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즈 앤 이어즈 (Years & Years)

미래의 우리는 안녕할 수 있을까?

by 스텔라


정말로 괜찮아질까?


어느 때보다 뉴스를 공들여 자주 보고 있다. 나 하나도 감당하기 힘든데 보고 나면 괜히 기분만 더 쳐질 뉴스를 일부러 멀리 했다. 어느 때보다 오랜 시간 깊이 세상과 단절되어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을 담아 이웃의 안녕을 빈다. 아니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세계화와 세계 경제의 안녕을 바란다. 강풍에 떠밀려 가는 구름의 자취를 눈으로 그려보듯이, 평소라면 그저 흘려보낼 거대한 흐름 속에 있다는 걸 체감한다. 코로나로 인한 펜데믹 상황은 평소라면 외면할 거대한 담론을 개인에게 강속구로 던져버린다.


'전 세계 그래서 결국 우리의 일상은 어떤 모습이 될까?'


우리는 정말 괜찮아질까?
상상과 추측 만으로 미래를 그려보는 일은 막막한 일이다. 아주 잘 만든 이야기가 예제로 던져진다면 거기서부터 논의가 가능하다. 왓챠플레이를 통해 한국에 공개된 영국 드라마 '이어즈 앤 이어즈(Years & Years)'를 보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지금의 세계와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지점의 디스토피아를 이만큼 소름 끼치도록 현실적으로 담은 작품이 또 있을까? 곧 다가올 현실이 될까 두려운 동시에 그와 닮지 않기 위해 우리가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희망 또한 생긴다.


(*스포일러 주의)




기술 진보는 결코 인류의 진보를 담보하지 않는다.


2030년경 가까운 미래, 생명공학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다. 줄기세포 시술이 적용되어 실명 위기에 처했던 뮤리엘의 눈이 100% 치유된다. 나아가, 배서니는 '트랜스 휴먼'이 되길 희망한다. 인간의 '데이터화', 뇌에 있는 정보와 생각을 모두 데이터로 전환하고 육체를 떠나 영원히 살겠다는 의미이다. 이후 그녀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몸의 여러 부분에 칩을 심고 초인간이 된다. 휴대폰이 없이도 손을 이용한 전화통화가 가능하고 결제와 신분 인증도 맨몸으로 가능하다. 일반적인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지능과 능력을 갖게 된다. 여러 개의 복잡한 정보를 단시간에 처리하며, 가족의 동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명의 혜택이 모두에게 고루 돌아갈 수는 없다. 줄기세포 시술과 초인간 강화 시술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이전 시대 스티븐은 잘 나가던 금융 전문가였다. 남부럽지 않게 좋은 집에서 풍족한 생활을 하던 중상층이었지만 은행이 파산한 이후 전 재산과 직업을 잃었다. 자전거 택배, 임상 실험 참여 등 11개의 아르바이트를 해도 생계가 녹록지 않다. 자전거 배달 회사에서 강제하는 소름 끼치게 열악한 노동 계약 조건에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임상실험의 부작용으로 고개가 자꾸 왼쪽으로 돌아가는 상황에서도 그의 건강 따위는 고려대상이 될 수 없다. 저렴한 가격으로 부주의하게 취급되는 부품 신세를 겪는 건 그뿐 만은 아니다.


이것은 단지 스티븐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할 수 있는 문제인가? 산업 구조 변화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노오력이 부족한 개인의 필연적인 대가라고 간단히 결론 지어도 되는 문제일까?


이제까지 산업화 시대 기술의 진보는 대체적으로 인류 생활의 개선, 진보로 이어졌다. 농업에서 제조업으로 또 서비스업으로 산업의 내용은 변화해왔지만, 인적 자본이 필수적 요소라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동안은 정신적으로 숙련된 인간의 지능을 저비용으로 대체할 수단이 없었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회계사라는 직업은 모두 AI 차지가 되어버린 것처럼 미래 기술은 인간의 지능을 대체하고도 능가해 현재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믿는 대부분의 직업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유발 하라리'의 예측대로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간은 경제적, 사회적, 군사적으로 필요 없는 '잉여 계층'으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


자유주의가 성공한 것은 모든 인간 존재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타당했기 때문이다. 근대 산업전쟁들의 대규모 전장에서, 그리고 근대 산업경제의 대량 생산라인에서는 모든 사람이 소중했다. 권총을 쥐거나 레버를 당길 수 있는 한 쌍의 손들은 저마다 가치가 있었다.

