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솔직한 사람도 과거의 응어리는 남아 있더라.
'이효리'를 눈여겨보게 된 건 외모도 재능도 재력도 어느 것 하나 닮았을리 없는 별 속 그녀와 내가 의외로 닮은 구석이 있다는 걸 발견해 버리고야 만 이후의 일이다. 재능 넘치는 셀럽이자 트렌디세터, 시대의 아이콘 '연예인 이효리'가 어느덧 조금 멀리 사는 그저 친분 없는 '사람 이효리'로 느껴졌다.
'효리네 민박집'을 보면서 움찔움찔 찔리는 순간이 많았다.
민박집 개업을 앞두고 효리는 외모에 대한 불안감과 초조함을 미주알고주알 남편 '상순'에게 토로한다. '레이저 같은 거 안 해도 예뻐.'란 정석에 가까운 답을 듣고도 그녀는 계속 의식의 흐름대로 걱정과 고민을 말한다. 그러나 상순은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게 더 급하다. 성에 안 차던 그녀는 음악을 튼다. 화제를 돌리려는 상순의 노력에도 소용없다. 하고 싶은 만큼 쏟아내야 한다. 상순은 애정을 담은 눈빛으로 효리의 맞은편에 앉아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마지막은 약간의 장난과 개그로 마무리.
'상순 오빠'라고 하루에 백 번쯤 부르며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모습. 스트레스를 받다가도 신나는 음악이 나오면 리듬에 몸을 맡기고 진짜 신나 버리고 마는 아이 같은 모습, 에너지가 넘쳐 하이텐션으로 열을 올리다가도 체력이 방전된다든지. 스쳐 지나가는 생각과 감정, 타인에 대한 애정을 마음속으로만 간직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꼭 뱉어버리고 만나든지. 좋은 순간을 만나면 '좋다.''예쁘다' 누가 듣지 않아도 소리 내어 말한다. 다이내믹한 감정의 소유자, 감정에 충실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자기 만의 의식을 거행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옆 자리에서 같이 TV를 보던 남자친구는 장난기 있는 미소로 말했다.
"어디서 많이 봤던 건데. 이상하게 낯익네."
최근 예능도 뉴스도 거의 보지 않는데 채널을 돌리다가 '캠핑클럽'을 보게 되었다. 핑클 완전체가 오랜만에 만나 캠핑을 떠나는 모습을 담았다. 운전도 음식도 자체적으로 해결하는데 효리의 표현에 의하면 '아이러브스쿨'에 가깝다고.
'국내에도 저런 곳이 있어?' 외국의 이국적인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광활한 자연, 믿기 힘든 한적함과 여유로움. 제작진들의 섭외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다. 자연의 색감을 천천히 담은 영상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90년대 걸그룹 하면 떠오르는 대표 1세대 아이돌 '핑클' 시절을 레트로 감성으로 추억해 보는 것도 이 프로그램의 매력이다.
그러나 진짜 '이 프로가 참 좋다'라고 생각한 지점은 풍경도 출연자도 아니었다. 40살 인생 기억을 지닌 한 사람이 과거의 자신과 화해하고 너무 늦어버렸을지 모를 이해를 구하기 위해 과거의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추억을 보듬는 그 치유에 있다.
어릴 땐 누구든 조금씩 더 모가 나 있다. 왜 그때는 '너와 내가 다르다'는 차이가 잠깐의 불편함이 아니라 견딜 수 없는 불쾌감으로만 여겨지게 되는 건지. 미워하지 않는데도 상처를 주고 작은 오해와 망설임이 관계를 순식간에 냉각해 버린다. 그땐 나와 맞는 사람과 맞지 않는 사람의 구분이 너무나 명확해서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평행선을 그어버린다.
딱 봐도 달라 보였던 '이진'과 '효리'는 그 시절 서로 너무나 다르다고 생각했다. 사이가 나빴던 건 아니지만 대화 할 일도 없었다. 나이가 지나 열린 진이와 결이 안정된 효리는 의외로 잘 통한다는 걸 발견한다. 서로 공통점이 많으며 개그 콤비처럼 함께 있으면 웃을 일이 많다는 것 또한.
"너네가 날 싫어한다고 생각했어. 여기 오기 전까지는"
도도한 척, 관심 없는 척, 괜찮은 척 하지만 사실은 누구나 두렵다. 날 친근하게 대해주지 않는 사람들이 날 싫어하는 것만 같다. 아무도 배척한 적 없건만 내가 먼저 거절해 버린다. 젊은 날의 우리는 그리고 지금의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짐을 스스로에게 얹어 가며 무겁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지난 시절 가장 원망스러운 사람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왜 그렇게 움추러든 쫄보처럼 더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못했던 건 지. 과거를 회상하면 늘 자신의 못난 점을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이내 그리움이 덮친다. 그 사람이 보고 싶다는 건 그 시절 내가 놓친 기회에 대한 아쉬움. 이젠 더 이상 그럴 수 없다는 의미. 시간이 많이 지나 더 이상 연락을 닿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 꼭 용기가 난다. 마음을 내비치고 전달하고 싶어진다.
흔치 않은 기회를 잡아 같은 마음으로 아름다운 자연에서 서로의 과거와 악수하는 4명의 여자들이 눈물나게 아름답다. 프로그램을 보다가 가슴이 찡해지며 울컥하고 마는 건 나 또한 보고 싶고 그립고 미안한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일 거다.
캠핑 클럽을 보며 왜 이효리를 보며 내가 닮았다고 생각하는지 깨달았다. 20살의 이효리는 연예인 답지 않게 지나치게 솔직했다. 공연 전에 뭘 하냐는 기자의 질문에도 '립싱크를 하기 때문에 외모 단장을 해요.'라는 패기 넘치는 답을 했다고. 포장 없이 때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마음에 있는 말을 필터 없이 꺼내는 타입.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데 두려움이 없는 타입 (후폭풍이 있을지라도)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말하고 싶으면 편안하게 나의 속마음과 인생을 있는 그대로 말한다. 낯 뜨거운 이야기도 면전에서 잘하고 부족하고 찌질한 나 자신을 투명하게 드러낸다. 글에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고 말이지.
훨씬 많은 차이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녀와 내가 닮았다고 느낀 건 이것이 나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나야 일반인 A지만 그녀는 인기 절정의 연예인, 사람들의 관심과 눈치 속에서 살아가는 연예인인데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는지 대단하고 신기하고 많이 아팠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주도에서 내려놓고 사는 삶과 정상에서 담담히 내려오면서도 사람들이 나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얼핏 모순 같은 말을 하는 그녀가 이해된다.
그래서 그녀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다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