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다고 약속했는데, 모두가 떠나버렸다.
"엄마 나 할머니 보고 싶어요."
"할머니는 작은 할머니 댁에 가셨어. 다섯 밤은 자야 오셔"
"나 할머니랑 잘래요. 할머니 데려와요"
"할머니는 지금 비행기 타고 저 멀리 작은 할머니 보러 가셨다니까"
"못 믿겠어요. 보여줘요"
엄마는 나를 데리고 할머니의 오래된 단독주택으로 향했다. 문을 활짝 열어 할머니가 없다는 걸 보여주자 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어렴풋이 기억이 날 듯 말듯한 그때 내 나이는 다섯 살도 채 안 됐었다. 정확히 할머니는 다섯 밤이 지나서 왔고, 내가 좋아하는 다람쥐를 사 가지고 오셨다. 그 이후로 나는 엄마 말을 철석같이 믿었으며 누군가가 내 곁을 떠나가도 며칠밤만 자면 돌아오리라 믿었다.
어느 날 엄마와 베개를 맞대고 나란히 누워 잠을 잔 적이 있었다. 엄마는 가끔씩 네 살 다섯 살 시절 무렵의 내 모습을 회상하며 내게 말했다.
"할머니가 없다고 문 열어 보여주니까 그제야 믿겠다는 듯이 울음을 뚝 그치는 거야. 어찌나 신기하던지"
당시 나는 누군가가 떠나가 없어진다는 사실보다 며칠밤만 지나면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일찍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아니 그랬었다.
어릴 적 할머니 껌딱지였던 나는 이후로도 할머니의 취미생활(꽃꽂이, 종이접기, 에어로빅) 등을 활발히 할 때 방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해맑은 어투로 "다녀와"라고 말했었다.
이십오 년이 훌쩍 지나 어른이 된 나는 종종 사람의 말을 믿지 않는다. 때로는 나 자신을 못 믿을 때도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다 나아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어'라고 말했던 엄마도 끝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정신이 금방 온전해져 요양원에서 돌아올 것 같았던 할머니도 마지막에는 의식이 없었다.
엄마가 돌아가시자마자 이모란 사람은 본인이 할머니를 모신다며 말도 없이 요양원으로 할머니를 데려가 버렸다. 이후에 할머니는 코로나 예방접종 후유증으로 온몸이 탱탱 부었으며 알 수 없는 부작용에 시달려 생을 마감하셨다.
"기저 질환이 있는데 왜 주사를 맞혀요?" 이해할 수 없어... 나라면 안 맞춰... 내가 모시지
이모란 사람은 천연덕스럽게 안 그러면 요양원에 등록도 못하게 되는데 어쩔 수 없다고 끊임없이 나를 설득시키려고 했다. 이후로 나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내가 사는 세상 속 어른들의 말 중 팔 할은 거짓말이었고, 돌아오는 건 불신뿐이었다.
믿기지 않는 일들을 머리로 이해하고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직도 힘이 든다. 일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하늘, 바다를 배경으로 해 할머니와 엄마가 내 꿈속에 등장한다. 내가 따라가려고 하면 머릿속에서 이상하게 신호를 준다. '아 할머니랑 엄마는 다른 세상 사람이지' 하고. 그 사실을 꿈속에서 인지하게 된다는 사실이 제일 아프다.
얼마 전 아는 언니 딸과 신나게 놀아준 적이 있다. 나 또한 외동으로 혼자 컸기에 어떻게 놀아야 재밌게 놀 수 있는지 잘 알았다. 아이들은 인형놀이를 해도 잘 맞춰주고, 상대역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재밌어했다. 아이는 내가 꽤 좋았나 보다.
"언니 나랑 우리 집 가면 안돼? 제발"
아이의 말투 뒤에 제발이 간절하게 느껴졌다.
나는 웃으며 "다음에 꼭 갈게"라고 말했다. 정확하게 날짜를 말하면 어릴 적 나처럼 하루하루 며칠밤을 자며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믿기지 않는 일들, 그 일들을 받아들이는 건 내게 낯설다.
내일이라도 아니 일 년 후 십 년 후라도 좋으니 할머니가 예전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사 가지고 왔으면 좋겠다. 수술실로 들어갔던 엄마가 다시 나와서 일반실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이 수많은 큰 일들을 받아들이기에 나는 너무 늦게, 혼자 세상 위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