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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라 Jan 14. 2020

안녕살 연대기

여름을 위한 다이어트는 No, 평생 다이어트

  달력 한 장을 넘긴다. 일월 일일. 새해에는 꼭 -5kg을 빼야지 빨간색 펜으로 꼭 뺄거라는 다짐을 제일 앞쪽에 새겨 넣는다. 매년 하는 의식이 된 이 다짐은 습관이 된지 오래다. 나는 근 10년 동안 안 해본 다이어트가 없다. 거의 다 좋은 다이어트는 아니지만 이 다이어트해보셨어요?라고 물어보면 알 정도로 유행이었던 것들은 다 나를 거쳐 지나갔다. 레몬 디톡스부터, 태국 약, 식이조절, 내과 처방약, 뱃살 내장지방을 없애는 주사도 주기적으로 맞아봤다. 나는 살이 찌면 배와 상체 그리고 팔뚝살이 쪄서 상대적으로 상의를 입을 때 부해 보인다. 이름하여 상체비만, 상비다. 성격이 급해서 단기간에 금방 효과를 봐야 뭐라도 이룬 것 같은 성취감이 들곤 한다. 그래서 이십 대 초반에는 사람들이 많이 먹는다는 약이나 건강제품을 마구 찾아 먹었다. 나중에는 주위 사람들에게 다이어트 상담을 해주는 야매 상담사 역할을 자처할 정도로 다이어트 정보에 대해 빠삭할 정도에 이르렀다. 물 한 모금에 알약 두 알이 식도를 타고 또르르 넘어간다. 알약 두 알이 넘어간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흐른다. 왠지 내 체지방 몇 킬로가 알약이랑 뒤섞여 같이 사라질 것 같기 때문이다. 가르시니아 캄보지아 추출물이 들어있는 제품, 식욕억제제……. 살과 빨리 이별하고 싶었다. 엄마는 그렇게 까지 해 가며 살을 빼고 싶냐며 가끔씩 타박을 주고, 차라리 건강하게 운동을 해서 살을 빼라며 잔소리를 늘어놓으셨다. 여기는 부작용도 적고 가루약이라서 괜찮아요. 별표 네 개인 동네에서 가까운 곳의 리뷰를 보고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약들은 곧 단기간에 빠졌다가 단기간에 살이 올라왔다. 입이 바싹 말라서 물을 많이 마셔야 했고, 부작용이 적다는 약은 운동을 병행해야 효과가 있었다. 나는 운동이라곤 숨쉬기 운동밖에 할 줄 모르는 90% 완전 지방형 인간이다. 친구들도 내 팔뚝을 가끔씩 만져보고는 말랑말랑 하다면서 근육이라고는 일도 없다고 운동 좀 해야겠다고 한 마디씩 하곤 한다. 내가 느끼기에도 내 팔은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린다. 그래서 겨드랑이 소위 저고리 살 안녕 살은 아무리 팔 운동을 해도 안 빠지나 보다.



  유독 식욕이 많이 당기는 날이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몸에 달빛이 지는 날, 개기월식이 왔다가는 날, 맵고 짜고 단 게 먹고 싶은 날, 늦게까지 야근하고 온 날, 일에 치여 아무것도 못 먹었던 공복……. 그런 날이면 매운 인스턴트식품을 와장창 몰아서 몸속 가득 집어넣는다. 삑삑-전자레인지 버튼을 누르고 부모님이 잠드신 고요한 밤이라 조용하게 일을 치르기 위해 음식을 만지는 손길이 조심스럽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들킬세라 재빠르게 인스턴트 닭꼬치와 라면을 돌리고서 내 방으로 들어와 빠르게 먹는다. 건더기를 다 먹고 빨간 짬뽕 국물을 휘휘 젓다가 후루룩 다 마셔버린다. 뜨거우면서도 혀끝을 감도는 얼얼한 매운맛, 인스턴트인 줄 알면서도 목구멍을 태우는 그 맛이 좋아서 국물 한 방울 안 남기고 캬~라는 소리를 낸다. 국물이 목구멍을 타고 터널 속 회오리바람처럼 우르르 바람 소리를 내듯 들어간다. 그래도 소화는 시켜야지 하다가도, 두 눈꺼풀이 무거워서 껌뻑 껌뻑 움직인다. 동공이 파르르 떨리다가 이내 감긴다. 띠용 아침이다. 암막커튼 사이에 뚫린 별 모양 구멍으로 햇빛이 들어온다. 눈을 떠보니 아침이고 속은 더부룩하다. 나는 어제 라면과 꼬치를 떠올리며 산발이 된 머리를 양손으로 움켜준다. 머리 위에는 헐이라는 글자가 용수철처럼 튀어나온다.



“살찌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자각하면서도
스스로 둔감해지려고 놓아버리는 게, 무서웠다”     

