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날 집어 삼키면 어쩌지...
#고자질쟁이
오빠와 동생과 놀기 좋아했던 나는 엄마에게 놀면서 있었던 일을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나를 고자질쟁이라고 비꼬았다. 내가 엄마한테 그렇게 하는 게 오빠가 볼 때는 고자질한다고 보였던 모양인가 보다. 왜 우리가 노는 걸 엄마에게 말하는 게 오빠에겐 그렇게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그때부터는 엄마한테 말하는 것을 자제했다. 오빠가 나와 안 놀아주면 그것도 좀 그럴 테니.
#코딱지
어렸을 땐 왜 그리도 코가 많은지 모르겠다. 겨울엔 코를 닦느라 정신이 없었고, 봄엔 코가 멎느라 코딱지가 많았다. 난 가끔 두 번째 손가락으로 파서 그것을 먹기도 했다. 찝찔한 맛이었다. 내가 그랬던 이유는 허기증 때문이 있었던 것 같다. 방금 뭔가를 먹고 뒤돌아서면 배가 다시 고팠다. 그래서 난 수시로 뭐 좀 먹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아마도 그것에 대한 심리적 요인이었던 것 같다.
#대천 해수욕장
여름날, 우리 가족과 아버지 친구 분 중 금은방을 하시는 유 씨 아저씨 가족들과 대천 해수욕장엘 간 적이 있다. 거기엔 할머니도 동행했다. 아마도 그때가 내가 태어나서 처음 바다를 마주했던 때가 아닌가 한다.
처음 갔으니 설레기보단 저 바다가 나를 삼키지 않을까 겁이나 감히 가까이 갈 수도 없었다. 그러니 있는 동안 수영복만 열심히 갈아입을 뿐 바닷물 한 방울 적시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런 내가 한심하고 안타까웠는지 나를 번쩍 들어 바닷물이 찰랑 거리는 곳에 내려주었다. 처음엔 안 간다고 칭얼거렸는데 그렇게 내려서 물장난을 치니 그도 있을만했다.
할머니가 모레 찜질하는 것도 그때 처음 보았다. 할머니는 약간 배가 나왔는데 모레를 목까지 차오르게 덥고 주무시기도 하셨는데 그게 좀 낯설고 신기했다. 유 사장 아저씨네 따님은 오빠와 같은 연배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를 많이 예뻐했다. 우리는 여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서로 건너편에 방을 잡았는데 그 언니가 건너편의 나를 보고 자꾸 눈을 깜빡이며 추파를 보냈다. 그러면 나는 그럴 때마다 쑥스러워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