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전업 백수로 만들기로 했다.

마이클 싱어 '상처 받지 않는 영혼'

by 스텔라
이 책을 아무 고통 없이 술술 읽으며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이미 충분히 지혜롭게 잘 살고 있기에 이 책이 필요치 않다.

나처럼 이 책에 쓰인한 줄 한 줄이 가슴속 감춰 둔 폐부를 찌르고 과거의 기억이 소환되고 마음에게 미안해진다면 지금이야말로 당신도 이 책을 공들여 읽었으면 좋겠다.




내 마음은 일을 잘했다.


나는 머릿속에 생각이 많은 아이였다. 감각이 발달했고 사소한 자극에도 예민했다. 겉으로는 조용해 보여도 내 안에 목소리는 매일 끊임없이 말을 하고 감정을 느끼고 온갖 생각이 부유했다. 내 마음은 외부의 자극을 내 세상에 끌고 들어와 여기저기 배치를 하고 해석하길 좋아했다. 내 마음은 선천적으로 일을 잘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것이다.


중학교 2학년, 부모님의 심각한 다툼이 있기 전까지 평범하게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그와 비례한 즐거움이 공존했다. 내 삶을 위협할 만한 특별한 불안함이나 과도한 걱정이 없었고 약간 내성적이고 소심하지만 친해지면 활발하고 잘 웃는 아이였다.


부모님의 다툼은 내 삶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누군가 조금만 언성을 높이거나 전화벨이 울려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무슨 일이 벌어질까 두려웠다. 그때는 부모님의 갈등과 폭력적인 상황이 내게 상처를 줬다고 생각했고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그 싸움이 내 안에 뿌리 깊은 상흔을 남겨버린 건, 내게 그 일이 내 존재에 대한 '무가치'를 상징하는 거대한 트리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을 너무 잘하는 내 마음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 더 이상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방식으로 삶을 움직였다. 나는 통제광이었고 마음에게 너무 많은 일을 전일제로 부과하며 나를 다치지 않게 해달라고 사주했다. 나는 까다롭게 사람을 고르고 시험했다. 나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건들지 않을 만큼 사려 깊어야 했다. 애인이라면 인내심 있게 나의 변덕을 견뎌 낼 사람들을 선발했다. '무가치'에 대한 상처는 골이 깊고 연약해서 의도 없이 건네지는 사소한 짜증스러운 말과 상대의 차가워 보이는 눈빛 한 방이면 다시 나를 가두기에 충분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나는 친구가 많지 않았고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사람들과 두루두루 어울리지 못하는 게 콤플렉스였다. 생각해보니 오히려 내가 사람들에게 벽을 쳤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한 고통스러운 과정이었기에 내가 선택한 방식인지도 몰랐다.


'무가치함' 트리거는 내 인생 방식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나는 내가 무가치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려고 애쓰는 동시에 조금이라도 남들에게 폐가 되거나 도움이 안 되는 상황에 놓이면 완전히 절망하고 돌아서고 말았다.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 날 좋아한다고 하면 너무 기뻐 그 마음을 거절하지 못해 훗 날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했고, 내게 도움이 되는 게 자명한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어색한 시간을 보내게 되면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다. 나는 주로 거절당하기 전에 내가 먼저 발 빠르게 거절을 하는 작전을 썼다. 그렇게 나는 무가치해 질까 두려워 전전긍긍하는 완전히 '무가치'에 잠식당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 삶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깨달은 건 1년 전 회사를 그만 둘 당시였다.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에너지가 너무 많이 쓰였고 너무 괴로워 삶을 그만 살고 싶은 기분이 자주 들곤 했다. 그러다 유튜브를 통해 '마이클 싱어'라는 사람을 우연히 알게 되고 책의 내용이 뭔 지도 모른 채 제목만 듣고 이 책을 꼭 사야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생각과 감정은 내가 아니다.


첫 페이지를 읽으면서 마음의 목소리가 쉴 새 없이 떠들고 있다는 걸 그제서야 자각하고 충격에 휩싸였다. 나는 이제까지 내 마음속 끊임없는 이어지는 생각과 감정과 목소리가 나라고만 생각했고 그것을 바꿀 수도 버릴 수도 없어 삶이 너무 피곤하고 고통스럽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 그런데 그 목소리와 생각과 감정 또 경험의 총합까지도 진짜 '나'는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지켜보는 자'이다. 어느 깊은 내면 한구석에서 이 모든 일을 '알아차리는 순수한 의식'이다.


