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외가댁
#성희롱
그날은 왜 그 샛길로 피아노 선생님 댁에 갈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며칠 지나다니다 보니 그 개가 안 보이는 것 같아 그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계단을 내려갈 때쯤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어이. 어이”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반지하 철창이 쳐진 어느 집 창문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어떤 아저씨가 나에게 다짜고짜 “뽀뽀.”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땐 또 하필 골목엔 나 외엔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까지 그 말은 아버지가 나에게만 쓰는 고유명사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는 아버지와 비슷한 톤으로 그렇게 말을 하는데 기분이 묘했다. 물론 못 들은 채 하고 내 갈 길을 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엄마와 놀러 온 막내 이모에게 얘기를 했더니 그건 네가 예뻐서 그렇게 불러 본 것일 거라며 대수롭지 않은 양 했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길거리를 지날 때마다 기습적으로 볼을 뜯기거나 만짐을 당하곤 했는데 솔직히 그렇게 하는 당사자나 그 얘기를 듣는 제삼자는 기분이 어떨지 몰라도 당하는 나는 적잖이 불쾌하다. 어린아이라고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뭐라 정확히 표현을 할 수 없어서 답답할 뿐이지. 설혹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면 뭐하겠는가? 예쁘다고 해줘도 불만이냐고 하겠지.
그로부터 5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후 미투 운동은 지켜보면서 아동 성폭력은 꼭 예쁘게 생긴 아이만 겪는 것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단지 여자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당할 수 있다. 게다가 그 시절 엄마나 이모조차도 그걸 예뻐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지금은 그렇게 말하는 어른이 없기를 바란다. 아이가 그런 일로 기분이 상했다면 적극적으로 이해해주고 대변해주길 바란다.
그땐 정말 그런 일은 나만 겪는 일인 줄 알고 혼자 자책하기도 하고 빨리 잊으려고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만일 그 옛날로 돌아가서 창살 안에서 “뽀뽀”라며 나를 불렀던 그 아저씨를 다시 만난다면 “아저씨, 그거 아동 성희롱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주산
여름에 부천에 있는 외가댁에 놀러 갔다. 하루는 외삼촌의 친구(어쩌면 친척뻘이었는지도 모른다)가 집에 놀러 왔다. 그리고 저녁 덜 더운 때를 이용해 할머니와 막내 이모가 장을 보러 나갔다. 그때 외삼촌도 무슨 일인지 잠깐 집을 비운 때였다. 결국 집엔 외삼촌의 친구와 나 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남겨지고 보니 좀 어색했지만 외삼촌의 친구는 나에게 주판 놓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어색했는데 잘 됐다 싶었다. 그때는 주산이 인기가 많았고 학원까지 생겨 성업 중이었다. 주산이 암산에 좋다고 해서 TV에선 하나의 묘기로까지 소개될 정도였다.
나는 1에서 5까지 놓는 방법을 그때 처음 알고는 마치 세상의 심오한 진리를 깨달은 양 기쁘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잠시 후 그렇게 나갔던 외갓집 식구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고 난 마음이 다시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걸 보면 그때 난 그 상황이 적잖이 긴장했던 것 같다.
#외가댁
사실 외가는 여러모로 불편했다. 거리도 멀고, 화장실도 불편했고, 게다가 결정적인 건 외할머니 음식이 입에 안 맞았다. 외할머니는 조미료는 상극인지라 아무리 음식을 이것저것 해놔도 젓가락이 어디에 가 머물러야 할지 몰랐다. 그래도 입에 맞는 것이 딱 하나가 있었는데 그게 계란찜이었다. 그래서 할머니는 우리가 가면 계란찜은 빼놓지 않고 해 주셨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그렇게 여러 가지로 편치 않은 곳인데도 친할머니 보단 외가댁을 더 좋아했으니.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했다. 친할머니는 단출하게 당신 혼자 조용히 사셨고, 외가는 외할아버지를 비롯해 이모와 삼촌까지 제법 북적거렸으니 아무래도 우리 집과 비슷한 게 그야말로 사람 사는 집 같았으니. 역시 집은 편하고 불편하고를 떠나서 사람의 기운이 깃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