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내 Sep 09. 2020

사진으로 해외에 가다 : 창작자의 우울증 극복기 3

1인분 일기-3

<제39회 근로자 미술제>


 내가 이 글을 페이스북 하다가 본 건 정말 우연이었다.

근로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미술제라니.. 

마침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작업을 병행하고 있는 나와 딱 맞잖아?

라는 생각에 바로 도전을 했다.


그렇게 내가 애정 하는 사진 중 또 하나인, 

<학습된 무기력>이 사진부문에서 입선하는 결과를 거머쥐었다.

사진을 시작한 이후 처음, 아니 미술을 시작하고 나서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건 처음이라 더 뜻깊었다.


늘 미술 하는 걸 탐탁지 않아하던 엄마도 이 결과 이후, 

슬쩍 사진집을 두고 가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

스물셋, 나의 감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던 엄마와의 관계도 본격적으로 풀려가고 있었다.




학습된 무기력


<학습된 무기력> 2018


학습된 무기력

 "심리학 용어로, 피하거나 극복할 수 없는 부정적인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어떠한 시도나 노력도 결과를 바꿀 수 없다고 여기고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대표적인 예로, 셀리그만의 [회피 학습을 통한 공포의 조건 형성]을 알아보는 동물실험이 있다.
개를 세 집단으로 나누어 상자에 넣고 전기충격을 주었는데, 코로 조작기를 누르면 스스로 전기충격을 피할 수 있었던 1집단어떤 자극도 받지 않은 3집단은 다른 상자에 넣어도 스스로 전기자극을 피했지만
어떻게 해도 자극을 피할 수 없고, 대처할 수 없는 환경에 있었던 2집단피할 수 있는 환경에 처해졌을 때도 피하려 하지 않고 전기충격을 받고 있었다는 유명한 실험 이야기이다.





 우울한 사람은 어떤 증상을 보일까? 마구 흐느껴 울까? 아니면 유난히 어두워 보일까?
사람은 모두 다르고, 다양한 증세가 있겠지만 내가 그 당시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무력함>이다.
우선 나를 소중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몸의 건강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생활패턴도 식생활도 엉망이 되었다. 당연히 운동도 전혀 하지 않았다.
밖에 잘 나가지 않았고, 하고 싶은 게 없었고, 전부 의미가 없는 것만 같았고, 

다른 사람들과도 소통하지 않았다. 가까운 사람들이 아무리 "고쳐라"라고 해도 의미가 없었고 들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왜 내가 이렇게 힘든데 내가 변해야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당장 죽을 것 같이 힘든데, 네가 죽으면 슬퍼할 사람을 생각해봐-같은 위로들은 마음에 전혀 와 닿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모든 게 의미가 없는 것만 같은데, 내가 왜 다른 걸 해야 하는 거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문제를 대할 때, 소통이 아닌 회피를 일관하였고
상황에 대한 개선 의지가 없이 그저 실험 속 개처럼 전기충격을 받고만 있었다.
내 상황을 개선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소통을 피하고 다락방 안에서만 지냈다.

이 당시에 느꼈던 감정을 사진으로 담고 싶어서 이 무렵엔 무기력의 이미지를 많이 작업했다.
그 사진 중 하나가 위에 올린 <학습된 무기력>이다.





사진으로 가게 된 첫 해외, 캄보디아





 공모전 입상작은 작품집이 출간되고, 경복궁역 서울 메트로 미술관에 전시되는 혜택이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혜택이 있었는데, 자부담이 전혀 없이 캄보디아로 가서 해외 문화 체험과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미술을 배울 돈도 없어서 독학했던 내가 해외를 가보았을 리는 만무했다.

그래서 너무 겁도 났지만, 엄마의 적극 추천으로 가게 되었다.


캄보디아에서 찍은 사진들


처음 보는 하늘, 처음 보는 거리, 처음 보는 사람들..

우리나라처럼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나라이기도하며, 사람들이 참 친절했던 나라.

다락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을 때는 전혀 볼 수 없던 풍경들을 보았다.

그 당시에 일행 중에 내가 막내고 다 한참 어른들이었는데,

같이 공모전에서 입상해서 가게 된 일행분들도 너무 좋았다.



자원봉사하러 갔을 당시, 허락을 구하고 촬영한 아이들.

같이 사진도 찍고 단체 줄넘기도 했는데 체력에서 내가 밀렸다.. 아이들 수영실력과 줄넘기 실력이 엄청났다. (나는 수영도 못한다)


자원봉사라는 명분으로 갔다지만, 나는 나부터도 구하지 못하는 주제에 

선민의식 같은 느낌은 전혀 가지고 싶지 않았다. 그런 마음은 정말이지, 끔찍하다.

타지에서 만난 인연, 사람 대 사람으로서만 집중하고 싶었다. 

오히려 내가 너무 다정한 친절을 많이 받아 힘이 되었다.

서비스직을 하면서 죽어버렸던 인류에 대한 애정이 타국에서 받은 친척들로 다시금 생겨났다.


우연히 사진을 찍었고, 우연히 공모전에 사진을 냈고, 우연히 국외까지 오게 되었다.

캄보디아에서의 일주일은 정말로 스물셋의 나에게는 큰 일이었고,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방에만 틀어박혀 있던 나에게 모든 게 너무 새로워서,

조금 더 경험하고, 조금 더 바라보고, 내 시선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졌다.


캄보디아를 다녀오고, 나는 오랫동안 일했던 카페를 그만뒀다.


창작자의 우울증 극복기 4에서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1년 만에 잡은 카메라 : 창작자의 우울증 극복기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