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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시험공부

15년 만의 중간고사


몇 년만의 ‘중간고사’였을까? 통번역대학원 1학기 첫 중간고사를 치렀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에 쳤던 학교 시험 이후 15년만 이었다.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반갑지 않은 손님인 ‘시험’이 워낙 오랜만이어서 감회가 남달랐다.


오랜만의 시험공부이긴 했지만 어린 학창 시절에는 전혀 공부를 하지 않아서 사실상  첫 중간고사 시험 준비였다. 부끄럽지만 내 나이는 곧 불혹이지만 어떻게 시험공부 전략을 짜야할지 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고, 시험 직전에 푹~ 퍼져버렸다.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시험 2주 전 매일 쏟아지던 과제가 없자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손 놓고 있던 지저분한 집구석이 눈에 들어오고 환절기에 들어서며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코감기와 기침감기에 걸렸다.

“당장 해야 하는 과제가 없네? 시험공부는 내일 해도 되지 않을까? 오늘은 그동안 벼려왔던 집 정리를 좀 해야겠어!”


“환절기라서 아이들이 계속 아파서 병원을 가고 가정 보육해야겠어...”


시험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차고도 넘쳤기 때문에 나를 위한 ‘시험공부’를 우선순위에 두겠다는 다짐을 굳게 하지 않으면 나는 언제나 ‘엄마’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시험 주간엔 밀린 시험 범위 공부를 벼락치기하느라 숨 쉴틈조차 없었다.


통번역대학원 1학기 첫 중간고사 시험 당일이 되었다. 처음엔 항상 어리버리한 상황이기 때문에 ‘순차통역’ 중간시험도 엉망으로 쳐놓고서는 혼자서 헤벌레 하며 시험이 끝났다고 좋아했다. 다른 시험은 말해서 뭐하랴?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은 바로 ‘중간고사에 임하는 나’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학기 초에는 통번역대학원을 드디어 들어왔다는 사실에 마냥 즐겁기만 했다.

하지만 중간고사를 친 이후 문득 두려움이 몰려왔다. 벌써 1학기 절반이 끝났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과연 2달 동안 얼마나 성장했을까?

분명 매일 공부를 하고 있지만 연년생 3,4살 아이가 있다 보니 주말에는 공부 시간이 거의 없고 평일에도 다른 사람들보다 공부시간이 부족해서 불안한 마음이 생겼다.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다 보면 2년 후 졸업 시험을 칠 때 ‘통역사’로서의 자질을 갖출 수 있으리라고 믿고 있지만 나의 불리한 상황은 사람을 더욱 절박하게 만들었다.


사실 학기 초만 해도 ‘몰라서 용감한’ 상태였으므로 ‘장학금을 꼭 받고야 말겠어!’라는 다짐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무리한 다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시험공부에 전념하는 만큼 예민해지기에 친절한 엄마가 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엄마가 되고 나서 나 스스로에게 꽤 만족하고 있는 점이 있다. 바로 ‘현실성 있는 적당한 타협선’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중간고사를 준비하며 예상했던 것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내 모습에 놀라며 ‘가늘고 긴 줄로 생존하기' 전략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2년간 생존해서 어떻게 해서든 '졸업'하리라.


어떤 일이든 단기간에 무리하면 금방 에너지가 소진되어 지쳐버린다. 더욱 최악인 상황은 엄마가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 화? 가 아이들에게 미친다는 사실이다.


나는 항상 전력질주를 하고 허덕거리는 사람이라 ‘피곤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이다. 하지만 못고칠 것 같던 '피곤한 성미'도 아이들을 위해 조금은 죽일 수 있게되어 기쁘다.


엄마가 되니 1등? 좋긴 한데 1등보다 중요한 일이 참 많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사실 오랜만에 친 중간고사는 아쉬운 점이 참 많았다. 결과보다는 스스로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기말고사는 좀 더 제대로 준비해서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운 시험이 되었으면 바라본다.

아참...그래도 성적 욕심은 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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