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4세의 눈썹을 가진 고양이, 하수형

비와 고양이 시를 좋아한다면

by 스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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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우리는 마주칠 때마다 종종 앙리 4세의 눈썹을 가진 고양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미스터리한 느낌은 직접 본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이어서 다른 이들에게는 아무리 장황한 설명을 곁들인들 잠꼬대에 불과해 보일 것이다.각각의 개인들에게는 너무도 소중하나 타인에게는 변역되기 힘든 마법의 순간들이 있다. 이런 미스터리들이 고스란히 삭제된 삶이란 얼마나 삭막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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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여서 좋을 때가 있다. 나는 사람에 대한 직관이 발달한 편이다. 한눈에 사람을 간파할 수는 없지만 이 사람이 내게 뭔가 특별한 인연이 될 거라는 예감을 종종 받는다. 독립출판 책을 만드는 강좌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내내 평화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나는 나를 향한 미소로 착각했지만 그 누구에게 던진 미소도 아니었다. 그녀는 알수록 궁금해지는 사람이었고뭔가 독특하고 매력적인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무언가 세상의 풍파를 겪고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살아가는 숲에 사는 마녀 같은이미지랄까. 무섭긴커녕 한없이 다정하고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는 그런 사람.나는 섣부르게 그녀에게 다가가서 마법 수프도 만들고 그녀의 고양이도 쓰다듬고 나를 만나기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조리 다 묻고 싶은 충동에 빠지기도 했다. 종종 짧은 단막극처럼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만, 그 시간은 한참 모자랐다. 그녀는 다만 한 권의 짧은 단상집고양이비, 보이지 않는 세계로 내게 각인되었다. 언젠가 또 만나고 싶은 인연




그녀의 첫 책이 궁금했지만 제목을 좀처럼 기억할 수 없어 잊고 지내던 그 책이 1년 후 장마 기간 내게 보내졌다.



그녀는 40대가 되어 프랑스로 떠나기로 한다. 스펙을 쌓기 위함도 아니고 미래에 대한 투자도 아니었다.도피이자피난이나 휴식이라고 부끄럼 없이 고백한다. 어릴 적부터 가면을 쓰고 살아왔다고. 인생에는 실망만이 가득했고 세상에 속하지 못한 소속감 없는 용매가 그녀 자신이라고. 삶에 지쳐 무작정 떠난 그곳에는 그녀는'포'라는 작은 마음의 고향을 만난다.




포라는 도시는 삶이 내게 마련해 둔 페이지이다. 내 삶의 책에서 예쁜 삽화까지 그려진 이다지도 호의적인 페이지가 튀어나올지는 몰랐다. 각자의 삶이란 자신이 써나가는 것임에도 뒤의 전개를 도무지 장담할 수 없는 기이한 책이니 모름지기 중간에 재미없거나 흉측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쉬 덮지 말고 끝까지 읽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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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적으로 나를 품어주고 그곳에서는 내가 내가 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가진다는 건 축복이다. 누군가에게는 태어나자마자 자연스럽게 그 공간에서 살아가지만 많은 사람들은 어쩐지 자신이 영원히 그곳에 속할 수 없는 이질감을 오랫동안 간직한 채 아웃사이더가 되어 뒤틀린 채 살아가야만 한다.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뚜렷한 이유도 모른 채 때때로 마주치는 어떤 공간은 안식처 같은 편안함을 준다. 거기 앉아 숨 쉬는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쌓아둔 찌꺼기가 잘게 분해되어 훨훨 날아가곤 하는 것이다. 그런 공간의 경험과 기억은 오래 남아 더 이상 그 공간에 속해있지 않을 때조차 큰 위안과 정신의 근원이 되어준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의 고향이 필요하다. 세상에서 지치지 않고 그럼에도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공간의 마법 같은 힘을 빌려와야 하기 때문이다.




