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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내 Sep 09. 2020

1년 만에 잡은 카메라 : 창작자의 우울증 극복기 2

1인분 일기-2


 극복기 1에서 말했듯이, 우울증이 극에 달해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아등바등 버텨내던 1년을 보냈다.

매일 일기를 쓰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책도 틈틈이 읽었다.

정말이지 더 나아지고 싶어서, 이대로 방치하다간 죽어버릴 것만 같아서 최선을 다해 버텼다.


그런 노력들이 차곡차곡 쌓여, 이 감정들을 다시 작업으로 풀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디어 들었다.


1년 만에 새로운 카메라를 들고 작업을 하러 나간다니..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또 어디선가 탓하고 비웃을 것만 같았고, 

어쩐지 설렘보단 불안함과 긴장이 훨씬 컸던 것 같다. 

아이디어들을 노트에 정리하고, 소품들을 구매하고, 스튜디오를 대관하고..

(지방에 살아서 늘 큰 작업 할 때는 서울에 컨셉 렌탈 스튜디오를 빌려서 짐 싸들고 간다)

이 모든 과정이 너무 오랜만이라 기분이 이상했다.




가지치기


끊임없이 내 목을 내가 치는 날들이었다.
잘라내라고 해서 다 잘라냈는데,
나인건 아무것도 남지 않았네.



 1년 만에, 18년도 새해를 맞이한 첫 작업. 그렇기에 애정이 유독 깊은 나의 사진이다.

이때부터 작업 소재는 우울증을 앓던 동안 일기에 정리해뒀던 생각과 감정을 가져와서 쓰기 시작했다.

속으로만 앓던 것들을 하나하나 이미지화시켜서 끄집어 내놓으니 점점 더 나를 알게 되고,

마음의 짐이 하나씩 덜어지는 기분이었다.

공감해주시는 분들을 보며 기쁘기도,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작업은 여동생과 남동생이 함께 서울로 가서 도와주었다. 모델은 여동생이다.

다른 사람들이 신기해할 정도로 우리 삼 남매는 사이가 좋고, 교류가 많은 편인데 정말 다행인 것 같다. 그나마 동생들이 있어서 좀 더 힘내서 버틸 수 있지 않았나 자주 생각한다.



 가지치기[식물의 겉모양을 고르게 하고 웃자람을 막으며, 과실나무 따위의 생산을 늘리기 위하여 곁가지 따위를 자르고 다듬는 일]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이게 만약에 사람이라면?이라는 생각에서 시작해 이 사진을 촬영했다.

우리도 살면서 잘 자라게 하기 위해, 더 가치 있어질 미래를 위해 많은 것들을 희생하며 살아가곤 한다.
타인들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 잘라내야 되는 것이라고 해서 잘라낸 나를 보며 정말 나다운 것이 얼마나 남았나를 생각하며 촬영했다.


정말 걱정이 많고 무서웠던 촬영인데, 생각하는 그림으로 나와주었고 이때를 기점으로

메이킹 포토 (연출사진)에 보다 더 깊은 관심이 생겨서, 스타일이 고착화된 것 같다.

이 사진을 페이스북에서 스쳐 지나가면서 보고 어떤 사람이 찍은 사진이었는지, 1시간 동안 찾아보셨다는 분도 계셔서 정말 기뻤고, 앞으로의 창작을 해나갈 힘도 얻었다.



애정 하는 사진이라 연작으로도 작업했다. 이 두 사진은 집 다락방을 나름의 미니 스튜디오로 꾸며서 촬영했다.

우울함과 무기력함에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방면으로 시도를 했었다.



비록 월세이지만, 집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다락방이 있고, 그 다락방이 옥상으로 연결되는 구조라는 건 신의 한 수였다. 이곳에서 많은 작업을 하고, 영감도 얻었다.

원래는 창고로 써 짐만 쌓아두던 다락방에 사진 소품들을 모아 두고, 배경지를 두고 나름의 미니 스튜디오라고 생각하며 작업을 했다. 스튜디오 촬영인 줄 아시지만 사실은 집 다락방에서 찍은 사진인 것도 많다.



동생들의 도움을 받아 집에서 촬영했던 과정 컷.

이때 당시까지도 아직 계속 카페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하고 싶은 작업을 하려면 그때나 지금이나 비용이 필요하기에..

지금은 다행히도 하고 싶은 창작을 하기 위해 창작으로 돈을 번다.


척추


닿을 수 없는 것들
무너지는


다행히 일하던 카페에서 같이 일하는 분들이 다 좋았고, 대화도 많이 했고

작업도 다시 시작하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나 자신을 느꼈다.

이렇게 아르바이트와 함께 근근이 작업하던 어느 날,

sns를 구경하다 문득 어떤 글이 눈에 들어왔다.


<제39회 근로자 미술제>


.. 내 사진도 공모전에 내볼까?

그때부터 다양한 공모전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창작자의 우울증 극복기 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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