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가 잘 안돼도 그냥 좋다. 너무 좋아하면 나중에 후회하기 마련이지만
꼭 이해를 해야만 좋아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반해버렸다. 화려한 트로피컬 컬러의 색감. 예쁘고 화사했다. 시대는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데 주인도 기다리지 않은 채 제 발로 뛰어노는 신발과 끊임없이 움직이는 역동적인 음식들. 마법인가 해리포터인가. 기발한 상상력이 현실처럼 구현된 이상하고 이상한 정신없는 이 세계를 미처 파악하지도 못한 채 빠져들어갔다. 손바닥을 딸각딸각 치며 고개를 휘저으며 깔깔거리며 즐거워했다. 이제껏 가본 적 없는 환상적인 놀이동산을 온 듯이. 그야말로 영화는 어제 본 에릭 요한슨 전시회가 영상으로 구현된 거대한 하나의 예술. 그런데 웃음이 나고 아기자기하고 복고풍이다. 아 너무 좋다! 주말에 이런 영화지.
세계관에 대한 설명도 없고 개연성 같은 건 없다. 이 주인공이 뭐하는 사람인지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좋다! 그냥 콜랭과 끌로에가 나오는구나. 그래서 둘이 사랑하는 이야기구나. 근데 그냥 좋다. 엄청 좋다. 또 보고 싶을 만큼 좋다. 이유 없이 좋아하는 영화는 늘 생겨버린다.
나도 같이 연체동물이 된 듯 비글무어를 배워보고 싶다. 그거면 충분하다. 난 이 영화가 좋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스포일러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기이한 집에 사는 부자 콜랭은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다. 그에겐 친구 시크가 있고 변호사인지 가정부인지 헷갈리는 인기도 많고 못하는 게 없는 니콜라와 함께 산다. 그들이 어딘가 소년처럼 느껴지는 데는 인생의 목적이 오로지 낭만적이고 진실한 사랑을 찾는 데 있다. 현실의 고민 따윈 1g도 안 한 채 그저 사랑만 할 수 있다면 뭐든 괜찮을 수 있는 낭만의 필터를 끼고 사는 사람들.
무언가 여자를 사귀는 데 영 적성도 자신감도 없어 보이는 콜랭은 친구들에 등에 떠밀려 파티를 가게 되고 그곳에서 우연히 클로에와 마주친다. 그녀에게 한눈에 반한 그는 어디 써먹지도 못할 썰렁 개그를 하자마자 후회하고 바로 사과하며 떠나려 한다. 이 바보는 뭐지. 그런데 인연이란 잡아주는 거다. 떠나지 못하게 누구든 잡아주는 건데 친구들이 다시 등 떠밀고 클로에가 그를 잡는다. 그래서 알 수 있다. 이 둘은 사랑하겠구나.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먼저 가 봐도 될까요?"
"안 가면 안 될까요?"
"그럴게요. 저 참 멍청하죠?"
"저도 마찬가지인걸요."
그리고 이들의 첫 데이트는 너무나 완벽하다. 아마 사랑에 빠져 마음이 터져나갈 것처럼 설레고 몸 둘 바 모르는 콜랭의 마음을 구현한 게 아닐까 싶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세상을 다 가진 듯 둥둥 떠다니는 마음. 시종일관 동화 같은 분위기
데이트 후반 부, 진지한 얘기를 해도 되냐고 묻는 콜랭.
"마음이 무겁고 답답해요. 지금 꼭 해야 하는 일이 있거든요. 이번에 망치면.."
"잘될 거예요. 제가 도울게요. 지금 안 되면 다음에 또 하고 실패하면 또 시작해요. 일생동안 하면 성공할 수 있어요."
그렇게 그 둘은 연인이 되고 범상치 않은 응급실행 프러포즈에 결혼까지 한다. 이 모든 순간이 현실과 닮은 구석이 없을 만큼 환상적이다. 사랑에 빠지는 그 순간 주변의 골치 아픈 문제까지 사랑 필터로 둥글둥글해져 버리기 때문일까.
결혼식까지 귀여웠던 콜랭과 클로에. (개인적으로 영화 속 결혼식 1위는 어바웃 어 타임인데 1위가 흔들릴 뻔했다.) 그런데 그들의 신혼여행 속 화면 분할이 심상치 않다. 콜랭이 있는 곳은 폭우가 쏟아졌고 세 발자국이면 도착하는 오른편에는 햇살이 밝다. 이때부터 영화의 변주가 시작된다는 암시였을까? 아니면 콜랭이 바라보는 햇살 가득하고 따뜻한 현실과 달리 클로에는 암흑 속 폭우 속에서도 콜랭을 사랑하기에 웃어줬던 것일까?
이후 참 이 영화다운 이유이지만 수련이 폐에 자라면서 끌로에가 많이 아프게 된다. 돈이 떨어지고 행복의 나라에서 살던 콜랭은 차갑고 비인간적인 일터로 내몰리게 된다. 집은 서서히 망가지고 옺갖 환상은 사라지고 먼지와 암흑으로 대체된다. 클로에의 생명이 꺼져갈수록 색이 모두 사라진다. 이 안타까움이라니. 그냥 둘이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깔깔 웃고 싶던 나의 기대감은 무참히 짓밟혔다.
이상하다. 행복에도 총량이 있기에 영화 속에서도 이 총량의 균형은 맞춰줘야 하는 건가. 환희의 순간 믿을 수 없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행복 뒤에는 꼭 필연적으로 불행이나 슬픔이 찾아온다. 그동안 많이 행복했지? 이젠 행복의 대가를 치러 낼 순간이야. 더없이 행복했던 끌로에와 콜랭의 사랑만큼 이후의 아픔은 씻어내려 발버둥 치며 노력해봐도 무기력하다. 눈치 없이 잔뜩 신났던 나의 행복 회로가 정처를 잃고 풀 죽어버렸다.
공장처럼 돌아가던 타자기를 바삐 치던 수많은 무미건조한 손 들 속 어떻게든 다음 이야기를 이어나가려고 안간힘을 주며 타자기를 쫒아 현실과 다른 상상에 가까운 다음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콜랭에게 많이 행복했으니 괜찮다는 위로를 던질 수가 없었다. 슬펐다. 너무 행복해한 게 분할 정도로 슬퍼져 버렸다. 역시 좋아한 게 죄다.
"날 용서해줄래? 당신을 너무 사랑하지만 곧 잃게 되겠지."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상상해냈으므로 이 이야기는 완전히 사실이다. -보리스 비앙'
영화의 첫 오프닝 문구. 어쩌면 그 타자기가 컨베이어 벨트에서 돌아가던 그 정체모를 농장은 이 영화를 만들어나가는 시나리오라는 생각이 든다. 이건 그냥 감독의 상상력.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상상 냈으므로 콜랭과 끌로에의 사랑은 완전히 사실이다.
감각적이어서 슬픈 영화. 그럼에도 나는 또 이런 영화와 사랑에 빠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