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심연에 가닿는 찰나의 기적을 놓을 수 없다.
마치 찾아오듯 도달하는 책이 있다. 김연수 작가 이름은 여러 번 들어봤지만 읽어본 적 없었다. 어떤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할 것 같다고 추천해준 소설을 밤새어 읽었다. 그다음 날 그는 나를 만났기에 나는 그 책을 알게 되었고 마침 도서관에 그 책이 있었다. 건너 건너 파도 타듯 내게 온 소설
바다와 나비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 출전 : 바다와 나비 1946-
소설에도 나오는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처럼 이 소설을 닮은 시는 없을 것이다.
소설을 다 읽고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조용히 낭송한다.
나비의 마음으로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너무 차갑지 않았길 기도하며
그 비행이 저 바다 끝까지 이어지기를 고요히 바라본다.
소설은 재미있다. 한국에도 이런 소설이 있었구나 반성할 만큼 참신한데 전체적인 분위기가 아름답기까지 하다.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어린 시절 미국으로 입양된 '카밀라'는 양어머니의 죽음 이후 자신의 생모와 자신의 과거의 진실에 대해 알고자 한국땅 '진남'을 찾아온다. 그녀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양한 시점으로 추적하는 과정을 담은 소설이다.
어느 시점을 넘어가면 가속도가 붙어 멈출 수밖에 없으며 성장소설인지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인지 미스터리 추리소설인가 싶을 만큼 쾌감을 느끼는 순간도 있다. 장르를 알 수 없지만 그게 이 소설이 주는 신선함이다.
끝까지 읽고 나면 한 번 더 읽어보고 싶어 지는 마력이 있는 소설.
메시지는 강하게 여운이 남는다. 불명확하고 은유적인 에너지가 온몸을 감싼다. 그래서 세상이 조금 더 달리 보인다.
심연 아무도 알 수 없는 그 속사정
우리는 누군가를 정말로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을까?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알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일상 속 아무렇지 않게 타인의 속사정을 재단하고 판단하는 건 얼마나 익숙할까.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대로 세상을 재구성하는 일을 멈출 수 있을까?
반대로 얼마나 순진하게 나의 진심이 나의 사정이 나의 작은 노력에 의해서 상대방에게 쉽게 전해질 수 있다고 믿고 상처 받곤 할까?
대부분 실패하고 마는 경험의 실패를 알면서도 누군가의 심연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시도를 멈출 수 없는 까닭은 가끔 기대치 않은 누군가 그 속에 푹 들어와 나의 심연을 어루만져주고 우리가 통했다고 느끼는 짜릿한 그 찰나의 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이해하고자 이해받고자 시도하고 연결되려고 한다.
상처투성이가 될지도 모를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를 내려한다.
그 깜깜하고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한 심연 속에도 찰나의 마법 같은 옅은 빛이 투과되는 단 한순간을 기다리며
개인의 불행은 건기나 우기나 마찬가지입니다. .... 불행이란 태양과도 같아서 구름이나 달에 잠시 가려지는 일은 있을망정 이들의 삶에서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거기 늘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거기 늘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잊습니다. ... 자신의 불행을 온몸으로 껴안을 때, 그 불행은 사라질 것입니다. 신의 위로가 아니라면, 우리에게는 그길뿐입니다. -148 page
그런데 왜 인생은 이다지도 짧게 느껴지는 것일까? 그건 모두에게 인생은 한 번뿐이기 때문이겠지. 처음부터 제대로 산다면 인생은 한 번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단번에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단 한번뿐인 인생에서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는, 그게 제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는 모두 결정적이다. ...그러니 한 번의 삶은 너무나 부족하다. 세 번쯤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의 삶은 살아보지 않은 삶이나 마찬가지다. -285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