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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5시간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갔다

“엄마 다녀오겠습니다! 오늘 즐거운 하루 보내고, 재밌게 놀고 있어!”

4살, 3살(이라고 하지만 15개월) 연년생 남매가 어린이집에 들어가면서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하루 보내라며 신신당부를 한다. 인사를 건네는 내 목소리는 그렇게 밝을 수 없다.


드디어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갔다.

우리 집만 그런건 아니겠지? 등원 준비는 정말 만만치 않다. 아침 에너지를 홀딱 쏟아부어야 한다.


보통 9시부터 10시 사이에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등원한다. 하지만 우리집은 둘째가 갖 돌을 지난 상태라 너무 이른 등원은 힘들어해서 10시 직전이 되어야 등원을 완료한다.


“휴우~ 힘내야지! 남이 타주는 커피를 사먹어볼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항상 들리는 동네 카페가 있다. 저렴한 가격이지만 원두도 꽤 괜찮고, 사장님이 건네시는 밝은 인사에 왠지 힘이 나서 자주 들리는 곳이다.


항상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커피를 기다리며 잠시 숨을 돌린다. 집에 가면 또 2차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커피를 홀짝 거리며 마시며 집으로 걸어가는 길은 하루 중 가장 여유로운 순간이다. 마치 금요일 퇴근 직전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초보 주부 경력 5년차인 내 경험을 비춰보면 주부는 모든 일을 할 때 ‘우선순위’를 잘 고려해야 한다.

바로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등원한 10시부터 3시까지의 시간이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깔끔 좀 떨어보겠다고 아침부터 정리 정돈에 너무 힘을 쏟아부으면 그날은 집 정리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게 없다. 정리를 깔끔하게 하고 나면 배도 고프고 잠시 쉬고 싶어지니 소파에 눕고 싶어진다. 별 수 있나? 집에 아무도 없는 걸. 소파에 누워 핸드폰 끄적거리다보면 시간은 어느덧 3시가 된다.


철저히 내 경험이 그랬다는 말이고 다른 사람도 나와 똑같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정리는 굉장히 고된 일이고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위이이잉~”

집에 도착해서 엉망인 집은 대충 내가 돌아다닐 수 있을만큼만 적당히 정리하고 세탁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1500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함께 책상에 앉았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간 10시부터 3시까지 5시간의 시간이 생기지만 온전히 공부만 할 수는 없다.

사람이니까 밥도 먹어야 하고, 체력도 딸리니 운동도 해야한다.

내가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새벽 2시간과 오후 3시간, 그러니까 하루 평균 5시간이다.


학교 과제도 해야하고 영어 공부도 해야하는데 일 벌리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블로그에 글도 쓰고 최근에는 에세이까지 쓰겠다며 마음 먹었다. 어떻게 다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경험한 바에 따르면 그래도 벌려놓으면 꾸역꾸역했다.


공부를 하다보면 밥을 대충 때우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아이들과 있을 때라고 잘 먹는가? 그건 또 아니다. 아이들을 챙기다보면 내 입에 들어가는 건 음식이 아니라 생존 수단같은 느낌이 많이 든다. 나만 그런 건 아닐테다.


책상에 앉아 정성스레 작성한 ‘To-do-List’를 살펴보며 오늘의 우선순위를 생각해본다.

“오늘까지 과제를 꼭 제출해야하고... 영상 강의도 봐야하고... “


고백하자면 그날의 할일 리스트를 작성해놓고 모두 완료한 적은 없었다. 

오늘의 할 일 목록을 완료하려면 하루가 24시간을 꼬박 투자해야 가능할텐데 그렇다고 할 일 목록이 줄어들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책상에 앉아 할 일 목록의 아이템을 하나씩 지우다보면 어느덧 2시에 가까워진다.

그 전까지는 커피를 마시면서 적당히 허기를 채우려고 하는데 너무 배가 고프면 초코 단백질바를 하나 먹거나 토마토사과 주스를 갈아 마시며 식사시간을 최대한 뒤로 미뤄본다.


2시가 되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밥을 먹어야만 한다.

냉장고에 전날 먹다만 ‘어중간하게’ 남은 반찬들을 다급하게 꺼내고 밥을 먹기 시작한다.

마음이 다급해서인지 음식이 별로 맛이 없어서인지 밥 먹는 시간은 그다지 즐겁지 않다.


3시가 되면 본격적으로 바빠진다.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하기 때문이다. 아참, 아침에 하지 못한 집 정리도 해야한다.

그래...나도 씻어야지... 깜빡했네...


이렇게 재미없는 하루를 열거하다보면 참 재미없어보인다.

그래도 감히 행복하다고 말하면 이상하려나?


둘째가 어린이집에 등원하고 낮잠을 자기 시작한지 2주밖에 되지 않았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런 공부도 사치였다.


그토록 하고 싶어했던 공부를 마음껏 하루 5시간이나 할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함이 절로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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