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아이 역량 평가를 보았다.
자기소개, 장단점, 그리고 지원동기... 나는 내가 쓴 스크립트를 토시 하나 빠뜨리지 않고 달달달 읊었다. AI역량평가를 잘 치르기 위해 시중에 나온 책, 유튜브 강의, 오픈 채팅방 등을 열심히 찾기 시작했다.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자료는 무궁무진했다.
시험에 응시할 때는 캠에 눈을 잘 맞추고, 시선을 분산시키면 안 된다고 한다. 불안해하지 않는 자신 있는 표정과 미소를 지어야 한단다. 그래야 AI가 나이스 한 지원자라고 인식한다고 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단순히 외워서 내 소개를 하는 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
가상의 상황을 제시해 주고 어떻게 대답할 것이냐에 대해 대답을 해야 되는 문항도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할 때나 평소 나라는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대응을 할지에 대한 테스트인 것 같았다. 예를 들면 집안 경조사 때문에 퇴근 후 집에 빨리 가야 하는데 상사가 급하게 끝낼 업무가 있다며 야근을 권할 때 어떻게 말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대답을 연기톤으로 해야 한다. 물론 회사 생활이 협업이고 팀워크라지만 때에 따라 개인 사정이 있을 수 있으니 이를 어떻게 조율해서 조리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즉 가상 상황 제시 - 합리적인 답안이 문항에 대한 핵심 포인트였다. 그런데 이 대답을 삼십 초 안에 해야 한다니 시간이 너무 가혹했다.
보통 중견기업 이상은 AI 역량평가를 하는데 지원자들은 많고 한번 더 면접대상자를 올려야 하는 과정에서 AI역량평가를 쓴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MZ세대들 혹은 갓 졸업한 친구들에게는 AI 역량 평가가 자연스러운가 보다. 몇 군데 취업카페를 쭉 돌아보니 큰 대기업을 준비하는 예비 대학생들은 매일매일 AI 역량평가를 공부하고 있었다. 반면 나 같은 중고 신입에게 AI역량평가는 생소했다.
"저 AI 역량평가 봐요"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하니 주변 언니 오빠들이 하는 말은 다 똑같았다.
"와 기계가 널 평가한다고? 내가 다 기분 나쁘네"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교체되며 면접도 AI가 평가하는 시대가 오다니.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시험을 보기 전 예행연습을 반복했다. 상사 혹은 후배에게 말을 하듯이 순발력 있게 뭐라도 대답하자는 마음으로 연습문제를 풀었다. 하지만 실제 면접 보기를 클릭하는 순간 너무 어려운 상황이 나와서 짧은 시간 안에 머리를 굴리느라 대답이 조금 느려졌다.
말도 잘해야 했지만 순발력, 집중력, 기억력을 요하는 게임도 무시할 수 없었다. 시간 안에 정확성을 요구하는 게임은 내게 너무나 어려웠으니. 꼭 가서 일해보고 싶은 중견기업에 일차라도 합격한 것이 어디냐 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나 스스로를 위로했다. 언젠가는 내 가치를 인정받는 곳에 가리라 굳게 다짐하면서.
예상대로 발표 당일 나는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지난 삼일에서 사일 동안 열심히 정보를 찾고 연습하고 최선을 다해 준비했으니까.
집에 도착해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냈다. 냉동과 냉장 그 사이쯤 되는 시원한 맥주였다. 맥주의 탄산이 목을 타고 넘어갈 때마다 시원하게 끓어올랐다. 맥주에서 피어 나는 거품 속 오늘 하루를 담금질해보았다.
'시원하게 낙방했으니 쿨하게 잊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