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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Nov 01. 2020

시간

영글어가는 열 달 

열 달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마흔 번의 일주일이 지나가면 우리에겐 아직은 숨 쉬는 것만이 전부인 작은 아이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될 것이라고 병원에서 알려주었다. 280여 일 동안 나는 내 안의 아이를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우선 주변에서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엄마와 같은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행복해한다'는 말을 너무나 많이 들어왔었기에 무언가 교육적인 일보다는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제일 먼저 행했던 일은 나와 아이에게 집중하기 위해 과감히 회사를 그만두는 일이었다.(사실 마음먹고 퇴사 의견을 낸 것은 아니었고, 퇴사 의견을 내던 날 임신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타이밍이 그렇게 절묘하게(?) 되어버렸다.) 


두 번째 생각했던 일은 아기를 위한 용품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는 일이었다. 마침 다니던 병원 문화센터에서 아이용품 만들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신청할 수 있었다. 아기용품을 손바느질로 만드는 수업이었고, 준비물은 집에서 바늘과 실을 챙겨 오기만 하면 재단되어 있는 원단을 제공하고 바느질은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아마도 아기를 가진 예비엄마들이 손을 많이 쓰게 되면 아기에게 좋은 영향이 가는 거라 이런 수업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것 같았다. 첫 수업에는 아기의 친구가 되어 줄 애착 인형을 만드는 일이었다. 한 땀 한 땀 아기를 생각하며 같이 바느질하는 예비엄마들의 수다도 같이 곁들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만들었던 듯하다. 2-3일 정도 지나니 원숭이 인형(나는 아기의 출생 연도에 맞춰 돼지 인형을 만들고 싶었지만, 문화센터에서는 디자인이 예전에 만들어진 거라 원숭이 인형밖에 만들 수 없는 환경이었다!)이 금방 완성되었다. 두 번째 수업은 아기 조끼를 만드는 일이었는데 아이의 체형에 따라 3년까지는 입힐 수 있다기에 3번의 겨울이 지나는 동안 아이에게 소중한 옷이 될 수 있을 거 같단 생각이 들어 참여하게 되었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아 이 조끼도 2-3일 정도 소요되었고 다 마친 다음엔 직접 우리 아가가 쓸 수 있는 용품을 내 손으로 만들었다는 작은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다. 


세 번째로는 운동이었다. 병원에서도 과체중이었던 현재의 상태가 아이를 낳을 출산일이 다가올수록 몸무게도 체형도 많이 변할 거라 이야기해주었고 관리하지 않으면 출산할 때 아이와 산모에게 모두 힘든 일이 될 수도 있다고 말씀하셔서 한 달에 1킬로그램 정도만 찌는 걸로 계획을 잡고 운동을 해보기로 했다. 출산에 도움되는 운동(수영, 요가 등)을 관련 운동 업체에 가서 참여할 수도 있었지만 회사를 그만둔 상태였고, 가계에 더 도움되는 방향으로 절약하자는 의미에서 생활에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걷기 운동을 선택하였다. 인생 선배인 주변 지인 언니들도 많이 걸을수록 출산할 때 도움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한몫했기 때문이었다. 그냥 걷기만 하면 심심하고 흥미도 금방 잃어버릴 거 같아서 동네 커뮤니티에서 출산 및 육아에 필요한 물품이나 작아져버린 아기 옷들을 나눔 한다는 소식을 보고 신청해서 나눔 받으러 다닐 때마다 걸으면서 운동 겸 출산&육아 준비를 했었다. 달 수가 채워질수록 불러오는 배를 본 동네분들은 나눔 하시면서 응원과 걱정, 조언 등을 많이 해주셔서 받을 때마다 소소한 감사함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아기용품들을 보며 진짜 나도 육아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가는구나를 느낌과 동시에 나도 나중에는 사용하고 사용 시기가 지나버린 용품들은 필요한 누군가에게 다시 나눔으로 도움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아이를 키우고 있는 요즘도 내가 나눔 받고 사용했었던 육아물품들을 사용하는 시기기 지나버리면 동네 커뮤니티에서 혹시나 필요한 분들이 계실까 싶어 다시 재나눔으로 순환을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한 번씩 집에만 있기 답답할 때면, 지하철을 타고 서울 곳곳 집에서 최대한 멀리 홀로 나들이를 가거나 인천 국제공항까지 가서 무거워진 배를 잡고 날아오르던 비행기를 구경하던 때도 있었다. 지하철 탈 때마다 임산부 좌석이 비워져 있지 않은 날들이 비워져 있는 날들보다 더 많아서 시민의식에 대한 아쉬움도 같이 느끼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내 안에 아이를 10달 동안 품고 있는 중간중간에도 임신&출산 관련 책이나 동화책도 읽고 했지만, 영상매체 속에서 나오던 고상한 태교와는 조금은 거리가 멀고, 조금은 게으른 예비엄마였다. 나의 첫 태교 시간은 모자람이 많았지만 지금도 잘 자라주고 있는 내 아이를 보며 그 열 달의 시간을 후회하거나 아쉬워하진 않는 걸 보면 나 나름대로 만족했던 시간을 보냈었던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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