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연결된 사람이 있다. 흔히들 알고 있는, 두루 쓰이는 의미의 ‘연결’이 아니다. “사랑하고 그리며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정이 맺어지다”. 연결의 숨겨진 사전적 의미다.
그 사람과 나는 서로 많이 좋아했다. 단순한 이성적 호감을 넘어 순수하게 사람 대 사람으로서 많이 좋아했다. 돌이켜보면 참 예쁜 마음, 예쁜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사람과 연인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발전하지 못해 더 아쉬움이 남는다. 서사만 잔뜩 써내려가고 아직 끝을 보지 못한 소설 같아서. 연인이 된 후 이별했으면 아쉬움이 이렇게까지 남지 않았을텐데, 시작도 못해본 관계라 더 아쉽고 안타깝다.
이별의 아픔은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시간이 흘러 ‘아쉬움’ 정도로만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상처가 많이 아물었지만, 꽤나 긴 시간 동안 난 이별의 아픔에 괴로워했다.
긴 시간 동안 그를 그리워하면서 한편으론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나만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까봐. 그 사람에게 난 ‘연결된 사람’이 아닐까봐. 원체 정이 많은 성격 탓에, 그 사람에게도 정이 많이 들었었다.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정이 많이 든 사람과의 헤어짐은 항상 힘든 법이다. 그도 나에게 정이 많이 들었었고, 정이 들었던 만큼 많이 힘들었을까 궁금하다.
살아 보니 나의 정 많은 성격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관계는 쌍방향이기 때문에, 한쪽의 마음이 너무 크거나 작으면, 즉 두 사람 마음의 크기가 비등하지 않으면 그 관계는 오래 가지 못한다. 난 항상 상대방보다 마음의 크기가 더 큰 쪽이었던 것 같다. 이별 후 그 사람의 마음이 어땠는진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내가 더 아파했을 거란 확신이 든다.
꼭 그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을 볼 때도 사람들은 내 기대만큼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난 그들을 내 인생의 소중한 인연으로 여겨 먼저 연락을 하고 만남을 가지고 애정을 준다. 그에 비해 ‘날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구나’라는 느낌을 받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드물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때마다 인간관계에 회의감이 든다.
내가 지나치게 마음을 쉽게 주는 것인지, 그들이 매정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누가 옳고 그른 개념은 아닐 것이다. 다를 뿐이다. 결국 나와 다른 ‘남’일 뿐이라는 사실에 서운함이 밀려온다. 서운함을 표현하면 상대방이 그것을 부담으로 느낄 수 있기에, 그럼 그 관계는 지속되기가 더 힘들어지기에, 그냥 참고 묻어둔다. 항상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쪽은 정이 많은 사람이다. 상대방은 알지도 못하는, 혼자 서운해하고 삭이는 과정을 반복한다.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통신 수단이 발달해 사람 간의 연결(連結)이 쉬워졌지만, 서로 연결(戀結)된 사이인 관계는 찾아보기 더 힘들어졌다. 메신저, SNS 등으로 얕고 넓은 관계를 형성하는 데 익숙해진 나머지,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많다. 어쩌면 익숙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럴 필요조차 못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신세대라면 신세대인데 아날로그에 더 가까운 사람인지, 손편지로 마음을 전하던, 사람과 관계를 맺는 데에 순수한 정성을 쏟았던 그때가 지금보다 더 낫지 않나 생각이 든다. 손가락으로 화면만 몇 번 두드리면 몇 초 안에 연락이 되는 지금의 스마트폰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발전할 대로 발전한 디지털 매체가 원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