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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Kim Jul 25. 2019

결혼·여름 그리고 쓸모없는 단상들

카뮈의 <결혼 여름>을  읽고 

#1 

카뮈의 결혼·여름. 내가 읽기 힘들어하는 만연체의 시적 산문집입니다. 이런 비슷한 느낌의 책들을 읽다 포기한 적이 있는데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이 그렇습니다. 물론 어떤 책을 다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고 지독한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뭔가 느낌이 좋다던가 어떤 심상 따위가 떠오른다던가 하는 책들도 있는데, 결혼 여름은 빼어난 책이지만 나의 취향에 도달하지 않는 책이라고 해두겠습니다. (앞으로는 어찌될지 모르겠네요.)


*TMI 애정하는 배수아가 번역해서 더욱 완성된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는 플로우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지만 작가의 통찰이 압축된 문장들에 각각의 울림이 있어 참 좋아합니다.


어떤 이는 나와 다르게 예찬하지 않았을까 호기심이 일어 찾아보았습니다. 

"카뮈의 '결혼·여름'은 '세상은 항상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통찰이 주조를 이루는 책이죠. '결혼·여름'을 읽으면 어떤 순간에라도 인생이 지닌 본연의 활력을 상기하고 생의 행복과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 2011.02.07 조선일보에 실린 추천 책.


오 그렇군. 이렇게 느끼는 사람도 있겠구나. 감탄했다가 추천 작가의 이름을 보고 실망했습니다. 이인화 작가. 마케팅이 능한 표절 작가. 최순실 게이트로 몰락한 자. 갑자기 결혼 여름에 허울의 때가 묻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훌륭한 이들의 다른 후기가 궁금하네요. 



#2

흔히 여러 작품을 낸 작가여도 그들이 공들여 구축한 세계관은 어떤 틀을 구성하고 도성된 글감들은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카뮈는 다르죠. 그의 책들은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난 평소 작가 자신의 삶의 스펙트럼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아무리 부정하더라도 세계관을 형성하는 구성요소에 강하게 기인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위치와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카뮈의 경우 소외받는 처지에서 압도적인 관심의 대상까지 그가 겪은 갖가지 경험들과 특유의 영민함에서 뻗친 깊은 사고가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많은 이들이 더욱 고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이방인으로 자랐고 폐결핵 환자였으나 젊은 나이에 문단의 총아로 떠올라 노벨문학상을 탄 명성 있는 작가. 위험을 무릎쓰고 체제를 날카롭고 명쾌한 힘찬 필치로 비판한 자. 행동하는 지성인.

한편으로 세기의 매력적인 바람둥이 세르쥬 갱스부르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그처럼 잘생기고 지적이며 고독함을 머금은, 시적인 아름다운 표현을 이토록 멋스럽게 구현하는 자를 사랑하는 여인 또한 참으로 많았을 것 같네요.



#3

카뮈의 산문 '결혼'에서 스물세 살의 그가 묘사한 자연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들로 가득합니다. 기쁨보다는 냉소와 우울감에 가까운 그의 작품세계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씬들의 조합. 그 곳, 그 취기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상황들을 그려 보았습니다. 어쩌면 상상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나를 향한 축복을 껴안는 기분이 아니었을까요? 내가 이 땅을 밟고 있다는 무한한 행복감. 그의 티파사에 발을 딛고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럼 나도 그가 표현한 대지의 아름다움을 마주할 수 있을까요?


