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진 곳에서 안정감을 느끼다

퇴사 후 쉬는 법을 알게 된 어느 겨울 2020년

by 최물결


오전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점심쯤 한적한 시간의 숲을 거닌다. 이전에 지하철을 탈 때는 오전에 협력업체와 미팅이 있거나 급한 업무를 처리해야 되는 일을 지시받았을 때였다. 하나 지금은 마음이 편편하다. 시간에 끌려다니지 않고 시간 속에서 내 생활을 보내고 있다. 오이도행 4호선 열차에 오르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사람들이 하나둘 내리자 제일 왼편 끝쪽에 자리가 났다. 좌석의 맨 끝, 한쪽에 사람이 없고 기댈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곳, 구석진 곳……. 나는 이곳에 살포시 고개를 갖다 댄다.


언젠가부터 기댈 수 있는 구석진 공간이 좋았다. 사람들 틈에 끼어있는 것보다 지지할 수 있는 공간 하나가 주는 여유는 안정감을 주었다. 어쩔 때는 어릴 적 엄마의 팔을 잡고 있는 것 같았고 힘들 때 잠시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대 주었다. 휴학을 오래 하고 대학교 4학년 때 혼자 생활하는 것에 익숙해질 때쯤 더욱더 구석진 공간을 찾았던 것 같다. 처음에는 혼밥이 쪽팔려서 일부러 사람들 눈에 제일 띄지 않는 안쪽 자리를 찾곤 했다. 그때는 먹는 것 또한 타인의 시선을 많이 봤다. 조금 더 익숙해지니 혼자라기보다는 구석진 공간이 주는 안락함 때문에 안쪽 자리를 선호해왔다. 실제로 페이스북에 지하철 끝자리가 주는 안정감에 3145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그것은 사람들 누구나 보편적으로 느끼는 안정적인 느낌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런 구석에 대한 안정감을 느낄까? 사람에 대한 피로도가 상대적으로 높지 않을까. 나도 그들도 믿을만한 사람의 어깨보다 차라리 지하철 구석의 지지대에 잠시 잠깐이라도 기대고 싶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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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 뽐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피아노, 만들기, 글짓기, 웅변대회 그토록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들어가 끊임없이 보여주는 것을 실천하는 사람. 지금 아이들의 언어로 이야기한다면 ‘인싸력을 가진 아이’였다. 그런데 지금은 한적한 걸 좋아하고 최대한 사람들이 많은 곳에 있어도 나를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혹시라도 나를 알리게 될 기회가 있어도 백 퍼센트 다 보여주지 않는다. 이것은 직장을 다니면서 삶을 살아가면서 또 나이가 먹어가면서 점점 믿을 사람이 사라지고 내가 타인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어쩌면 믿을 구석은 사람의 마음보다는 튼튼한 지하철 한구석에 있는 나를 바치고 있는 등받이와 내 왼쪽 혹은 오른편에 있는 지지대 인지도 모른다. 아침저녁으로 사람들 틈에 끼어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는데 지하철에서도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으면 참으로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퇴사를 하고 난 후 구석진 자리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것처럼 쉬는 법을 조금씩 배웠다. 예전에는 불안했는데 쉴 수 있는 법, 시간이 주어진 곳을 따라 조금씩 걷는 법을 알게 됐다. 그 방향은 불안하지 않았으며 전처럼 쉬어도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과 쫓기는 듯한 불안한 형태가 아니었다. 나는 천천히 집 근처 강둑을 따라 걸었다. 걸을 때마다 시간이 도장처럼 발자국을 찍어 주고 있었다. 나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강둑 주변을 걷는다. 여느 때 같았으면 만보기를 켜고 오늘은 몇 킬로를 걷고 몇 칼로리를 뺄까라는 생각에 몰두해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천천히 음악을 들으며 옆을 보았을 때 보이는 햇살, 오늘의 바람, 구름이 둥둥 흘러가는 모양을 바라본다. 그리고 바람의 결을 따라 지하철 끝자리가 주는 안락한 기분을 느끼기 위해 더 천천히 걸어본다. 2020년 1월이다. 칼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간 12월이 지나고 볕이 좋은 1월이 찾아왔다. 가끔씩 노란 햇살이 강둑 너머로 잦아들고 있었다. 그 햇살이 나를 토닥이듯 어깨 위로 떨어진다. 어디선가 내게 이렇게 속삭이고 있는 것 같다.

“괜찮아 오늘도 잘 쉬었어. 잘 될 거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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