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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Jan 24. 2020

속독을 위한 정독, 뛰기 위해선 걷기가 필요하다

-초등학생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나는 욕심이 많은 아이 었다. 지금은 뭔가를 잘해야겠다, 누군가를 이겨야겠다는 경쟁의식이 사그라든 지 오래지만 어릴 적 나는 열정 부자였다.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라는 프로그램에서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라는 책을 속독해 읽는 학원 원장님이 나온 적이 있었다. 한때 아이들 사이에서 책 읽기 열풍이 들끓었던 그 시절 그때. 속독에 큰 관심을 가졌다. 어렸을 때 나는 책을 많이 읽고 독후감을 쓰고 글짓기를 열심히 하는 문학소녀 그 자체였다. 그래서 그때의 나는 남들보다 책을 빨리 읽고 싶었다. 두툼한 책을 삼십 분 만에 바로 읽는 모습이 신기함을 넘어서 새로움을 주었다. 빠르게 책을 읽고 싶은 마음에 엄마한테 속독 학원에 가고 싶다고 말했고 엄마가 학원을 끊어주었다. 처음 학원에 가서 한 훈련은 눈동자 좌우로 왔다 갔다 하기 훈련, 눈 굴리기 훈련을 여러 번 했다. 일종의 눈 근육 풀기 겸 빠르게 읽기 위해 단련하는 훈련인 셈이다. 시간이 흘러가고 초시계의 띵 소리가 나자 약간의 긴장감이 웃돈다. 속독에서 중요한 것은 정독하는 습관들이 중요하다.



  정확히 읽어야 빨리 나아갈 수 있는 것.

  책의 내용을 머릿속에 넣으며 페이지를 손끝으로 넘긴다. 초시계 속 시간이 조금씩 넘어가고 있다. 나는 멈춘 초시계 너머 책의 내용을 기억하며 페이지 쪽수와 내용을 짧게 요약해 노트에 적는다. 짧은 시간 내용들을 정리해 빠르게 요약할 수 있는 능력. 그 모든 것들 속에는 기초과정이 필요했다. 한 순간을 위해서 여러 번 연습하는 우리나라 국가대표 운동선수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오로지 찰나의 순간을 위해 노력한 흔적은 그들의 손 끝 마디마디에 혹은 겹겹이 굳은살로 쌓여 있었다.




  멀리뛰기를 잘하기 위해, 걷자

  속독은 처음에 잘 잘 되지 않았다. 속독을 위해서는 정확히 읽는 연습 ‘정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랜 연습 기간이 필요했다. 시간 안에 학원에서 준 짧은 분량의 양을 읽고 두 세줄로 요약을 하기 위해서 글자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되새김질하며 읽어본다. 눈 근육이 자유롭게 움직이니 전보다 눈 놀림도 경쾌해지고 머릿속에 들어오는 내용들도 좀 더 꽉 찼다. 멀리뛰기를 위해 하루 종일 걷고 뛰고 스트레칭을 하는 선수들의 모습처럼……. 초등학교 때 이해했던 속독의 모습이 단순히 책 빨리 읽기였다면, 지금은 인생의 모습에서 여러 갈래길을 걸어왔던 내 모습들이 천천히 스쳐 지나간다.

  멀리 뛰어가기 위해서 천천히 걷는 연습을 하는 게 무서웠다. 아니 사실 지금도 조금 무섭다. ‘남들과 나를 비교하지 말아야지 나는 나야’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과 재고 있는 나를 느낄 때 더 빨리 뛰어가게 된다. 오래 걷기 훈련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앞으로 뛰어가려고만 하는 모습을 알면서도 자꾸만 조바심이 났다.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어서 줄기와 잎사귀처럼 자꾸만 뻗어나갔다. 그 생각은 여기저기 번져나가 ‘빠르게 빠르게’를 외쳤다.


 

  점수에 있어서 상대 평과와 절대평가가 있듯이 나는 상대평가를 하지 않기로 했다. 절대평가로 내 기준의 점수를 매기기로 말이다. 남들과 비교하면 한 없이 빨리 앞으로 나가야 한다. 그렇게 되면 한도 끝도 없이 옆을볼 수 있는 여유조차 없다. 누군가가 그랬다. 나는 너무 앞만 보며 달려간다고. 제대로 걷는 연습 없이는 아무리 빨리 뛰어봤자 멀리 나아가지 못한다고 한다.    이제는 속독을 익혔지만 굳이 빠르게 읽으려 하지 않는다. 빠르게 읽으려는 마음 자체가 책 읽기를 방해했고, 책 읽는 내용에 집중하면 저절로 빨리 읽혔다. 우리가 사는 인생도 그런 모습일 것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글자를 한 모금 베어 물 듯이 천천히 소리 내며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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