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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Jan 28. 2020

우리 강아지는 나이가 없어요

열 살 넘은 강아지를 바라보며

우리 강아지는 나이가 없어요      

  흰색의 보드라운 곱슬 거리는 털, 어딘지 모르게 먼 허공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두 눈망울. 서둘러 프리 하게 청바지에 티셔츠 하나를 입었다. 우리 집 강아지가 금방 눈치를 채고 나를 따라온다. 산책 갈까?라는 말에 격한 반응을 보이는 강아지 한 마리. 나를 따라다니며 그 자리에서 빙글 뱅글 돌고 있다. 가방 안에 가슴 줄과 목줄, 휴지와 비닐봉지를 우겨 넣었다. 소형견보다는 약간 큰 중간 크기의 말티즈를 내려놓자 화단 앞에 코를 갖다 대며 킁킁 소리를 낸다. 일주일 전 돌았던 길과 화단을 따라 보물 찾기를 하듯 오줌 쌌던 곳을 정확하게 찾는다.

 가끔씩 사람들이 물을 때가 있다. ‘강아지 몇 살이에요?’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네아홉 살이에요”

사실 아홉 살이라고 말한 지는 몇 년 됐다. 강아지를 처음 데려왔을 때 다섯 살 여섯 살가량 됐다고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금보다 도는 모양이 지금보다 좀 더 빠르고 활기가 넘쳤다. 1년이 지나고 2년 3년 시간이 지나갈 때마다 움직임이 조금씩 느려졌다. 7살, 8살, 9살……. 사람으로 치면 중년에 접어든 샘이다. 인터넷으로 검색 사이트에 강아지 나이에 대해 쳐봤다. 우리 부모님과 나이가 비슷했다. 강아지 나이로 열 살은 오십 대 중반이었다. 우리 강아지는 내가 데리고 온 지 햇수로 8년이 됐다. 우리 집에 올 때 강아지는 어린 강아지였다. 사실 대략 나이를 합쳐보면 열 살이 넘는 나이었다. 언젠가부터 노년이 된 강아지와 살면서 알게 된 건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병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였다. 그래서 조금 더 꼼꼼하게 강아지의 몸과  움직임을 살피곤 했다.




몇 년 전부터 우리 강아지의 나이는 열 살에서 멈췄다. 밖에서 산책을 할 때마다 사람들이 강아지가 잘생겼다고 나이를 물었다. 열 살이란 말에 맞은편 사람이 ‘참 잘 키우셨네요’라고 대답했다. 아직 아이를 낳아보지 못했지만 이게 자식을 키운 것처럼 보람을 느끼는 일이구나 라고 느꼈다. 강아지가 여섯 살, 일곱 살로 넘어갈수록 그 나이 때 오는 작고 큰 질병들에 마주해야 했다. 자궁 축농증, 잇몸 염증, 디스크 슬개골 탈구 등등이 그것이었다. 병 하나가 걸릴 때마다 모든 게 내 탓인 것 같아 나를 원망하며 울기도 했다. 조금만 더 관리해줬다면 한 번만 더 봐줬다 라면이라는 만약의 단어로 강아지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기도 했다. 왜 일까. 나는 나이를 계속 먹고 있지만 강아지가 나이를 계속 먹을수록 왜 인지 모르게 서글퍼졌다. 강아지의 시간이 여기서 멈췄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을 것이다.

이 삼 년 전부터 사람들이 물어볼 때마다 강아지가 열 살이라고 대답한다. 나는 우리 강아지의  열 살까지의 잡아 놓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 아무 병도 없이 건강하게 지내기를……. 열 살의 시간에서 내 곁에 머물러 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아이고 우리 아기 강아지”

나는 오늘도 중년이 넘은 어쩌면 할머니 강아지일지도 모르는 우리 강아지의 눈을 맞춘다. 내 눈에는 늘 아기의 모습으로 머물러 있는 강아지가 검은색 동공을 찰랑이며 나를 쳐다본다. 그 안에 달빛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 그 모습이 너무 따뜻하다. 얼마 전 병원에서 슬개골 2기 진단을 받았다. 간식만 보면 사죽을 못쓰는 모습을 봤는데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가끔씩 슬개골이 빠지면 낑낑대며 아픈 증상을 보였을 것이라고 한다. 어쩐지 가끔 뒷다리를 핥는 모습을 보곤 했는데 그러려니 한 게 내 잘못 같았다.

  아홉 살 일 수는 없지만 열 살 같은 강아지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노견과 생활하기는 계속된다. 조금 더 신경 쓰고, 더 많이 봐주고 바깥공기를 맡게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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