하수형 작가는 섬세하고 예리한 시선을 가진 덕분에 나처럼 이유를 뭉뚱그려서 표현하지 않는다. 그녀는 포에서 느낀 편안함과 안정감의 실체를 '햇살'에서 찾는다. 그녀는 시적인 사람이다. 사람들이 대충 넘기고 마는 실체 없는 장면과 감정을 포착해 재현한다. 그녀가 그 순간 느낀 감정의 경험 꾸러미를 하나하나 풀며 마치 나도 거기에 있는듯한 마법을 부리는 글이다.



이 햇살은 음울함이 깃들 틈 없는 절대적인 화창함을 자랑한다. 사람을 멍하고 늘어지게 만들 만큼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부드럽고 따스하다. 이국적인 햇빛은 가히 갖은 근심들을 지워준다.내 마음 내벽의 빽빽한 어둠들도 이 햇빛에는 데인 듯 놀라지 않고 부드럽게 귀화했다. 여태껏 내가 지녀온, 햇빛이란 자기 아래 모든 존재들을 노예로 삼는 폭압적 에너지라는 상징도 해체되었다. 그토록 이곳의 햇빛만큼의경계를 풀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햇빛에 감탄하며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는데 굳이 표현하자면 '생의 한가운데 햇빛'이라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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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표지에 적힌 이 책의 부제는'You Only Live Once'이다. 모든 게 그녀의 아우라를 닮았고 날카롭고도 매력 넘치는 이 책의유일한 옥에 티다.이 책은 욜로라이프를 지향하는 책도 아니고 프랑스에 가서 힐링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욜로 라이프! 즐기며 사는 이야기로 가볍게 퉁치기에 이 책에는 깊은 내면의 고백이 담겨있고 우리가 애써 잊고 묻으려고 하는사회의 민낯이 드러나는 통찰이 담겨 있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만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얼치기가 아니고(오히려 건조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한다), 세상 모든 것을 긍정하는 척 논지를 흐리거나 도망치며 세상의 가치를 흐리는 겁쟁이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를 보지 못한 동안 나답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버거워하고 있었다. 내 스타일을 버리고 최대한 나인 걸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면서도 내가 그러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도 포의 햇살을 받고 있었다. 다시 나의 마음의 고향을 거닐었다. 다시 글이 쓰고 싶어졌다. 무엇보다도 그녀를 괜히 우연처럼 만나고 싶다. 그녀의 생각처럼 자극으로 가득 찬 세상에 무언가를 느끼는 사람이 많아지고, 섬세한 사람들의 시대가 오고, 인간에 대한 너무 당연한 예의와 환대가 도처에 놓이기를 바란다. 적어도 내 주변만큼이라도.




마지막으로 역시 그녀의 다음 작품이 어떤 형태라도 나오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





나는 오랜 시간, 자굴감과 의기소침을 통풍처럼 거느리며 살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글을 쓰는 공간 속에서만 살아 있음이 느껴진다. 계속되는 내 삶의 과제 중 하나는 나를 짓누르는 식곤증으로부터 어떻게 이 휙휙 지나가버리는 삶의 시간들을 건져내는가이다. 그리하여 살아가다가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을 선명히 애도하고자 글쓰기를 택한다. 무언가를 쓰는 동안은 시간과 세월이 나를 쓸어가 버리도록 순순히 내버려두지 않아도 된다.

-15p




프랑스에서 내가 피상적 수준으로 발견한 행복의 조건이란 꽃과 나무, 공원, 축제 그리고 마주치는 이들끼리의 조건 없는 수용과 환대다. 자연과의 공존, 서로 반기며 사는 일, 그 간단한 데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 사회 내에도 고질적 문제와 갈등은 많겠지만 프랑스는 최소한 서로 간의 미소가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나라다. 그런 공기만큼은 밀봉이라고 해서 가져오고 싶다.. '인간의 인간에 대한 너무 당연한 예의와 환대'를 한 점 스포이드로 떠옮겨 오고 싶다. 그리고 기왕이면 나의 일상도 나비처럼 가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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