  가슴속에는  ‘후회’라는 두 글자가 명함처럼 몇 시간 동안 각인된다. 내 새해 다짐은 어디 갔지? 여긴 어디? 난 누구? 달력에 +1, +2, +3 그렇게 +10까지 잘 갔던 숫자를 0으로 다시 리셋시키는 순간 ‘아 망했다’를 외친다. 그렇게 일 년 동안 몇 번의 리셋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약 다이어트를 하다 어느 순간 살이 확 찐 적이 있었다. 애나 모르겠다 하고 닥치는 대로 먹은 적이 있었다. 이렇게 빼서 뭐해라고 생각하는 찰나의 순간 나는 밥통을 열어 미역국에 밥을 말아먹고 있었다. 취업준비를 한지 몇 개월이 지났을 때다. 그때도 깊은 고민이 많았던 터라 뭘 잘할 수 있을지, 뭘 해야 될지 계속 방황의 나날만 늘어가던 때였다. 뭔가 생각하기 싫을 때면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꺼내서 닥치는 대로 먹었다. 엄마는 직장 때문에 한 번에 국을 한 솥씩 끓여놓고 가셨는데 어느새 일주일 치 먹을 미역국이 하루가 지나자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생각을 하기 싫은 밤, 그냥저냥 허기가 졌다. 밥에 미역국을 말아먹었다. 국이 조금 많은가 싶으면 밥을 말았고, 밥이 많다 싶으면 국을 조금 더 떠서 먹고 또 먹었다. 나름대로 이유를 찾아서 계속 먹은 셈이다. 그런데도 허기가 졌다. 엄마는 전보다 얼굴도 몸도 살이 조금 붙은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몸무게를 재보니 몸무게 앞자리가 바뀌어져 있었다. 아마 인생 몸무게를 찍으라면 그때였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초연하게 이왕 이렇게 된 거…….라고 내 몸을 포기했다. 취업도 안되고, 되는 일도 없고, 먹기라도 해야지 다이어트 따위 해서 뭐해 다 필요 없어 이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더 먹으니 내 셀롤라이트는 늘어나서 바지를 지탱해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젤리처럼 팽팽한 듯 늘어진 엉덩이와 허리살은 가까스로 짓이겨져서 내 몸을 에워쌓다. 그것 또한 난 ‘밴딩 바지라는 편안한 게 있잖아’ 라며 나 자신을 합리화시켰다.





“나를 정신 차리게 한 할머니의 한마디”


 그러던 어느 날 외할머니 집에 방문 한 날이 있었다. 할머니는 내게 특별한 존재다.  맞벌이하던 부모님을 대신해 중학교 때까지 날 키워주셨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 인생에 있어서 나를 키워준 엄마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뼈대 자체가 얇고 어릴 때 말랐다. 그리고 편식도 심했다. 할머니는 그런 나를 어떻게든, 뭐든 먹여 살도 찌우고 키도 클 수 있도록 하고 싶어 생선, 고기, 미역 등 고단백 반찬을 해서 끼니마다 차려주셨다. 내가 밥을 많이 먹어도 적게 먹어도, 군것질을 해도, 실수를 해도 늘 괜찮고 예쁘다고 해주었던 할머니다. 그런 할머니가 날 이리저리 쳐다보더니 살이 조금 찐 것 같다며 빼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본인 입으로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신다. 머리 뒤쪽을 쇠망치로 세게 때린 것처럼 저릿저릿한 느낌이 들었다. 몇 년 전에 다이어트 약을 먹고 살이 급격하게 빠진 적이 있는데 그때는 얼굴에 생기게 하나도 없다며 살 좀 쪄야겠다고 집에 있는 과일이며 두유, 과자 등 먹을 것을 모조리 챙겨준 적이 있었다.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집으로 가 책상 앞에 있던 먼지 가득한 책상용 거울을 정면으로 쳐다봤다. ‘살이 많이 찌긴 쪘구나 아 그렇구나 ’ 나는 지금껏 살이 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어떻게 할 방법을 몰라 나 자신을 놓고 있었다. 놓고 있다 보니 잊고 싶었고, 그래서 내 모습을 점점 잃어갔다. 놓아버린 몸만큼 3년 전 나는 내 인생 몸무게를 경신했다. 할머니의 충격요법 때문인지 나는 살찐 내 몸을 확실하게 자각했다.

“이왕 경신한 거 시원하게 올라간 거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빼자 “

  그날부터 다이어트 일기를 쓰기로 했다. 하루에 아침, 점심, 저녁으로 먹은 것들을 적어놓고 유산소와 근력운동을 정해놓고 하기 시작했다. 어려울 것 같으면 나가서 집 근처 강변을 걷는 것부터 천천히 하기로 결심했다. 최대한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부터 말이다. 겨울이라 운동장이 단단하게 얼어있었다. 입김만 불어도 바로 열심히 운동한 두터운 옷 틈 사이로 땀이 흥건하게 났다. 일을 하고 있지 않아서 집에만 있으면 갑갑했는데 발을 땅을 디디고 팔다리를 움직여 걷고 오면 뭔가 해냈다는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내가 살아있다는 뿌듯함도 함께 들었다. 몸무게는 처음에는 더디게 빠지더니 몇 주가 지나자 마이너스 오 킬로가 됐다. 몸무게가 빠지는 것에 탄력과 재미를 붙으니 저절로 식단 조절도 잘 됐다. 거울 속 내 얼굴도 조금씩 선을 찾아갔다. 한 번에 , 단기간에 오래되는 것은 없었다. 다이어트 약도, 주사도 금방 체중계 위에 숫자는 줄어갔지만 마음의 무게는 또 찌지는 않겠지 라는 걱정이, 추 몇 개를 더 올려놓은 것처럼 더 무거웠는지도 모르겠다. 다이어트 일기는 약 두 달에서 세 달 정도 지나서 끝이 났다. 내 키에 맞는 평균 몸무게로 돌아왔고, 나는 1-2kg씩 빠졌지만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내가 기록해 놓은 흔적들을 보며 알 수 있었다. 지금에서야 알게 된 사실은 오랜 다이어트를 해 봤지만 마음속에 강력한 동기부여가 생기고, 정신이 건강해야 된다는 것. 그래야 영원히 살과 안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수많은 살들을 떠나보낸다. 다시 올 수도 있을 왔다 갈 수도 있을 살들에게 안녕을 고했다. 안녕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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