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이름에게 매거진의 POD 출판 원고 신청이 가능합니다'
'띵동' 브런치로 알림음이 울렸다. 때마침 나는 운동을 하고 있었다. 누가 라이킷을 눌렀나 혹은 댓글을 달았나, 호기심 반 흥미로움 반으로 휴대폰을 열었다. 휴대폰에는 '엄마라는 이름에게 매거진 POD 출판 원고 신청이 가능합니다'라는 문구 알림이 푸시업 되어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엄마를 그리워하며 우는 날도 많았지만 꾹꾹 참는 날이 많았다. 언제부터인가 나를 위한 글, 엄마 하면 떠오르는 글이 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쉬는 동안 '엄마라는 이름에게'라는 매거진을 만들었다. 밥을 먹을 때, 산책할 때, 운동을 할 때, 문득문득 엄마가 떠오르는 날이면 브런치를 썼다. 이 기억들을 먼 훗날 열어보며 '그때 그랬었구나'라며 붙잡아 두고 싶어서. 내가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가게 됐을 때 '할머니는 이런 사람이었어'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싶었다. 차곡차곡 쌓인 이야기들은 브런치 POD 출판을 할 수 있을 만큼의 분량이 되었다.
나는 카카오톡을 열어 엄마가 돌아가신 지 얼마나 되었나 기간을 확인했다. 일 년 하고도 삼 개월이 흘러가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 엄마를 위해, 엄마의 삶을 이야기할 거리들은 많았다. 슬퍼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엄마를 그리워하기로 다짐한지도 일 년이 지난 것이다.
불특정 다수는 내 이야기를 들으며 연민을 드러낸다거나 엄마 없이 딱하다며 괜히 한마디 위로를 더 건네곤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정말 이 세상에 엄마가 없구나를 느낀다.
엄마의 투병기간 동안 엄마를 위한 앨범 '꽃 같은 우리 엄마에게'를 선물한 것처럼 책을 출판하고 싶어졌다. 세상 모든 엄마들을 위한 이야기를. 우리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알릴 수 있는 날이 올까? 처음 브런치를 쓰던 순간이 떠오른다. 엄마에 대한 기억들을 간직하고 싶어 펴낼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며 펜을 들던 날들. 그런데 벌써 내가 쓴 조각 글이 서른 개라니. 살면서 엄마와의 이야기들은 수십 개, 수천 개 이야기들로 번져서 누군가에게 읽히는 날도 오겠지. 아직은 아주 작은 소망일 뿐이지만.
꿈을 꾸면 그 말대로 이루어진다는 말,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한 권이 되는 '나비효과'같이. 엄마에 대한 작은 단상이 엄마가 처음인 사람에게, 엄마의 엄마에게, 또 엄마를 그리워하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 글을 볼 것만 같은 엄마에게. 언젠가 엄마를 위한 글을 출판해보겠노라 약속해본다. 유난히도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흩뿌려진 파란색 속에 엄마가 담겨 있는 것만 같다. 하늘이 소원을 들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