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기약 없이 연체돼.

반납한 줄 알았던 슬픔은 자꾸만 책장에서 발견돼.

by 스텔라

오늘은 말이야 슬픔이 아주 빠르고 가볍다는 걸 알게 되었어. 작고 조심스러운 단어에 한없이 커다란 슬픔이 담겨 있다는 걸 열어보지 않고도 느끼고 말았어. 내가 겪어보지 못한 슬픔 앞에서 한 마디 위로도 건넬 수 없더라. 그러니 나는 너의 슬픔을 위로할 방법을 몰라.


내가 아는 건 슬플 땐 슬퍼하는 거 말고 별다른 도리가 없다는 거. 울어야 할 때 실컷 울고 절망에 빠질 때는 저항 없이 깊숙이 잠식되어야 한다는 거. 슬픔을 제외하고는 어떤 감정에게도 생각에게도 삶을 나누지 말고 온전히 슬픔으로 젖어야 한다는 거. 그렇게 슬픔에 빠져 몸에 힘을 모두 빼고 슬픔의 바다에서 둥둥 떠다니며 표류하는 거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거.


너는 왜 삶이 슬플 수밖에 없냐고 물었고, 별다른 대답을 찾지 못했어. 슬프지 않을 때는 제법 정돈된 듯 그럴 듯 해 보이는 답이 슬픔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더라고. 그건 이제까지 과거의 슬픔에 대한 정리에 불과해서 새로 다가올 슬픔에는 해당하지 않더라. 같이 슬퍼하는 것조차 너에겐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이 마음의 파동에는 슬픔이 잔뜩 배어 나오더라.


슬픔은 기약 없이 연체돼. 예상한 시간보다 더욱 많이 삶에 있다 가더라. 반납한 줄 알았던 슬픔은 자꾸만 책장에서 발견돼. 우리는 쉬이 슬픔을 놓지도 보내주지도 못해. 이제 가버린 슬픔을 햇살 좋은 오후에 발견하고는 부둥켜안고 펑펑 울지. 너 왜 아직 여기 있어? 네가 아예 갈까 무서운데 네가 평생 여기 있는 것도 두려워. 슬픔은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고 눈물은 다시 울 준비를 시키지.


나는 네가 느낄 슬픔을 업은 채 천천히 물을 마시고 천천히 화분에 물을 주고 천천히 빨래를 돌렸어. 어제의 내가 오늘에는 없는 걸 보며 너의 슬픔을 가늠해보다가 그만두었다. 이 슬픔의 주인은 너기에 나는 여전히 그 슬픔에서 기쁨과 평온과 사랑을 볼 수 있어. 그러나 너에게 언젠가 이 슬픔이 기쁨이나 평온이 될 거라는 자만에 찬 말은 감히 할 수가 없었어.


슬픔이 찾아오면 말이야, 어제까지 중요했던 일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게 돼. 삶이 소리 없이 전복되어 버려. 슬픔은 삶을 완전히 바꿔버리지. 이제 같은 것을 봐도 다른 것을 느낄 거야.


기쁨은 기꺼이 나누면서 슬픔을 절대 나누지 않는 강한 사람을 알아. 자신의 슬픔은 자신의 몫으로만 남겨두는 고독하고 굳은 심지를 지닌 사람 말이야. 사람들은 기쁨을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하지만, 실은 슬픔도 두 배가 되는 것 같다고 그 사람은 말했어. 가끔 슬플 때마다 그 말을 생각해. 슬픔이 두 배가 되는 건 맞더라. 그런데 슬픔에는 소진되어야 할 할당량이 있어 누군가가 슬퍼하면 그만큼의 몫이 더 빨리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해. 슬픔이 파도라면 흐름이 빨라져 조금은 더 빨리 지나가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야. 그러니 그 사람도 너도 슬픔을 말하고 작은 슬픔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 두면 좋겠다.


슬픔의 반대말이 무엇일까, 기쁨은 아니야. 평온도 아니야. 슬픔은 찾아오고 한없이 슬퍼하다 언젠가 보내주는 거니까. 그러니 슬픔의 반대말은 기다림이야. 미래의 네가 웃고 있길 평온하길 기도하려다 말고 너의 기다림을 위해 기도한다. 네가 할 수 있는 한 슬픔을 연체한 후, 언젠가 슬픔을 놓아줄 준비가 되기를. 그 기다림을 너도나도 기다릴 힘을 내기를.


우리는 배워야겠지. 연체된 지 오래되어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슬픔조차 놓아줘야 하는 방법을 말이야. 그럴 수 없을 만큼 커다랗고 지독한 슬픔을 보내주기까지 기다릴 수 있는 자신 안의 조용한 힘을 신뢰하는 법을 말이야.


그러니 부디 슬픔의 바다에 누워 모든 힘을 빼고 네가 고요히 표류하길. 때론 울고 오열하고 원망하고 슬퍼하고 저주하며 모든 희망을 무참히 산산이 조각내길. 슬픔의 흐름에 맞춰 슬픔의 파도를 따라가 저항하지 않고 기약 없이 연체되는 슬픔을 기다리길.


2022.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