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lieve Homesickness : 방법은 없다.
어느 날 아침 부엌에서 요리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재수시절 빼고 아침에 늘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던 난 몽롱한 정신에 ‘엄마 아침 준비 하시네. 일어나야겠다.’ 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몇 분 후 오클랜드의 내 방임을 깨닫고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이 후로 난 약간의 향수병을 앓기 시작했다. 뉴질랜드에 온지 고작 3달이 지났는데 벌써 향수병이라니. 하며 내 약해진 멘탈을 붙잡고 일상으로 뛰어들었다. 얼마 뒤엔 크리스마스를 맞춰 온 친구와 함께 여행을 했고 그 다음엔 뉴질랜드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시작했다. 남섬에서의 고단한 하루 하루를 보냈지만 몸이 힘들었지 마음은 그 누구보다도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남섬에서 두 달 간의 텐트 생활을 청산한 2월 끝 무렵, 동생이 왔고 동생과 남섬 여행을 시작했다. 난생처음으로 길게 떨어져있었던 터라 매일 연락은 했지만 할 말이 뭐가 그렇게 많은지 쉴새없이 떠들고 우리 자매 특유의 드립 전쟁을 하며 2주간 시끌벅적하게 여행했다.
그리곤 동생과 함께 오클랜드로 다시 올라왔고 동생을 국제선 공항 가는 버스를 태우며 쿨하게 보내려는데 동생이 눈 앞에 사라진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때마침 얄궂게 비가 내리고, 무거운 짐을 들고 시내 가는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3개월 만에 다시 돌아온 바쁜 이 도시를 이유 없이 원망했다. 왜 비는 오는지, 그리고 왜 이렇게 버스비는 비싼건지 하며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과 함께 오클랜드에 다시 돌아왔던 그 밤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 이후에 나는 극심한 향수병을 앓기 시작했다. 3,6,9개월에 한번씩 온다는 향수병이 6개월째에 홍수처럼 밀려왔다. 다시 시작한일은 너무 바쁘고 최저임금도 안주는 사장은 밉고 친구들은 취업이다 시험이다 이래저래 앞으로 달려나가는데 나는 시간만 낭비하는 것 같고 영어는 생각만큼 안 늘고. 치아가 좋지 않은 난 양치를 하다가도 ‘치아 잘못되서 그냥 집가고 싶다.’ 핑계거리를 만들어서라도 집에 가고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렇게 불만을 털어놓은 내게 한 친구는 ‘그렇게 귀국 하지마라. 그 상태로 귀국하면 너 평생 후회한다.’ 라고 말했고 나도 그 말에 동의를 했지만 도심 한 가운데 있던 전망 좋은 그 아파트에서 술만 마시며 4주를 보냈다.
그리고 일을 그만 두었다. 최저임금도 안 준다는 것을 알고 시작한 일이지만 내 스스로가 견딜 수가 없었다. 향수병은 향수병대로 밀려오고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도 아닌데 돈은 돈대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피지섬으로 가는 티켓을 이미 예약해놓은 상태라 3개월만 버티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버텨 보려 했는데 그 부당함을그 땐 온 신경이, 피부가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만둬버렸다.
오클랜드에서는 합법적인 것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퀸스트릿에 있는 외국인 샵들(newzealander가 아닌)은 거의 최저임금도 주지 않고도 고용한다. 기업의 총수가 전재산과 바꿀 수 있는 젊음 이라지만 그 대가는 때때로 너무 가혹하다.
그리고 불법 그 중심에는 '경험'에 목매는 젊은이들이 있다.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것이 경험이 될 거란 이유로 그 부당함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다.
나도 혼자 몇 주를 끙끙 앓으면서도 그 대우를 합리화 하며 받아들였지만 이제는 무슨 일을 하던 경험이 될 거란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싶지 않다. 아닌 일에는 아니다 할 수 있는 용기 또한 젊음 이니 부디 사소한 불의에도 발끈하여 저딴 샵들이 운영 조차 안되게 그런 사람들이 많아졌음 좋겠다.
(내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 : 인스타그램에는 불의를 못 참는 정의로 가득찬 워홀러 쯤으로 포장해 올렸지만 사실 향수병이 동기부여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렇게 일을 그만두고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도심에서 벗어나 마트가 버스로 20분 쯤 걸리는 외곽 쪽으로 집을 이사했다. 일단 한국과 다를 바 없는 건물 빡빡히 들어선 시내 안에서 지내는 것이 괴로웠기도 했고 내가 외국에 있다는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일도 구했다. 근처에 있긴 하지만 걸어서 40분 정도 소요되는 곳인데 걸어가는 길이 인상적이다. 그래서 아침에 준비하면서 가기 싫다가도 막상 출발하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지긋지긋한 이 곳이 나중엔 꿈 같을 날이 올 것이다. 그 때 나는 굳이 올려다 보지 않아도 보이는 넓게 펼쳐진 하늘이, 뉴질랜드의 명물인 흰 긴 구름이, 해가 질 때 뭉개 뭉개 흘러가던 분홍빛 구름이, 퇴근 할 때 쯤이면 환하게 지던 달무리가, 시끄러운 차 소음 대신 더 성가신 개 짖는 소리와 비행기 지나가는 소음이, 쉬는 날에 시끄러운 말레이시안들과 만들어먹던 핫케이크가, 다이어트 때문에 아침에만 거하게 먹던 나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던 친구들의 눈빛이, 비 오는 날 기분 내려고 혼자 부쳐먹던 막걸리 없는 김치전이, 영어로 된 자막을 반가워 하던 심슨 영화가, 모두가 없는 텅 빈 집에서 혼자 책을 읽던 나 그리고 방에 혼자 앉아 이 글을 타이핑을 하는 나까지. 이 모든것을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겠지.
불과 한 달 전, 친구들에게 ‘나 내일이라도 당장 한국 갈 수 있어.’ 라고 말하던 나는 지금까지 잘 버텨내고 있다. 아니 잘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