운 지 얼마 안 돼 선생님은 무슨 사정에 의해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셨다. 그리고 나를 선생님의 친구에게 인계했다. 새로운 선생님도 나쁘진 않았지만 워낙에 내가 피아노를 싫어하니 엄마가 어느 날 결단을 한 것 같았다. 더 이상은 피아노를 가르치지 않기로. 처음엔 그 사실이 잘 믿기지 않았다. 정말 피아노를 치지 않아도 되다니. 이제 겨우 의욕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말이다. 난 좀 아쉽긴 했지만 미련 같은 건 없었다.
결국 내가 처음으로 의욕을 보인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는 엄마를 위한 내 마지막 헌정 곡이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