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에는 엄마와의 추억이 깃들어 있다
덜컹덜컹, 승차감이 확실히 다르다. 친구들 차를 탔을 때의 묵직하다는 느낌이 없다. 분명 앞으로 곧게 나아가고는 있는데 이 퍼센트 정도 뭔가 부실한 느낌이다.
이모란 사람은 돌아가신 엄마의 보험금으로 차부터 바꾸라고 했었다. '너희 아빠 차를 타면 머리가 지끈거려' 아빠는 돈 달라고 찾아온 이모의 말을 들어주면서 어떻게 사람을 혼자 보내냐고 차를 태워 줬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내게 너희 아빠는 구두쇠라며 욕한다. 당신이 뭘 안다고. 나는 화가 나면서도 돈 안 되는 차를 가지고 있는 아빠를 욕 먹이는 것 같아 분한 마음이 들었다.
최근 차종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아빠 차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게 됐다. 어렸을 때는 몰랐지만 머리가 커가면서 한 가지 느껴지는 것은 있었다. 아빠의 차는 남들과 다르게 오래되고 뒤쳐지는 느낌이 있다는 것을. 왜냐고? 아빠 차는 '94년도식 소나타 2다' 요즘은 올드카를 선텐 하고 겉 부분만 새로 도색해 다시 타는 것이 유행이라는데. 아빠의 유행은 언제쯤 돌고 돌아 트렌디해질까.
나는 또 목적지를 향해 느리게 가는 아빠 차를 보며 차 탓을 한다. 양쪽 백미러를 손으로 일일이 펴는 아빠의 모습이 궁상맞아 보였다. 이 모든 게 차 때문인 것 같아서 아빠 차를 들여다본다. 한 여름에 에어컨도 세게 나오지 않는 것도, 다른 차가 아빠 차 앞으로 끼어들려고 하거나 빵빵 거리는 것도. 모든 것이 차인 것 같은 묘한 열등감이 날 사로잡았다. 구질구질하다는 이모라는 사람의 말이 귓가를 자꾸만 맴돌았다.
얼마 전부터 우리 부녀는 나와 아빠가 함께 몰 차들을 열심히 찾아보고 있다. 아빠가 각종 브랜드사에서 직접 받아온 카탈로그를 보며 나는 언제쯤 운전할 수 있을까. 그 순간을 상상해본다. 나는 2013년 첫 운전면허를 따고 '장롱면허'로 전락한 지 오래다.
집으로 오는 길 자동차 룸미러를 통해 내 시선과 아빠의 시선이 마주한다.
"이 차 그래도 아빠가 관리 잘했어. 우리 이 차 타고 강원도도 다녀왔잖아"
대화 없는 부녀의 빈 공백을 뚫고 아빠가 먼저 말을 한다. 차도 할 말이 많은가 보다. 그러고 보면 반려견과 엄마 아빠 우리 가족들끼리 이 차 타고 여행도 참 많이 갔었다. 아빠는 오래되도 관리만 잘하면 가치 있는 차라며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수동으로 주차선을 맞추는 아빠의 몸짓을 살폈다. 요즘은 후방카메라며 전방 카메라 등이 잘 되어 있는데 그 흔한 카메라 하나 없다. 그래서 주차를 할 때면 항상 엄마는 조수석에서 내려 큰 소리로 오라이를 외치며 차정렬을 해줬다. 엄마가 생각났다. 아빠는 아직도 뒤를 돌아보며 후진을 한다.
지인들이 아빠의 차 상태를 보며 정말 깨끗이 탄 클래식 올드카라고 칭찬을 해줬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려고 차 사진을 찍은 게 아닌데. 아빠는 정말 궁색하게 살아온 게 아닐까. 저 차는 과거의 아빠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빠에게 새 차는 어떤 의미일까.
"아빠 새 차 사면 이 차는?"
"폐차해야지"
강아지를 실은 차가 집 앞에 다다랐을 때 아빠는 지상에 주차를 했다. 아빠의 차가 유독 다른 차들 사이에서 반짝였다. 반듯하게 주차된 차 뒤로 엄마의 손짓이 일렁이는 것 같았지만 엄마는 없었다. 문득 94년도식 소나타가 아빠의 그림자와 닮아 보였다.