몇달 전 홍콩아트바젤(3월 28일~3월 31일)을 관람하기 위해 다소 무리한 휴가 일정을 계획했고 다녀왔습니다. 고맙게도 좋아하는 친구가 나의 일정에 동행해주었어요. 작품 감상과 맛있는 음식들을 즐기고 떠들고 웃고 그러다 하루 각자 자유여행을 했는데, 좋아하는 홍콩의 소호 갤러리 앞에서 곧게 잘 뻗은 나무로 보고 갑자기 나의 스물 여섯 어느 날의 기억이 소환되었습니다. 그 때 나의 일터는 대학이었는데 일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고 흥미로운 기회들도 주어졌습니다. 주변 선생님들은 친절하고 배려심이 가득했어요. 연인과의 관계는 이보다 좋을 수 없었고 나는 그 때의 내가 꽤 맘에 들었습니다. 구름 한점 없는 청량한 하늘과 푸릇푸릇 보들거리는 질감의 연두빛 나뭇잎이 찬란하게 빛나던, 산줄기와 연결되어 있는 듯한 건장한 나무들이 바람결과 함께 나뭇잎을 흔들며 호젓하게 웃어제끼고 있던 날, 나는 교정을 걷다가 '와 정말 좋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걸까?’ 혼잣말을 했었습니다. 삶의 충만함에서 오는 진정한 감탄이었어요. 부드러운 위스키를 마신 듯 세로토닌이 온 몸에 가득 퍼지고 잔잔하게 흐르는 느낌이랄까요. 나는 잊고있던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고 순간 눈물이 찔끔 났습니다. 근처 커피숍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젤라또를 시킨 후 창밖을 바라보는데 '아 나는 이제 그런 충만한 기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날을 만날 수 있을까? 어쩌면 오지 않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 씁쓸해하다가 또 그런 기억을 추억으로 되새김질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했다가 그 밖에 이런 저런 생각들이 교차했다가 결국은 헛헛함으로 마무리 된 아득함만 간직한 채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삶에서 온전한 행복감을 충만하게 만끽하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적어도 자신만의 어떤 기준을 충족할 수 있을 때 가능하지 않을까요? 물론 세상은 넒고 성자들도 있어 그들은 다를지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솔직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물론 덜 불행할 수는 있지요. (행복을 가장하거나 미화하는 것 보다는 덜 불행한 편이 낫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특히 좋았던 문장들.


사람은 그저 몇 가지 익숙한 생각들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법. 두 세가지의 생각들을 가지고, 이리저리 떠돌며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면서 그 생각들을 반들반들해지도록 닦아 지니거나 변모 시킨다. 이것이 바로 나의 생각이라고 제대로 내놓고 말할 수 있는 자기 나름의 생각을 갖는 데는 10년이 걸린다. 이렇게 볼 때 다소 절망적인 느낌이 들 만도 하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함으로써 세계의 아름다운 얼굴과 어떤 식으로 낯이 익어지게 된다. p.28 


그리하여 아마도 나는 여기서 비로소 일체의 아이러니를 그만두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뭐니뭐니 해도 자기가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가장 좋은 방식은 그것에 대하여 가벼운 어조로 말하는 것이다. p.131


스스로 인정하는 무지, 광신의 거부, 세계와 인간을 테두리짓는 한계, 사랑받는 얼굴, 그리고 끝으로 아름다움, 이런 것이 바로 우리가 그리스 사람들과 한데 어울리게 되는 우리의 진영이다. p.142


오늘날 인간들에게는, 내가 두 가지 방향으로 다 밟아가보았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는, 정신의 언덕들에서 범죄의 대도시들로 가는 한 가닥 내면의 길이 있다. 물론 우리는 언제나 언덕 위에서 쉬고 잠잘 수도 있고 아니면 범죄 속에 기숙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존재하는 것의 한쪽 몫을 포기한다면 스스로 존재하기를 포기해야 한다.

그러니 남에게 위임시켜가지고 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거나 사랑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이리하여 삶의 그 어느 것 하나도 마다하지 않고 살려는 의지가 있으니 이는 바로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존중하는 미덕이다. 적어도 이따금씩이나마 내가 그 미덕을 실천에 옮겻다고 여기고 싶은 때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 시대만큼 최선과 최악을 똑같이 대하기를 요구하는 시대는 없으므로 나는 바로 아무것도 제쳐놓지 않은 채 이중의 기억을 정확하게 간직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 아름다움이 존재하는가 하면 모멸당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해내기가 아무리 어렵다 할지라도 나는 절대로 그 어느 한쪽에도 불충실하고 싶지는 않다. p.166


부드러움이 길게 연장되는 어떤 밤들에는, 그렇다, 우리가 죽은 뒤에도 그런 밤들이 땅과 바다 위에 되돌아오리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죽는 데 도움이 된다.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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