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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Apr 06. 2022

머리카락도 계절을 탄다

봄에는 머리카락이 자란다는데 나는 빠진다

  머리를 감았다. 긴 머리카락일수록 머리카락은 잘 빠진다. 샴푸를 듬뿍 묻혀 손으로 있는 힘껏 머리에 거품을 낸다. 샤워기 호스에 조르르 흘러나오는 물이 머리를 헹궈준다. 머리카락이 또 빠졌다. 계절이 바뀔 때면 사람도 털갈이를 하듯이 머리가 잘 빠진다는 걸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수쳇구멍에 쌓인 긴 머리카락들이 한가득이다. 머리카락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엄마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다. 샤워가 끝난 후 엄마의 스마트폰을 켰다. 이제는 정말 오는 것이라곤 광고, 스팸, 세일 마지막입니다 라는 문구의 문자가 전부다. 엄마의 핸드폰에는 더 이상의 증거가 없다. 마지막 하고 싶은 말이나 메모, 생각이라곤 적혀있지 않은 엄마의 스마트폰을 보며 나는 멍하게 앉아 있었다. 


  핸드폰에는 사진이 많았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게 없는 사진이 엄마의 핸드폰 속에는 많아서. 

  평생 일만 했던 회사에서 가끔 야유회나 나들이를 보내준 것, 아니 간 것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동료들과 예쁜 꽃, 건물, 풍경들 앞에서 손으로 브이 표시를 하며 사진을 찍는 모습은 여느 50-60대와 다르지 않아 보였으니까. 

  엄마의 스마트폰을 보는 이유는 엄마가 얼마나 아팠을 까 그 마지막 모습이 사진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픈 모습을 굳이 다시 찾아서 보려는 것은 뭐냐고? 그래도 엄마가 보고 싶으니까.

  사진 보기를 뒤로 누를수록 엄마의 통통했던 볼살이 야위여 가는 모습이 보였다. 어깨너머로 길렀던 머리카락이 조금씩 짧아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 페이지쯤에서는 꽃장식이 달린 모자를 썼다지. 마치 드라마에서만 보던 항암치료의 부작용이 엄마에게도 조금씩 나타났으니까. 

  입꼬리를 올리며 웃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엄마의 표정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약 기운에 졸릴 텐데도 불구하고 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미소를 띤 엄마의 모습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괜찮아 다시 돌아갈 수 있어" 엄마가 매일 입버릇처럼 말하던 긍정의 메시지와 비슷했다. 사진은 괜찮은 척 아니 괜찮아지고 싶어 하는 엄마의 바람이었으리라.


  엄마의 부고 이후 나는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은 내가 살아온 시간을 의미하기도 했다. 어쩌면 엄마처럼 나도 살아온 시간들을 잡아두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엄마의 마지막 사진을 나는 또렷이 기억한다. 누가 찍어준 것도 아니고 엄마 본인 자신이 핸드폰을 잡고 찍은 셀카 말이다. 모자는 빠진 머리카락을 대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냥 잠시 계절을 타는 것이라고. 그래서 잠시 짧아진 것이라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는 동안 어깨까지 오는 길이의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졌다. 머리카락이 떨어진 빈 공백마다 또 다른 머리카락들로 채워지겠지.

봄이니까. 봄이 되면 엄마의 모자 쓴 셀카를 떠올린다. 엄마가 안간힘을 쓰며 웃어 보인 모습처럼. 나도 오늘 하루 악착같이 살기 위해 괜히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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