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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Kim Jul 25. 2019

소칼 <지적 사기>,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마크 트웨인은 ‘손에 망치만 쥐고 있으면 세상이 다 못으로 보인다’며 익숙함이 낳는 무지와 편견을 경고했다. 한 가지 지식만으로 평생 밥벌이할 수 있던 망치의 시대에는  이 재치 넘치는 경고가 유효했다.


이제는 인공지능, 로봇, 블록체인, 양자 컴퓨팅, 유전자 가위CRISPR 같은 기술들이 세상을 바꾸고 지배할 것이라며 쏟아지는 세상이 되었다. 망치를 대신하는, 아니 망치보다 더 뛰어난 것처럼 보이는 도구들이 세상에 넘치고 사람들은 종종 이 도구를 쥐기만 하면 세상 모든 못을 박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융합과 학제간 연구가 인기를 끌면서 내가 살짝 맛 본 다른 분야에 대한 지식을 깊은 이해없이 차용하여 뭔가 멋을 내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쉬워진다.


양자역학을 이해없이 곡해하여 과학의 객관성을 부정하고 상대주의를 주장하는  인문학자들을 비판하려고 물리학자인 앨런 소칼은 1996년 포스트모던 학술지 <Social Text>에 편집자와 비슷한 주장을 하며 이런 저런 과학 지식을 짜깁기하고 엉터리 수학과 엉터리 양자역학 해석을 고의로 끼워 넣은 “경계를 넘어서: 양자 중력의 변형적 해석학을 향하여[Transgressing the Boundaries: Toward a Transformative Hermeneutics of Quantum Gravity]〉”라는 가짜 논문을 투고하였다. 놀랍게도 이 논문은 학술지에 당당히 실리고 심지어 학계의 큰 주목을  받기 까지 했다. 심지어 복소수를 수학의 새로운 분야라고 언급한 이 엉터리 논문에 인문학자들은 왜 열광했을까? 인문학자들의 과학에 대한 무지, 내가 잘 모르지만 멋져 보이는 기술이 내 편이란 생각에 눈과 귀를 닫은 맹목 때문에 이런 수치를 당한 것은 아닐까?


데우스 엑스 마키나 - 하늘에서 기중기를 타고 내려온 신 - 이 내 못을 박아 줄 순 없다. 도구가 있다고 못을 박는 게 아니다. 정확한 동작으로 정확한 위치를 정확한 힘으로 내려칠 때 못은 내가 원하는 곳에 원하는 만큼 박힌다. “두 사건이 이어서 일어날 때, 뒤 사건은 앞 사건때문에 반드시 일어나거나 적어도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당시 희곡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학제간 학문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디자인은 소칼의 지적 사기에 특히 빠지기 쉽지 않을까.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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