삶은 커다랗고 긴 무편집 본의 롱테이크 통속 드라마의 캐릭터로 살아가는 것이다. 연출은 우리가 할 수 없다. 예측할 수 없는 온갖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별별 일이 다 일어난다. 그렇지만 그 캐릭터가 나는 아니다. 나는 그 드라마를 보고 있는 사람이다.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하는 마음이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다. 마음은 언제나 나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어떤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을 하고 고통을 느끼든 거기엔 옳고 그름이 없다. 중요한 건 그 마음에게 내 의식을 빼앗기지 않고 그 에너지로 끌려들어 가지 않는 것이다.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 되어야지 나 역시 드라마에 끌려 들어가 감정 이입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마음이 소리치며 한 발자국 떨어져 '그렇구나, 내가 그렇게 느끼는구나' 지켜보고 알아차리기만 하면 그 상황과 생각과 감정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지나가버린다. 그런 감정과 생각을 통제하거나 억누를 필요도 없고 죄책감을 갖거나 잠자리에 누우며 되새길 필요도 없다.



마음을 전업 백수로 만들기로 했다.


열다섯. 막 부모님의 다툼을 목격하고 두려움을 처음 느끼는 나로 돌아간다.


마음에게 나를 지키고 이런 상황에 놓이지 말자는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임무를 주는 대신에 이건 삶에서 일어나는 한 과정이야라고 말한다면,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 두고 내가 무가치하다는 상처를 내게 남기지 않았더라면 내 삶을 얼마나 변했을까?


정말 나를 사랑하는 일은 나를 과보호하는 일이 아니다. 내게 아무 일도 생기지 않도록 나를 가둬두고 감싸고 세상과 단절하는 방식으로는 내가 성장할 수 없다. 고통은 인생의 한 부분이고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다. 고통에 붙잡히면 고통이 내 삶을 장식하지만 고통을 흘려보내면 고통의 강도와 비례하여 더 높이 내 의식은 고양된다.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저 흘러가고 나는 지켜볼 수만 있다면 세상을 온전히 자유롭게 살아가고 그것이야말로 진정 나를 사랑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깊은 인생의 고통을 놓지 못하고 끙끙대며 살아갔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진정으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 되기로 결심할 수 있었다.


15살 '무가치함'이라는 상처를 놓아버리지 못했기에 33살까지 무가치함에 잡혀 여전히 애쓰고 있다. 그러나 32살 이 책을 만나 자유로워지는 의미와 방법을 배웠기에 더 이상 고통과 상처를 바로보기 두렵지 않다.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 내 마음은 24시간 워커홀릭 일을 했지만, 지금은 시간제로 특별한 날 일일 알바로 일하고 있다. 가까운 어느 날 내 마음이 완전 프로 백수가 되는 그날까지 이 책은 나의 삶의 모토이자 정신적 지주로 남을 것이다.



P.S. 일상 관련 이야기

개인적인 고통의 순간을 담은 글을 작성하고 휘리릭 사라져 버려서 본의아니게 걱정을 끼쳐드린 것 같아요. 저는 정리가 되고 해소가 되지 않으면 글을 작성하지 않아요. 글이 고통스러워 보이더라도 글로 작성해서 발행을 했다면 이젠 괜찮아졌거나 적어도 괜찮아질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에요. 제가 슬퍼 보이는 글을 써도 너무 걱정 안하셔도 되요. 부족한 저를 아껴주시고 염려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요새 완전 잘 지내고 있고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많이 웃고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활력이 넘쳐요. 디지털 마케팅 과정을 배우고 있거든요. 페이스북을 제대로 시작하고 인스타도 공들여하고 블로그도 시작하려 해요. 차분히 앉아 글 쓸 시간과 책 읽을 시간이 줄어들까 우려되지만 즐겁답니다.
과보호 그만하고 세상에 저를 내놓고 중심을 잡으며 사랑하며 살려고요. 그래서 무조건 이 책을 제일 먼저 리뷰/소개 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 덕분에 한 번 더 웃고 한 번 더 따뜻해졌어요. 오늘도 사랑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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