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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년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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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수집가 Aug 06. 2019

인생은 미스터리

#책 옷 입히기

학년 말의 백미는 아무래도 다음 학년에서 쓰게 될 교과서를 받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때는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나눠줬다. 한 반이 80명이나 되고 한 두 과목이 아닌데 그것을 누구 하나 덜도 더도 가지 않고 자기 몫의 교과서를 받는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좀 대단한 것 같다.

 

교과서를 나눠주는 날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들떠있다. 바로 새 책이 주는 질감이 꽤 괜찮았던 것이다. 썩 좋은 재질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도 말이다. 또한 제법 무거울 법도 한데 새 책을 받았다는 기분에 별로 무겁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런 때가 되면 빳빳한 달력 종이가 모자란다. 그것이 책 커버가 되는 것이다. 더구나 우린 형제가 넷이나 되니 몇 달 전부터 이것을 모아두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나는 수도 있다. 지금이야 북커버가 있다지만 그때는 일일이 그렇게 달력 종이로 책에 옷을 입혀야 했다. 담임선생님은 너희들은 옷 입고 다니면서 교과서에 옷을 입히지 않으면 추워서 쓰겠냐는 말을 듣기도 했으니 이건 나름 중요한 행사였다.

 

어떤 책은 한 학기만 쓰는 책이 있고, 어떤 책은 1년 동안 쓰는 책이 있다. 주로 한 학기만 쓰는 과목은 ‘국산사자’인데 즉 국어, 산수, 사회, 자연의 첫 글자를 따 그렇게 불렀다(그다음 음미실도체 음악, 미술, 실과, 도덕, 체육이다). 그만큼 중요하고 배울 내용이 많은 건 그렇게 했다. 


책 싸기의 달인은 단연 언니였다. 초등학교 고학년 아니면 갓 중학교를 들어갔을 나인데도 제법 손이 능숙했다. 그 손놀림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몰래 스르르 잠이 들기도 했다. 달력으로 책을 싸는 건 가장 흔한 형태이긴 한데 조금 욕심을 내면 종이 포장지에 쌀 수도 있겠지만 그건 돈 낭비라고 생각했다. 달력으로 책을 싸서 한 학기 정도가 지나면 때도 타고 어떤 땐 접힌 부분이 너덜너덜해지는 경우도 있다.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 할 풍경일 것이다.         


#소풍

초등학교 2학년 때 남산 팔각정으로 처음으로 소풍을 갔다. 1학년 때는 안 갔다. 아마도 그때 감기가 옴팡 걸렸든가 아니면 다른 병에 걸려서. 그래 봐야 꾀병이었을 텐데. 


처음으로 가 본 팔각정은 생각보다 별로 볼품도 없고 심심했다. 이런 심심한 곳을 가겠다고 전날 소풍 간다고 환호를 했던 걸까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뭐 봄바람은 좋았던 것 같다. 김밥 도시락에 예의 **콜라를 마실 수 있는 공인된 날이다.  


그게 나의 학창 시절을 통틀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 본 소풍이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이후에도 나 역시 여전히 소풍을 간다면 아이들과 함께 소리를 지르기도 했지만 그 목적이 달랐다. 그날 나는 소풍을 가지 않고 집에서 느긋하게 쉴 수 있으니까 그게 좋아 소리를 지른 것이다. 아쉬움 같은 것은 없었다. 간간이 부모님 따라 이곳저곳을 다니기도 했으니까.

 

오래전, 성인이 되어 교회 친구들과 함께 남산 타워를 간 적이 있다. 거기에 여전히 팔각정은 있었지만 남산 타워에 밀려 그야말로 뒷방 늙은이처럼 방치되다시피 했다. 하지만 거기엔 여전히 9살의 내가 있었다.

   

#튜브

내가 본격적으로 물과 친해진 건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이모들과 수영장을 다니면 서다. 물론 처음엔 겁이 나긴 했다. 더구나 미끄럼틀을 내려올 때는 다른 사람들은 재밌다고 난린데 나는 한 번 타고 두 번째 올라서는 도저히 자신이 없어 그냥 내려왔다. 그때 나는 튜브를 끼고 있으면 안전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때부터는 수영복이 흠뻑 젖으라고 신나게 놀았다.

그렇게 잘 놀고 돌아와서는 시구문 시장 맨홀 뚜껑에 상상도 못 할 만큼 토를 했다.        


#영아 시체    

집 앞 큰길엔 쓰레기를 모아두는 곳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쓰레기 처리가 원활하지 않아 그렇게 길에다가도 쓰레기를 모아두곤 했다. 그리고 며칠 만에 한 번씩 쓰레기를 담을 수 있는 큰 트럭이 와서 치워가곤 했다. 그렇게 며칠에 한 번씩 치워갔으니 위생은 좋을 리는 없을 것이다. 파리도 만만찮고.


어느 날 그곳에서 영아 시체가 발견이 됐다. 나는 그 말을 누군가에게 듣고 얼른 그곳으로 달려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상체는 당시 흔하게 사용되던 누런 시멘트 봉지에 씌워져 있었고 가랑이가 심하게 찢겨 빨간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때문에 여아인지 남아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했을까? 

 

이상한 건 당시 여러 사람과 함께 보고 있어서인지 생각보다 놀랍진 않았다. 만일 혼자 봤다면 굉장히 많이 놀랐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최초 발견자는 아무래도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였을 것 같은데 그는 온데간데없다. 그야말로 기절초풍하지 않았을까. 


그때 내가 들은 말은 어떤 미친 엄마가(그게 왜 꼭 엄마여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빠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이에게 자신의 성병이 옮겨간 것 같아 그것을 확인해 보려고 그 같은 짓을 벌였다는 것인데 과연 믿을만한 소린지는 알 수 없었다. 성병은 또 뭐란 말인가? 그 시절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너무 많았다.


저 아이가 저렇게 난자당하기까지 얼마나 아팠을까? 그것도 왜 하필 저런 더러운 곳에 버려져야 했는지 피워보지 못한 생명이 안타까웠고, 생명이 없으면 결국 하나의 고깃덩이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이 아이의 영혼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과연 죽음이란 무엇일까 마음만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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