-호모데우스, 유발 하라리, 421p




궁지로 몰리는 우리가 선택할 미래는...


상식적인 세상에서 과격한 괴짜 정치가 '비비앤룩'은 아무 주목도 받지 못했다. 그녀의 공약과 주장은 황당한 헛소리로 받아들여졌다. 우리는 너무 복잡하고 먹고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세상 일과 타인에게 소홀해진다. 어느 날 각자 열심히 살아도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다는 걸 자각한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일상에 심각한 위협이 가해졌고 회복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그제야 심각한 위기감과 불안, 공포를 느낀다. 이 공포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명확한 원인이 필요하다. 실제로는 몇 가지 연유 일리가 없다. 특정 누군가가 아닌 구조적인 변화와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해결책이 안 보이는 문제가 발생했지만 그것을 하나하나 따질 여유는 없다. 지금 당장 내가 먹고살기 힘드니까. 이성의 자리는 끼어들 틈이 없다. 그때 누군가가 목소리를 높여 간단하고 자신 있게 문제의 원인을 지목하고 화를 내는 사이다 발언을 해준다면 우리는 열광할 준비가 되어 있다.


기존의 해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세상이니 과격하고 파격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상처 받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사소한 문제 로 치부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을 늦출 수도 막을 수도 없다. 정책 결정권자나 권력을 가진 자에게 분노를 쏟아내기도 쉽지 않다. 그보다는 난민이나 이주노동자 탓을 하는 게 편하고 손쉽다. 다른 인종, 다른 성별, 성소수자, 노인, 다른 종교를 가진 자, 다른 나라 등 눈에 보이고 구별되는 차이를 가진 자들을 핍박하고 압박하면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자국 우월주의에 빠지고 국경을 폐쇄하고 사람들을 가둔다. 우리가 그토록 힘겹게 연결하고 연대하던 세계는 순식간에 잘개 나누어 쪼개지고 반목한다. 그렇게 괴짜 정치가 '비비앤룩'은 영국의 총리가 되었다.


기술의 발전과 안일하게 관성대로 선택한 드라마의 세상은 이전보다 잘게 쪼개지고 국경을 이동할 자유가 사라졌고 인권은 후퇴했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는 퇴보하고 복지제도는 막을 내렸다. 독재 국가와 국수주의가 그 자리를 대체해버렸다. 내일에 대한 기대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이번 세기는 힘들었지.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었어.
눈 깜빡할 새에 10,000일이나 지났어.
난 우리가 해냈다고 생각했다.
좋은 세상을 만든 줄 알았지.
'수고했다. 서구 사회야.'
살아남았으니 해냈다고 생각했어. 어리석었어.
(...)
다 너희 잘못이란 사실은 변함없어.
은행, 정부, 불경기, 미국, 룩 총리, 잘못된 일은 모두 다 너희 탓이야.
왜냐하면 여기 있는 우리는 모두 앉아서 종일 남 탓을 해.
경제 탓을 하고 유럽 탓을 하고 야당 탓을 하고 날씨 탓을 하며 광대한 역사의 흐름을 탓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핑계되지.
우린 너무 무기력하고 작고 보잘것없다고 말이야.
그래도 우리 잘못이지.
(...)
아무것도 안 했잖아. 거리 시위는 했니? 항의서는 썼어? 다른 곳에서 장을 봤나?
안 했지.
씨근덕대기만 하고 참고 살았어. 우리가 이 지경으로 놔둔 거야.
실은 우리도 좋아해. 그 계산대를 좋아한다고. 계산대 여자와 눈 마주칠 일 없지.
(...)
우리가 만든 세상이야. 축하한다. 다들 건배하자.

이어즈&이어즈 6화 뮤리엘의 대사 中


세계 시스템을 관통하는 극 중 뮤리엘의 대사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관성대로 맞이할 미래는 드라마 속 묘사된 '디스토피아'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깨어 있다면 이성을 잃지 않고 지금의 상황을 직시하려 한다면 아니 미래에 다가올 시나리오 등을 염두하고 상상해본다면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우리는 실수를 하지만 반성하고 배우고 성찰할 수 있다. 인류와 지구에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연대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고, 스스로의 운명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앞으로와 달리 미래의 세상은 우리가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존엄성'을 저절로 지킬 수 없다. 살아남는 건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운 좋은 소수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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